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묻은 신발

하동 최참판댁

史野 2008. 9. 4. 21:22

다녀온 지 일주일이나 되었는데 사야가 요즘 바쁘고 정신이 좀 없어서 이제사 올린다. 왜 바쁘고 정신없는 지는 다음에 올리고 우선 최참판댁부터 다녀오자.

 

요즘 사진기도 맛이 간데다 다른 글을 쓰고 싶기도 해 그냥 넘어갈까 했는데 짚고넘아가야할 의미가 있는 여행이었기때문이다.

 

여기내려와 있던 몇달간 꽃밭가꾸고 집고치고 서울왔다갔다하고 정신없는 생활이었긴했어도 너무 산에만 붙어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나름 계획을 세웠다.

 

남도 구석구석 안가본 곳도 많고 서울과 비교 멀지도 않은데 이 아까운 시간들을 그냥 보낼 순 없잖은가. 나중에 천천히? 난 그런 말같은 거 안 믿는다지. 중요한 건 오늘이고 현재니까..ㅎㅎ

 

어쨌든 이삿짐정리하랴 그동안 큰 풀뽑으랴 정신이 없었던 지난 주 이러단 또 어물쩡 넘어가겠다싶어 하루 남친과 나가자고 그랬다.

 

그 멀리까지 갈 생각은 없었는데 하동군 악양면을 일로 여러번 갔던 남친이 어찌 최참판댁을 들렸던 모양이고 나랑 한번 꼭 가고 싶었다나

 

좀 멀다 싶긴 했어도(여기서도 세시간 가까이 걸리더라) 가자고 할때 가는게 신상에 좋고..ㅎㅎ 또 '토지'야말로 예전에도 언급했지만 내 젊은 시절 중요한 소설이었던 관계로 섬진강 평사리가 보고싶어 따라 나섰다.

 

사실 남들에 비해 남한땅을 꽤 밟고 다닌 편인데도 안가본 곳은 어찌나 많은 지 초행길은 늘 설렌다.

 

일부러 택한 국도. 운전이야 남친이 했으니 나는 멀리 보이는 지리산이며 진짜 헤벌레 입벌리고 드라이브를 맘껏 즐겼다.

 

사진이야 없지만 중간에 먹은 재첩국과 참게장정식. 나도 벌써 전라도사람 다 되었는 지 그쪽의 음식이며 반찬가지수에 벌써 타박이..ㅎㅎ

 

 

 

예상하고 갔던 지라 이런 식의 관광길이 그리 불편하지만은 않았다만 속으로 투덜투덜 관관로를 따라가는데...

 

 

 

와 이게 뭔가 이게 그 평사리들판? 저게 그 소설속의 그 섬진강? 내내 섬진강을 따라 달렸것만 또 이 곳에서 내려다보는 이 느낌은 어찌나 감동스럽던지.. 박경리선생은 이 곳에 와보지 않고도 그 소설을 그렇게 써낼 수 있었다고 했던가.

 

 

 

초입 마음에 들던 감물모자가게. 색감도 좋고 하나 구입할까 생각했는데 저 놈의 빨래집게가 싫어서(저 모자는 아니다) 저 집앞을 잽싸게 떠났으니 그래 나 승질 드럽다..ㅎㅎ

 

 

 

드디어 마을입구. 어찌되었건 저런 집이 남아있어 볼 수 있다는 건 행복이다.

 

 

 

반가와 올라가본 그 곳엔 장독대도(장은 없다만) 실제로 돼지도 있더라.

 

 

 

이쁜 애기들 심지어 새끼소도 이뻐 환.장.하는 남친은 잽싸게 저들에게 뛰어가는데... 잠깐 멈추라니까 사진 좀 찍자....ㅎㅎ

 

 

 

세트장이었단 집들은 비어있지만 집집마다 가축이며 야채며 자라고 있어서 생각외로 좋더라.

 

황당했다면 집집마다 누구네집이고 탤런트사진들이 붙어있는데 완전 할망구인 사야는. 어머 이게 뭐야? 용이 임동진씨는 어디갔어?

 

내게 드라마 토지는 그렇다..^^;;;

 

 

 

이쪽엔 거의 졌는데 거긴 아직도 능소화가 저리 피어있더라. 내 생애 처음으로 보는 초가집위의 능소화다. 내년엔 기필코 묘목을 사다 이곳에서도 꽃을 피우리라..

 

 

 

드디어 최참판댁에 도착. 멀리 올해 타계하신 박경리선생이 환한 미소로 맞아주신다.

 

 

 

저 문옆으로 서희아씨가 묵던 별당이 보인다. 우리집 감은 아직인데 저긴 벌써 익기시작하네.

 

 

 

안채뒤로있는 장독대다. 곧 그의 어머님이 우리에게 당신 장독대의 반을 주신다는데 풍경이야 낭만적이겠다만 나 어떻해? ㅎㅎ

 

 

 

안채뒤의 멋스러운 굴뚝

 

 

 

사랑채의 저걸 뭐라 하나 현대식 공중테라스? ^^;;에 올라가 여유를 즐기는 남친. 나름 작품사진 찍는다고 폼 잡은건데 저 모양이다. 내 사진기 어떻해..흑흑(죽어도 본인탓은 안한다)

 

 

 

난 올라가진 않았으니 그 쪽에서 대충 내려다보이는 풍경이다. 그 노인네는 저 곳에 앉아 저 아래를 내려다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바깥에서본 최참판댁의 행랑채다.

 

내가 기생이었던 것 같단 이야길 몇번 썼지만 이번에도 확실히 느낀 건 나는 조선시대의 양갓집규수는 아니었다는거다. 직관이랄까.

 

심지어 리스본산동네 빨래넌거나 중국 휘주지방의 저택을 볼때의 그런 가슴속에서 올라오는 어떤 물결치는 끌림 이런 게 전혀 없더라..-_- 

 

그래도 최참판댁으로의 나들이는 좋았다. (입장료도 단돈 천원밖에 안받는다.)

 

 

 

 무엇보다 섬진강변을 따라가는 19번 국도 그 길이 좋았다. 마음같아선 내려가 저 강물에 발이라도 담고 싶었지만 이래저래 너무 피곤했던 관계로 그냥 돌아왔지만 말이다.

 

말하자면 이게 노란대문집 사야의 첫나들이였다.

 

앞으로 어쩌고 장담같은 건 사야 인생에 없다만 가능하면 틈을 내어 이 남도 혹은 옆동네들을 구석 구석 찾아다녀볼 생각이다.

 

아무 연고도 없던 이 남한의 반쪽 동네가 이젠 내가 사는 터, 내가 사랑해야하는 그런 곳이니까...

 

 

 

 

2008.08.28. 하동 최참판댁을 다녀와서 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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