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아늑한 모래실

비오는 밤에

史野 2012. 7. 19. 01:12

참 오랫만에 모래실에서 글을 올린다.

지난 글을 올려놓고 그 밤중에 여주로 내려왔다가 일주일을 꼬박 채우고 지난 월요일에 서울에 갔었는데 이틀만에 다시 여주다.

 

날씨가 더워져 그 작은 오피스텔에 머무는 게 힘이 들어지기도 했고 모래실에서 할 일이 많아진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요즘은 아침을 견뎌내기 힘들다

잠드는 게 힘들어서, 중간에 깨는 게 두려워서 괴로운 적은 있었어도 잘자고 아침에 일어나 힘들었던 적은 없었기에 무척이나 당황스럽다.

사야가 남동향집을 좋아하는 이유중 하나가 (모래실도 오피스텔도 다 남동향이다) 아침에 방으로 드는 햇살때문이다.

'아 내가 또 무사히 밤을 보냈구나 '란 안도감과 함께 커피를 끓여 마시는 시간, 예전 프로필에도 썼었지만 사야에겐 희망에 부푼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고통스런 밤은 또 찾아오겠지만 그래도 또 온전히 하루가 주어졌다는 희망.

그런데 요즘은 정말 무사히 밤을 보내고 난 그 아침이 가장 고통스럽고 힘들다니, 그 이유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서도 미치고 팔짝 뛸 노릇.

그나마 여주에 내려오면 그런대로 견딜만해 지난 주엔 침실에 새깽이들도 못 들어오게하고 점심때까지 내 잠만 잤다.

 

그러다 문득, 아니 문득은 아니지만 미치도록 점집에 가고 싶어졌다.

도쿄에선가 사주명리학쪽 책을 읽고 점을 보러가고 싶다는 이야길 함 한 적은 있다. 그땐 단순히 그냥 호기심이었지만 이번엔 나름 어떤 절실함이었달까

물론 주변에서 점집에 다녀온 사람이 있었던 게 계기가 되어 찾아가게 된 거긴 하지만 사십오년을 살아오면서 절실함에 점집을 찾아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월요일 꼬박 밤을 새우고 아니 혼자 밤새 술을 마시고 아침부터 한시간 가까이 청계천을 걷다가 찾아간 그 곳.

그런 짓(?)은 그것도 혼자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할 줄 알았는데 집은 나선 지 두시간 넘게 만에 한 무속인의 앞에 앉아있는 사태가 발생했더라지

 

너무나 신기했다.

책에서 읽거나 주변에서 듣거나 티비에서 보거나 뭐 그런 거랑은 전혀 다르더라. 스스로도 신끼있다는 말을 자주 하곤 하지만 정말 신끼있는 사람들은 있는거구나, 란 인정을 하는 계기도 되었달까

가장 압권은 뭘 물어봤더니 (아니 그러니까 그래서 간건데) 그걸 당신이 해결해야지 왜 나한테 묻냐더라지..ㅎㅎ

사야를 아는 사람이면 유감스럽게도 점쟁이가 아니라도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건강운이 무진장 나쁘다는 말도 해주고 진짜 점쟁이답게 뭐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해주고..

일년을 계약하고 들어간 오피스텔을 조만간 옮겨야할 지도 모르는 일이 생겼다. 갈 곳이 없어 안그래도 여러가지 복잡한 요즘 머리 깨질 지경인데 이사운이 있다는 말도 하는 걸 보니 신기하긴 하더라.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어리버리 우와좌왕있다 그 집에서 나오니 전날 밤도 샌데다가 머리는 복잡하고 온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기분.

보통 사람들은 문제해결을 하러 점집에 가는 거 같던데 사야는 해결은 커녕 문제만 잔뜩 떠안고 그 집을 나왔다지.

정신과도 모잘라 이젠 점집까지 정말 가지가지한다. 그런데 왠지 그 집을 다시 가게될 것 같은 기분, 아니 더 적확히는 다시 가고 싶은 기분.

삶에서 어떤 한 경계를 넘어선 기분이었달까

 

도저히 누군가를 만나 이야길 풀어놓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상태라 비어플러스까지 오는 걸 기다리지도 못하고 칼퇴근하는 고기공놈을 오랫만에 (그 놈 태국 출장다녀오고 나는 또 여주에 내려와있고 어쩌다보니 얼굴본 지 한참이더라)  명동에서 만나 주저리주저리.

다시 비어플러스로 자리를 옮겨 술을 마시다 울 집에서 와인한잔 더하기로 하고 나오는데 삼차로 집에 와인마시러 간다니까 와인에 잘 어울릴거라며 정성스레 안주를 챙겨주시는 사장님

아 정말 사야도 장사해보고 싶은 사람이다만  저렇게 장사하기도 쉽지 않겠다 싶은 분이다. 손님을 가끔도 아니고 자주 감동시키는 그 마인드, 그거 사야도 할 수 있을까? ^^

 

참 지난 번에 한밤중에 여주에 내려오다가 너무나 황당한 이야길 들었다. 세상에 기사분께서 사야에게 혹시 유흥업계에 종사하시는 분이냐는 거다..하하하

가르치는 일을 하시냐 패션업계에 종사하시냐 아님 뭐하시는 분인 지 진짜 궁금하다, 뭐 이런 이야긴 많이 들어봤지만 유흥업계에 종사하시는 분이냐니? 하긴 뭐 무당이란 소리도 들어본 마당에 놀랄 일은 아니고 술집을 해볼 생각을 했어서인 지 그냥 그 말이 자꾸 웃음이 나고 기분도 좋더라...^^

참 사는 거 재밌고 신기한게 유흥업소에 종사하냐는 말이 기분나쁘게 들리지 않는 일도 생기더라지..ㅎㅎ

 

우짜든둥 거의 사십시간을 넘게 깨어있다 그 중 스무시간 가까이 술을 마시고 잠이 들었는데 그것도 약도 먹었는데, 여전히 동창은 밝고 노고지리 우지지는 그 불안한 아침은 찾아오더라는거다.

결론은 그래서 다시 여주다.

원하면 내려와 숨쉴 곳이 있고 이틀반만에 만났는데 반갑다고 온 몸에 스크래치를 내놓는 녀석들이 넷이나 있는 이 곳, 내 집.

그 짧은 사이 참나리가 이쁘게도 피었더라.

이 생활이 계속 될 수는 없기에 마음 복잡한거야 역시나 마찬가지다만 그래도 돌아올 곳이 있어서 아직은 나만보면 미친듯이 반가와하는 새깽이들이 있어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다

팔월이 가기전에 참 많은 것을 결정해야할 것 같다

 

아 그리고 조금 쌩뚱맞은 이야기긴 하지만 당분간 배경사진을 바꾸기는 어렵겠다.

어차피 굶으며 체중감량을 할 생각이 없기도 하지만 우습게도 시골이 훨씬 걷기 힘든 관계로, 또한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며 바른 자세를 유지하거나 하는 나름 특별한 노하우(?)로 몸매관리를 하는 사야의 특성상 여주는 다이어트에 쥐약이다

지난 번에도 일주일 묵으니 일킬로 넘게 늘더라. 고지가 바로 저기 였는데 어찌나 실망스럽던지..ㅎㅎ

 

사야는 어쨌든 잘 산다. 아니 잘 살려고 피터지게 애쓰고 있다

괴로움의 종류가 다를 뿐이지 누군가도 나처럼 이렇게 버티려고 애쓰며 노력하고 있다고, 삶은 어차피 누구에게도 만만한 건 아니라고

그리고 내게처럼 누구에게도 이 삶이 억울하거나 분할 수 있다고, 누구나 각자의 몫만큼은 하고 있는 거라고 그렇게 믿고 있다

사야가 늘 강조하며 되새김질 하듯이 내가 지금보다 더 괜찮은 인간이었다면 더 나은 선택을 했거나 하겠지만 이게 나름은 내 딴에 최선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달래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태풍이 지나가고 있다는데 솔직히는 미친듯한 바람과 비에 몸을 맡겨보고 싶기도 하다

물론 누군가를 절망에 빠트리는 그런 피해가 없길 바란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도 한국에서 제정신으로 살기엔 참 어려운 일이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운명이랄까. 그러고보면 한반도가 참 드럽게 터가 안좋은 건 아닌가 그런 생각도 한다지..^^;;

 

어쨌든 이번엔 여주를 떠나 처음으로 노트북을 싸들고 내려왔다

그래서 이렇게 오랫만에 내 책상에 앉아 자판도 두드리고 내일은 사진도 올리고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2012. 07. 18. 여주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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