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아늑한 모래실

마당있는 집

史野 2012. 7. 27. 22:12

 

 

독일로 돌아가 마당있는 집에 사는 게 꿈인 적이 있었죠. 물론 그때의 마당있는 집이란 이런 시골구석이 아니라 대중교통도 편하고 문화생활도 즐길 수 있는 그런 마당있는 집이었지만요.

 

 

 

예쁜꽃도 가꾸고 하늘도 올려다보고 그렇게 말이죠. 만약 독일이었다면 저런 푸르른 논을 볼 순 없었겠지만요.

 

일주일도 넘게 모래실에서 버티고 있습니다. 천장에 뚫린 창으로 하루종일 햇살에 달구어지는 관계로 여기도 그렇게 시원하진 않습니다만 그래도 선풍기없이도 버티고 있으니 고마운 일입니다.

오피스텔에 있었다면 에어컨없이는 한시도 견디지 못했을거고 저 뜨거운 햇살로는 나가 걸을 생각도 전혀 못했을테니까요.

 

 

 

사놓기만 하고 자꾸 읽히지가 않던 은교를 맘잡고 그늘에서 읽을라치니 울 아끼랑 호박이 난리가 났습니다. 두 놈 몸무게를 합하면 삼십킬로에 가까운데 올라온 것도 모잘라 서로 싸우고 지근지근 밟아대기까지 하죠. 저 아끼의 앞발은 굉장한 무기이기도 합니다..ㅜㅜ

 

은교는 읽기가 쉽지는 않았으나 생각보다 좋았습니다. 박범신이란 작가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욕망을, 감성을 이렇게 풀어낼 수도 있는 거구나 놀랍기도 했고요.

책을 읽고나서 보려고 미뤄두었던 영화도 생각보다 괜찮았습니다. 이 책을 어떻게 영화화했을까 궁금했는데 전혀 다른 방식으로 풀었더라구요. 상상력부족인 지 개인적으론 소설속의 은교보다 영화속의 은교가 더 싱그럽고 좋기도 했습니다. 젊다는 것 싱그러움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해주고 있더군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도 저 나이가 되면 시인처럼 17살의 소년을 저렇게 바라볼 수 있을까. 뭐 그런 생각요. 날마다 나이가 들어가긴 하지만 나이가 든다는 건 정말 미지의 세계로 가는 위험한 열차같다는 생각을 자주 하거든요.

생뚱맞지만 은교를 읽고, 보며 은교가 표현하던 엄마의 발꿈치에서 난 엄마를 사랑한 적이 없구나 아니 지금도 용서하지 않았구나, 란 깨달음이 들더군요.

 

 

 

누워서 책을 읽다보면 이렇게 하늘이 가득 들어와 좋습니다. 가끔은 책을 읽는 건 지 하늘을 바라보는 건지 모를 정도로 넋놓고 있기도 하구요.

 

 

 

그래서 찍어본 참나리입니다.  각도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보이는 지 아니 삶도 마찬가지라는 걸 언젠가 사야는 깨닫게 될까요?

 

 

 

더워서 옴짝달싹을 못하게하는 건 저 햇살인데 그래도 햇살은 말그대로 눈이 부시게 아름답습니다.

 

 

 

분꽃이 이리도 아름다운 꽃인줄을 예전에 미처 몰랐습니다. 분꽃 채송화 뭐 이런 건 시멘트바닥이 있는 ' 마당있는 집'에서 자랐던 울 세대들의 추억의 꽃이란 생각만 했었거든요 너무도 화려하고 향기롭고 우아하기까지 합니다.

 

 

 

한여름밤을 즐겨보자 맥주한잔 가지고 앉았습니다. 밤에 보는 꽃들도 참 아름답습니다.

 

 

 

그 맥주 한잔이 포도주 한병이 되고 오늘까지 나흘째 밖에서 이러고 있네요. 지금 자판을 두드리는 곳도 탁자를 조금 옮겨 저 비어있는 공간입니다.

 

 

 

첫날은 초승달모양이었는데 오늘은 벌써 반달이 넘어가고 있네요.

 

 

 

안에 있으면 안으로 밖에 있으면 밖으로 울 새깽이들은 늘 제 옆을 지켜줍니다. 지금도 네 마리가 각자있고 싶은 곳에서 함께 마당있는 집의 한여름밤을 즐기고 있는 중이구요.

서울에 거처를 마련한 이후 늘 하는 생각이지만 이 마당있는 집에 저 놈들이 없다면 이 집은 과연 내게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있는 중입니다.

과연 빈집인 이 곳에 내려와 이렇게 한밤에 마당에 나와 포도주를 마시거나 자판을 두드리거나 할 수 있을 지..

 

참 얼마전 전남편 생일이라 축하메일을 보내며 체중감량한 이야길 같이 써보냈더니 답장에 '난 네가 자랑스럽다' 란 말을 했더군요. 결혼생활 내 참 자주 듣던 말이었는데 근 오년만에 처음 들어보는 말이어서인 지 기분이 묘하더라구요.

달리기를 다시 시작한 걸로 믿고 본인도 모스크바를 달리고 어쩌고..

 

헤어지기로 하고 전남편이 한국에 나왔을 때 둘이 결혼기념일(?) 달리기를 청계천하류에서 강변역까지 했었더랬죠. 그게 십킬로 좀 넘는 거리였는데 그때도 그런 말을 했었죠. 거기다 너와 헤어지면서 자기가 가장 잘한 일중 하나는 네게 운동습관을 들여준 거인 것 같다고..

 

이젠 몸무게가 어느 정도 빠져 관절에 큰 무리가 갈 일은 없으니 다시 달리기를 시작해야할 것 같습니다

전에 썼었죠. 달리기는 제게 자신과의 싸움이자 명상이었다고요. 어쩌면 만 오십엔 마라톤 완주를 한번은 해보고 싶다던 그 꿈을 다시 꾸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잠시 언급만 하고 지난 번에 올리지 못했던 비어플러스에서 함께 술을 마셨다던 제 큰조카입니다. 오년 전 생일파티땐 군인이었는데 이젠 수습도 다 마친 어엿한 사회인입니다.

 

언젠가 사야는 26살을 뭔가 대단한 나이로 잡고 그때는 세상을 이해할 거라고 역사속에서의 내 위치를, 삶의 의미를 이해해야만 하는 그런 나이라고 나름 무작정 마지노선을 긋고 살았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장장 강산이 두번이나 변하는 이십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안타깝게도 사야는 아직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요.

 

그런데 저 놈은 이제 겨우 스물여덟살인데, 거기다 저 놈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 지 누구보다 제가 잘 아는데 (물론 다 안다는 건 아니지만요) 거기다 저보다 열여덟살이나 어린데 더 깊이있고 괜찮은 인간이더라구요.

예전에 저 놈에 관해 올린 적도 있고 괜찮은 놈이란 건 진작에 알았지만 저 날 같이 술을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길 하다 그 깊이와 통찰에 많이 놀랬습니다. 부럽기도 하더군요

 

제 조카여서가 아니라 인간대 인간으로 참 아름다운 사람이구나, 란 느낌이었달까요

예전엔 열한살 어린 고기공놈에게 졌는데 이번엔 열여덟살이나 어린 조카놈에게 졌습니다. 하긴 뭐 이게 지고 이기고의 문제는 아니지만요.

어쨌든 '이런 저 놈 마음에 들게 늙어가긴 쉽지 않겠다' 마음을 다잡는 계기는 되었고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어찌보면 삶에서 또 하나의 스승이 생긴거죠.

앞으론 스무살이 어리거나 서른 살이 어린 사람에게도 지고 탄복하고 경외할 수도 있는 일들이 제 인생에 일어나겠죠. 나이는 계속 들어갈테니까요.

 

사람들은 흔히 밥한끼를 이유없이 더 먹었겠냐 말하지만 나이가 들어간다는 게 고통스럽고 힘든 건 나이가 들어간다고 어른이 되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되기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가장 나이든 놈인 울 바리가 삼년 반이니 아직은 진짜 새깽이들이긴합니다만 울 새깽이들도 한해 한해 달라지더군요.

개를 키우다보니 개와 인간을 비교하는 모든 표현이 다 싫습니다만 그래도 사람은 사람, 개는 개..

꽃보며 달보며 반딧불이 기다리며 사야는 또 수다한판 떨고 갑니다.

과연 오년이 더 지나면 사야는 지금보다 더 나은 인간이 되어있을까요. 이 간절함 아니 일종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날 수도 있을까요

 

달은 밝고 풀벌레소리 겯들여진 이 마당있는 집의 밤은 그래도 여전히 좋습니다...  

좋다못해 이젠 겉옷이 생각날 정도로 싸늘하기 까지 하네요

아무리 폭염 어쩌고 해도 내일쯤은 서울에 함 올라가봐야겠죠. 피한다는게 능사는 아닐테니까요.

 

 

 

2012.07.27. 여주에서...사야

 

 

 

 

'4. 아늑한 모래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글지글 익어가는 여름  (0) 2012.08.06
한여름밤과 깜짝손님..^^  (0) 2012.07.31
2012년 여름의 모래실  (0) 2012.07.23
비오는 밤에  (0) 2012.07.19
행복했던 모래실  (0) 2012.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