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부처님오신 날. 물론 꼭 그 이유는 아니었지만 예전부터 가고 싶었던 수종사로 향했다.
왕십리에서 지하철을 타면 한번에 운길산역까지 가는 차편이 있더라.
마침 점심시간이라 올라가는 길에 있던 음식점에서 콩국수하나 시켜먹는데 국수를 그때부터 반죽을 하시는 지 백만년이 걸리는 사이..우연히 눈에 들어온 저 휴지가 바람에 날리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와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외국인이 보면 기절한다는 화장실휴지가 식당에 걸려있다 우연히 바람에 날려 움직이는 건데 무슨 아름다운 승무춤이라도 보는 기분. 정신을 차리고 사진 한장 겨우 찍었다만 동영상이라도 찍어놓을 걸 하는 아쉬움. 아니 어쩌면 동영상을 찍느라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을 지 모르니 그냥 저 사진과 그때의 그 느낌이 가슴이 남아있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식당아주머니 자꾸 지대한 관심을 보이며 이것 저것 묻다가 사야가 그냥 미소로만 답하니 그 신발로는 절에 가기 어렵다는거다.
갑자기 결정된 일이라 자세한 정보도 없이 그냥 평소 청계천 걷는 수준으로 집을 나선 것이 문제.
사실 식당에서도 약간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는데 그냥 좋은 맘으로 올라가보자하는데 만난 저 쓰레기더미들. 산에다니면서 뭘먹건 지들 자유다만 도대체 저게 뭐냐고? 각자들 가져온 쓰레기만 그냥 가져가면 되겠구만 정말 저런 걸 보면 우리나라의 의식수준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길도 어마어마하게 험난하두만 그러니 절에가거나 산에 가거나 목적이 둘 중의 하나일텐데 도대체 왜 저런 방이 붙을 정도의 일을 하는 건지 또 의문과 속상함.
날씨가 안좋아 전망은 별로다만 저 멀리 보이는 게 북한강이고 저런 어마어마한 길을 걸어야한다. 물론 절에서 운행하는 차량이 다니긴하는데 사야는 차라리 걷고 말지 저런 길을 차로 다니는게 더 무섭다..^^;;
저런 신발로 어찌올라가냐고 고마우신 아주머니들의 염려도 들어가며 그래도 어찌 어찌 도착한 수종사입구. 저 멀리 보이는 관세음보살님을 보니 다왔다는 안도감에 벌써 저기서부터 절하고 싶더라지..ㅎㅎ
그런데 실상은 관세음보살님이 지나니 절이 있는 게 아니라 저 멀리 저렇게 수종사는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가시고' 있더라는 것
아 정말 그 순간은 얼마나 갈등이 되던 지 안그래도 높은 신발이야 올라가는 건 가능해도 내려가는 게 문제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산만 아니었으면 담배한대 피며 그냥 돌아설까 심각하게 고민했을거다.
정말 피나는 노력끝에 도착한 수종사. 듣던대로 전망은 정말 좋더라.
그래서 유명한 수종사의 그 찻집. 부처님오신 날이라 찻집은 안하고 그 앞에서 보살님들이 그냥 차를 나눠주고 계셔서 한잔 얻어마셨다.
부처님오신 날 절이 붐비는거야 당연하다만 이 절은 워낙 꼭대기에 있어서인 지 규모가 너무 작아 참배객이며 등산객이며 너무 정신이 없더라.
오백년 밖에 안되었다는게 믿기지 않을만큼 웅장하던 은행나무. 가을이면 저 뒷 강풍경까지해서 볼만하겠다. 저 왼쪽 돌에 수종사 사적비가 있는데 세조가 어디서 종소리가 들려 와보니 그게 동굴안에서 물떨어지는 소리였다나? 그래서 붙은 이름이라니 참 낭만적이다.
저 신발을 신고 올라갔다지..ㅎㅎ 내려오는 길은 정말 너무나 힘들고 조심조심 걷다보니 힘이 들어가 다리가 풀리면 어쩌나 걱정도 되고 결국은 저렇게 맨발로 내려왔다. 생각보다 아프지도 않았고 오랫만에 맨발로 걷는 느낌이 참 좋더라.
너무 힘이 들어서 돌아볼 생각은 못했는데 생태체험마을인가 그렇고 멋진 나무다리도 있고 어쨌든 또 가고 싶은 곳이다.
차시간은 좀 남아있고 올라갈 때부터 눈여겨본 찻집에서 간단히 캔맥주를 한잔 했는데 비닐하우스내부를 저렇게 근사하게 만들어 놓으셨더라. 직접담근 효소나 장같은 것도 파시던데 다음에 가면 자세히 살펴봐야겠다.
그 피곤한 상태로 전철을 탔는데 사람들은 또 어찌나 많던 지 앉아가고 싶다는 간절하고도 처절한 욕구가 할머니들이 많으신 관계로 철저하게 무산되는 아픔을 겪었다지..ㅎㅎ
험난한 앞날을 예상못하고 집에서 왕십리역까지 걸어간데다 또 타서 앉자마자 착하게도 어느 분께 자리를 양보해서 운길산역까지 서서 갔었으니 말다했지..^^;;
저런 곳을 보통 혼자다녀오면 늘 기분이 좋아지는 사야인데 어젠 그렇지가 않았다지. 사실 거기다 어젠 특히나 기분이 별로여서 나간 길이었는데 전혀 나아지지않은 상태라 그 길로 친구를 찾아가 한강변을 또(!) 조금 걸었다.
한적한 곳을 찾아 물가까지 내려가 잠시 앉아있었더니 물결이며 고요며 얼마나 좋던 지. 집에 아주 녹초가 되어 돌아오긴 했다만 그래도 강변에 나가길 잘했다. 산은 산대로 물은 물대로 정말 좋다. 특히 한강은 정말 아름다운 강이란 생각.
언제 비오는 날, 그땐 사람도 적을테니 (물론 준비를 단단히하고 가야겠지만) 다시한 번 찾아가 저 찻집에서 차한잔 마시고 싶다.
산사의 빗소리를 들으며 저 멀리 한강을 바라보고 있다보면 해탈까진 아니어도 아주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 깨달음하나는 얻고 올 수 있을 것같은 그런 절이었다.
아 그러고보니 낙산사의 홍련암에도 함 다녀오고싶다...
2012.05.28 수종사를 다녀와서...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