진짜 오랫만에 먼지묻은 삶에 글 하나 올린다
어제는 정말 미친듯히 울었다. 정말 바보같이 소리까지내어가며 엉엉.
아침에 일어나니 눈이 떠지지 않을 지경. 서예를 하는 날이라 인사동까지 걸어가는데 꽃은 만발 아름답더만 정말 사는 게 어찌 이리 고단할까 싶더라
지난 주말에 안좋은 일이 있었단 이야긴 올렸을거다.
그게 누군가 내게 독설을 퍼부었기때문이었다. 그냥 독설이면 넘어갈 수도 있으련만 아 이 인간은 나를 전혀 신뢰하지 않는구나, 란 느낌이 절절한 그런 말들.
그런데 그게 다른 누구가 아니라 내 가족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를 그리 오래봐온 사람이 나를 신뢰하지 못한다는 게 얼마나 뼈아픈 건 지 아는 사람은 알거다. 거기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마저도 인정하지 않는 걸 보고는 충격을 너머 정말 이해가 안가더라지
의사선생님께서는 가치관이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그런 사람 말에 신경쓸거 없다는데 내가 그랬다. 누구나 타인에게 이해받고 싶은 욕망이 있지만 특히나 가족에겐 그게 더한거 아니겠냐고..
웃으면서 헤어졌다고 지난 번에 썼지만 선생님께서 마지막에 그런 말씀을 하셨다. 제발 부탁이니 이 일로 당신을 황폐하게 만들지 말라고..
이야기가 잘 끝났는데 왜 그런 말씀을 하시나 의아했는데 역시 전문가는 전문가셨다
그 말들이 깊은 상처가 되어 자꾸 나를 괴롭히더라는거다.
선생님은 절대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하시더만 가족에게 이런 이야기까지 듣는다니 자꾸 내가 잘 못 살았나보다 자책도 하게되더라는 거지
아시다시피 엄마에게도 신뢰와 사랑을 받지못해 이 모양 이꼴인 내 인생인데 조금은 아물어가던 상처가 다시 헤집어진 깊은 아픔.
내 인생을 돌아볼때 나를 가장 신뢰해준 사람은 전 남편이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이혼하고 처음으로 그가 절절히 그립더라. 분명히 그 맑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채로 너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그러니 너무 속상해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해줬을텐데..
그 다음으로 나를 그만큼 또 신뢰해준 사람들이 있다면 그건 시부모님들. 아버님이 그때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내가 과연 그 곳을 떠나왔을까 싶을 정도로 무한한 사랑과 신뢰를 주셨던 분들.
그렇게 내가 가지고 있던 많은 상처들이 회복되었지만 그래도 예민한 신경줄에 부족하기 이를데없는 나란 인간이란 거 그래 나 잘 안다.
그래도 넌 아직 인간될려면 멀었다고, 남의 이야길 들어주는 자세가 전혀 되어있지 않고 남에대한 배려가 없이 혼자 떠들어대는 인간이라는 건 아니지. 그런 말을 그것도 내 가족에게 듣기엔 내가 살아온 인생이 너무 억울하지.
난들 이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이런 모습이겠냐만 남편말대로 넌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을 가졌다고 거기다 똑똑하고 배려심많고 남다른 감각까지 장점이 훨씬 많은 인간이라고, 누구에게나 연약한 면 하나쯤은 있는거라고..그래 그렇게 믿고 나름 모든 힘든 상황들을 피터지게 견뎌냈다.
남들보기에야 멀쩡해보이는 인간이지만 늘 불안불안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그래도 나름 씩씩하고 긍정적으로 말이다.
전 남편처럼 남친마저도 당신만한 사람은 또 만나지 못할 거라고 당신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재주를 가졌다고 하던데 그게 가족들 눈에만 보이지 않는걸까
우리 나이야 다 각자의 가정을 이루고 그게 가족이지만 나는 엄밀한 의미에서 이제 내 가족도 없는 몸인데 나랑 피를 나눈 사람들에게 그런 대접을 받는다는 생각을 하니 정말 적막강산이 따로 없다는 느낌에 더 서러웠달까
어젠 정말 미친듯이 흐느끼다가 아 사람들이 이래서 자살을 하는구나, 란 생각을 했을 정도. 물론 나는 그럴때 전화를 받아주는 사람도 친구들과 술마시다 놀래서 뛰어오는 사람도 또 나를 신뢰해주는 사람이 그나마 주변에 꽤 있어서 버텨낼 수 있긴 하지만 말이다.
누가 나에게 이프로부족한 인간이라더라 했더니 니가 이프로 부족한 인간이면 난 삼십프로 부족한 인간이지, 라며 웃어주는 친구도 있고 당신은 유리알처럼 맑은 사람이라고 말씀해주시는 분도 계시다만 그래도 이 아픔이 가셔지는 건 아니다. 그저 견뎌낼 힘을 얻는 것일 뿐.
이번에 고기공놈 남친문제에 관여하면서도 내가 그 놈에게 자랑스럽게 할 수 있었던 말이 있었다면 너 언니가 너랑 십년넘게 만나면서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거 본 적이 있느냐였다. 그것마저도 조심스럽게 언니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여기까지가 전부라고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하는 거라고, 결국 내 역할은 그런 너를 지켜봐주고 네가 힘들면 들어주고 그래줄 수는 있다고, 그렇게 말하는 게 나란 인간인데..
그리고 남을 배려하고 남의 이야기 들어주고 어떤 경우에도 쉽게 판단하지 않고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말하는 거, 그게 사야가 가지고 있는 마지막 자존심 자존감인데 웃기지말라고 너는 아직도 정신못차리는 형편없는 인간이라고 강펀치를 날리더라는거다.
어젠 참 절묘하게도 마구 울다가 여기 하소연이라도 할까하고 들어왔는데 막 메일이 하나 와 있는거다.
여기 블로그에도 출연(?)한 적이 있는 어떤 사람, 어쨌든 굉장히 오랫만에 보낸 메일인데, 마침 그 내용중 ' 요즘은 나이가 들어가니 000씨 같은 친구가 삶에서 참 필요하고 좋은 대화의 상대구나 생각해요' 란 구절이 있는거다. 참 절묘한 타이밍이란 답을 보냈는데 위로가 되어야할 저 말이 왜 더 서럽게 만들던 지. 십년도 전에 잠시 함께 일했던 사람도 저런데 어찌 나를 이리 몰라줄까하는 야속함때문이었겠지
이주가까이 괴로와하다 어제 그렇게 울고나서 여기 이렇게 또 올린다. 이곳은 내게 어찌보면 정신과치료만큼 중요한 공간이니까. 누구나 들어와 볼 수 있는 불특정다수에게 쓰는 공간이기도하다만 내겐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하소연하고 편들어달라고 떼쓰기도 하고 또 글로 정리하며 마음을 추스리기도 하는 곳이니까.
이런 이야기가 나온 김에 서예때문에 요즘 자주 뵙기도 하고 또 이래저래 챙겨주시는 송현님도 궁금해하시고 사실은 사야랑 같이 살아본 사람이 아니면 다 궁금해하는 왜 사야가 그렇게 술을 달고 살고 정신과를 다니며 병을 외치고 사는 지를 이야기해야겠다.
사람마다 예민한 성격이 있고 무섬증 아니면 소심함 뭐 그런 성향이 있겠지만 사야는 조금 다르다. 멀쩡해보이지만 가끔은 정상적인 생활이 힘들 정도로 불안에 시달린다는 것. 가장 심각한 증상은 애정결핍증이다만 그거야 눈으로 보이는 건 아니고 그걸로 인해 야기되는 불면증, 잠을 못자면 당연히 사람이 미쳐버릴 것 같은 뭐 그런 연쇄작용들이다.
나나 남편은 그 모든 것이 엄마에게 받은 학대가 가장 큰 원인일거라 생각했는데 몇 년전 새롭게 알게 된 사실. 여기 구구절절히 쓸 수는 없지만 내가 태중에 있을 때 엄마가 몇 달을 굉장히 불안해 한 일이 있었다는 거다. 이번 선생님은 그것도 큰 원인이었을거라고 말씀하시더라.
예전에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내가 맛사지받으러 다니던 한의원의사가 내 맥을 짚어보고는 정신분열증에 걸릴 사람인데 강인한 정신력으로 버텨내는 거라고 말했다는 거 기억하시는 분들 있을거다.
결국은 통하는 말이니까 새삼 그 의사말이 신기하더라는 것. 태아때부터 불안했던 예견된 운명이었달까. 물론 사람이 가지고 태어나는 어떤 성향 유전자도 한몫은 했겠지만 같은 뱃속에서 나왔다고 다 같은 사람이 아니듯이 그런 요인 그리고 사춘기때 아빠가 돌아가신 것 엄마의 학대 뭐 다양한 요인이 섞여서 이런 인간이 되었겠다란 체념?
내가 발병을(?) 한건 고2때, 거창하게 발병이라고 하지만 미치도록 머리가 아파서 정신과를 찾은 게 그때니 내 기억으론 그걸 시점으로 잡는다.
그런데 고1때 인수봉을 암벽등반하다 악천후를 만나 동굴속에서 굶어죽어간 대학생들인가 누구인가들이 있었다. 그들이 그 고통속에서 죽어갔을 생각에 삼일 가까이 밥을 먹지 못했다. 그게 정말 내가 겪는 것처럼 생생하게 다가오더라는 거다. 이해를 돕자면 작은 언니네 집에 있던 고양이 시계에 바이얼린을 켜는 모습의 생쥐가 달려 추가 왔다갔다하는데 그것마저도 너무 힘들어보이는 사람이다.
그러니 이런 사람을 어떻게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볼 수 있겠냐고.. 그래 물론 또 그래서 동전의 양면처럼 나는 누군가가 내게 말초적 감각이라고까지 이야기하는 그런 감각을 가지게 된 건 지도 모르겠다만.
그런 애가, 고등학교때도 머리가 아파 학교를 밥먹듯이 빠지던 애가 입학장학금까지 받으며 과수석으로 대학에 들어가고 (그래 나 이거 지금 잘난척하는거다. 얼마전 내게 혼자 잘난척은 다한다던데 맞다 누가 내게 넌 멋진 애라고 말해주는 것도 큰 도움은 되지만 나는 잘났다고 그래 나 대견하다고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이 삶을 버텨내고 있다) 그렇게 떠돌며 가는 곳마다 거기 언어 다 배워가며 쉽지도, 짧지도 않은 세월을 잘 살아냈는데
남편 시부모님말고도 그 까다로운 스님이나 남친어머님도 다 나를 인정해주시고 이뻐라하시는데
아니 그런걸 다 떠나서도 참 노력하며 사는 인간인데..
나이 마흔중반이 되어 '내가 그러니까 너는 인간이 아직 덜 되었다는 거 아니냐'는 말을 들어야하는 참담함
그래 결론만 따지자면 결국은 결혼에 실패해 한국에 돌아온거고 남친과도 실패한거고 가족을 걱정시키는 건 맞는다만 그리고 걱정을 해준다면 정말 고맙다만 이번 팔월이되면 돌아온 지 오년
전보다 엄마용돈을 반으로 줄였지만 그래도 한번도 거른 적 없고 다른 할 도리 안한 것도 없다. 아니 가서 가서 징징대 본 적도 없다.
이번에 남친이랑 헤어지는 문제로 올케언니랑 만났을 때 울 언니 정말 고모 그렇게 사는 줄 몰랐다고, 할만큼 입이 가벼운 사람도 아니다
여태도 그런 일이 없었지만 앞으로도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형제들에게 손을 벌리거나 할 사람도 아닌 나
오늘도 송현님 내가 그때 장성에서 울 시어머니 아프시면 가서 돌봐드려야한다는 말 인상적이었다 하시던데 시어머니뿐 아니라 울 올케언니도 나랑 정말 소중한 친구. 거기다 남친어머님까지...그 대단하신 스님이랑 그 개판을 치고 싸웠을때도 썼듯이 돈들고 오셔서 여행이나 가서 잊고오라고, 이년내내 안 찾아뵈었어도 늘 고맙다고, 지난 번 뵈었을 때 '어머니 이게 다 스님 승질때문이잖아요?' 했더니 ' 어이고 니 승질은 어디 만만찮고? ' 하시며 웃으셨는데, 남친 나에게 우리가 헤어졌어도 엄마는 당신이 찾아가면 반가와하실거라고도 말했는데
도대체 왜 사야는 평생 들어보지도 못한 독설들을 가족에게서 듣는 운명을 타고 난건 지, 이건 뭐 집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 나가서 샌다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아무리 생각을 또 해보고 또 해봐도 난 가족들에게 그만큼 잘못한 것이 없다는 게 아픔이고 문제다
뭘 알아야 반성을 하던 이해를 하던 하지.
위에 썼듯이 선생님말처럼 가치관이 다른 사람이니 무시하라는 건 가족이기에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거기다 내가 예민하고 불안한 인간인 것도 내 잘못은 아니지 않냐 말이다
선생님께 그랬다. 난 앞으로 이제 착하게 안살기로 했다고, 선생님이 그러시더라, 잘 생각했는데 대신 본인이 후회하지 않을 범위에서만 하라고..
아 정말 내가 이 선생님을 너무 좋아하는 이유다.
그런데 여기도 썼고 그 날 선생님께도 말씀드렸지만 사야는 늘 나름 최선의 선택을 한다. 왜? 난 늘 그 당시로서는 최선을 다했으니까
그리고 썼을꺼다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던 건 내가 딱 그 당시 그 만큼의 인간이었기 때문이라고.. 더 나은 인간이었으면 또 다른 선택을 했겠지만 그게 그때로선 내게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말이 반복된다만 남편이 내게 서울로 가는 일년의 유예기간(?)을 줄 때도 그랬다. 네가 얼마나 최선을 다해 살았는 지 알기 때문에 내게 네게 이 기회를 주는 거라고, 그러나 나는 네가 내게 다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남친도 내게 그랬다. 당신이 최선을 다했다는 걸 알기에 당신의 결정을 받아들인다고.
이 자판을 두드리다가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긴 통화는 아니었지만 얘기를 듣다가 울 얼마 날더러 니가 잘못하는 거야 없다는 거다, 내가 또 울컥해서 그랬다 ' 그럼 잘못하다는 것도 없는데 이렇게 날 괴롭히는 건 날더러 죽어버리라는 거냐고 신경쓰이는 존재 자체가 그렇게 부담스럽다면 날더러 어쩌라는 거냐고? ' 술 취해서 한 말도 아니고 어리광도 아니고 정말 그런 심정이다
도대체 내가 뭘 더 이상 어떻게 잘 살아야하는 건 지를 나는 모르겠다
나는 더이상은 못한다
난 이것보다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 수는 없다.
지금 사는 모습, 이게 나로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그리고 그것도 지금만으로도 충분히 힘들고 아프다
지금은 안타깝게도 연락이 끊겼지만 아니 이 메일이라도 있으니 연락할 수도 있겠지만
그 마유미란 일본친구가 내게 그랬다
너처럼 완벽한 사람이 뭐가 그렇게 힘드냐고..
완벽해보일려고 노력한 적도 없고 완벽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나는 그저 내게 주어진 삶을 나름은 주어진 시간까지 책임지고 싶을 뿐
그래 내가 얼마나 노력하며 살아왔고 사는 지 다 알아주길 바란 건 아니다
그래도 대충 이해는 해줄 줄 알았다
너 애썼다고 그 만큼이면 나름 잘해왔다고, 까진 못 들어도
어느정도는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 지 어떤 노력을 해왔는 지 이해해줄거라 믿었다
나 우리집 막내딸이다
바로 위 언니마저도 사년반 가까이 차이나는..
그래도 막내로 철없이 굴어본 적이 없다.
아 정말 그래 술주정 신세한탄이긴 하다만
안그래도 신산한 인생,
살아보지 않으면 아무도 내가 환지인 지 모르는 인생, 죽을 힘을 다해 버티고 있는 이 인생이 사십오년을 봐 온 사람으로 가엽지도 않았을까?
그래 내게 그 어마어마한 독설을 퍼부은 대상은 내 오빠다
나보다 여덟살이 많고 우리집에서 엄마외에 가장 큰 어른 말하자면 내겐 어찌보면 아빠대신이기도 한 사람이다
그래서 더 아니 미치도록 사야가 아프고 서럽다.
안다. 엄마가 그랬고 그래서 난 엄마같은 상처를 주기싫어 아이까지 낳고 싶지 않았던 사람이고 우리의 유전자에 흐르는 그 독기를..
전 남편에겐 그런 적이 없지만 남친에겐 나도 많은 독설을 퍼부어댔더랬다
내가 미치도록 온 인생을 통해 엄마를 닮지 않으려고 발버둥쳤던 그 기억 내 아이마저 거부했던 그 기억..
어쩌면 그래서 더 아픈 지도 모르겠다
온 힘을 다해 벗어나고 싶었는데 그리고 평생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받은 상처를 나도 결국은 고스란히 누군가에게 주고 있었다는 자각.
결국 모든 일엔 얻고 잃는 게 있는게 너무 힘들어서 남친에게 전화해 미안했다며 물었더니 남친이 그러더라는거다 ' 당신 집안사람들 다 한 성격하나봐' ^^;;
남편이 간절히 그리웠던 이유다
내가 그렇게나 벗어나고 싶어했던 엄마의 독설 성격
그 남자가 그랬다.
너랑 네 엄마는 다른 별에서 온 사람들인 것 같다고..
사실 어제 울고 불고한 이유가 올케언니가 왔기때문이다
언니가 요즘 몸이 안좋앟서 참을려고 했는데 막상 언니를 보니 그게 안되더라는거다
내오빠 그러니까 울 언니의 남편,
갑자기 울컥해져서 이야기를 쏟아내다보니 언니가 이해해준다는 생각때문이었을까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주사.
요즘 사야가 여러 사정상 자꾸 생각하는 말인데
사야의 주사는 지금같은 이런 술주정. 주저리 주저리.
(근데 나랑 술마셔본 그 많은 당신들은 알거다. 내가 술마시면 어떤 모습인 지)
당신을 황폐하게 만들지 말아요, 란 의사의 말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버티고 있는 날들
그래 지금 술도 너무 취했고 여기서 이렇게 정리한다만
너 (이게 울 오빠다)
나를 그렇게 너무 우습게 보지마라
니가 인생 열심히 산만큼 나도 열심히 살았거든?
다르다는 건 틀린 건 아니잖아
그리고 내 인생이 네 맘에 안 들 수도 있지만
그건 또 내 인생이거든?
모두 똑같이 살 수 는 없는 게 인생
그래도 너무 섭섭했다
정말 단한번도 징징댄적이 없는 데
왜 내가 그렇게 우습게 보였는 지 궁금해 미치는 줄 알았어
아직도 그 궁금증이 풀린건 아니지만
그래서 억울하지만
이렇게 글로나마 나는 소심한 복수를 한다
선생님이 내게 그랬어
나 복수할거예요 그랬더니
제발 그렇게 상처줬는데, 그 복수하라고
복수 찬성인데, 대신 후회가 남을 일은 하지 말라고..
그래
이 글을 읽게 되겠구나
아니 다른 누구도 읽게되겠지?
그럼 정말 다행이야
내 맘이 다 담겼으니까.
나는 상처받은 내 마음을 이렇게 밖에는 표현할 방법을 모른다
대신 알아는 줘라
정말 그 날 내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남겼는 지.
단 한 번은 생각해 줄래?
아프다 정말 많이...
2012.04.12 서울에서..사야
'먼지 묻은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짝사랑때문에 든 생각들 (0) | 2013.01.08 |
---|---|
사랑하는 너에게 (0) | 2012.12.17 |
[스크랩] 우리 아이들에게 하복교복을 입혀주세요... (0) | 2011.05.31 |
내게 시월은... (0) | 2009.10.19 |
보고드립니다..^^ (0) | 2008.10.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