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노란대문집

安貧樂道의 삶, 어지러운 삶

史野 2008. 6. 14. 15:13

아스팔트아이로 자라 화려한 대도시만 떠돈 나는 시골에 내려가 안빈낙도의 삶같은 걸 꿈꿔본 적은 없다.

 

물론 신랑이 오십이 넘으면 돌아가 살고 싶어했던 독일에서의 삶은 아무리 문명속이라도 그 비슷한 분위기는 냈겠지만 그 곳 마저도 내겐 너무 작은 도시라고 불평했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장성에서의 구박십일은 내게 그랬다.

 

국립공원안이기도 하지만 절집이나 마친가지인 그 곳에서 어디도 가지않고 그 짧지 않은 시간을 남친과 내내 붙어 지냈다. 연인은 고사하고 부부라도 그 긴 시간을 눈 뜨자마자 잘 때까지 삼시세끼를 같이 먹으며 지내는 사람들은 세상에 아마 많지 않을거다.

 

당연하게도 투닥거리는 싸움도 했지만 나름대로 잘 지내다 돌아왔다.

 

 

느즈막히 일어나 이렇게 커피도 마시고 (물론 원두분쇄기며 다 싸들고 갔다..^^) 저녁이면 모든 일을 마치고 저 곳에서 깜깜해질 때까지 술 잔을 기울이며 새소리 물소리 혹은 깜빡이며 날아다니는 반딧불에 감동하기도 했다.

 

 

 

간혹 낮에는 대나무 평상에 누워 뒹굴거리고 했고

 

 

아예 의자를 개울로 가지고 내려가 책을 읽기도 했다.

 

 

그렇다고 놀기만 한 건 아니고 저렇게 장작을 쌓아놓거나 창고정리를 하거나 집주변을 대대적으로 물청소도 하며 삭막했던 저 집을 나름 살만한 곳으로 만들려는 노력(?)도 했다

 

 

그리고 먹는 식사는 꿀맛. 이 상은 대부분이 어머님이 가져다주신 밑반찬이다만 그래도 매번 최소한 한가지씩의 새로운 반찬은 만들고 이런 저런 맛의 볶음밥도 만들어먹으며 이런 게 사는 맛이고 행복일거라고 남친을 아주 감동시키기도 했다..ㅎㅎ

 

 

남친은 새로 시작한 벌키우기에 온 정성을 쏟고..

 

벌을 키우는 건 왠지 불로소득같다는 생각을 했더랬는데 의외로 신경써야할 일이 많아 놀랬다.

 

 

벌이라면 끔찍했던 나도 막연하긴해도 이게 수입원이 될 수 있단 생각을 하니 심지어 귀엽다는 생각까지...^^;;;;

 

 

집옆에 놀고 있던(?) 자그마한 언덕땅을 남친은 완전무장을 하고는 초토화작업을 하는 중이다. 언젠가 저 곳에 근사한 내 서재를 만들어주겠다고 벼르고 있는 중.

 

 

그리고 말했듯이 모든 일과를 마치면 남친은 늘 이렇게 예불을 드린다.

 

그러니까 본채문을 열면 그 집은 말하자면 작은 법당이다. 남친이 늘 모시고 다닌다는 목조 관세음보살님이 계시고 얼마전에 서울에서 모셔간 자그마한 지장보살님도 계신다.

 

나도 언젠가 저 앞에서 매일 백팔배를 하는 날도 올까

 

 

하루저녁은 정말 세상이 미친듯이 비가 내렸다. 몇 일전 서울저녁도 난리였고 울 올케언니는 집에서도 무서웠다는데 저 산골에서 기분이 어땠겠는가

 

 

앞집개인 방울이마저 차마 그 빗속을 나갈 생각은 못하고 우리옆에 붙어 꼼짝을 안하더라. 사람들이 거의 오지 않은 곳이지만 방울이가 단골손님이고 도둑고양이가 무려 일곱마리나 찾아온다. 이상한 가족구성인데 어른 고양이가 세 마리에 새끼가 네 마리다.

 

새끼고양이때문에 먹을 걸 던져놓으면 저 방울이 놈이 어찌 귀신같이 알고는 찾아와 먼저 먹어버릴 때가 많아 가끔은 속상했다지..

 

 

비가 오는 날이면 두꺼비 구경도 심심치 않게 한다. 아니 개울에는 청개구리들도 살고 있으니 (그래서 뱀도 산다더만) 별 신기한 일은 아닐지 모르겠다만 깜깜한 밤에는 혹 밟기라도 할까봐 신경이 쓰인다.

 

 

그리고 비가 그치면 그 곳은 아름답고 평화롭다.  저 장작옆으로 앞집 옥상이 안보이게 자그마한 나무들을 심고 그 앞에 꽃밭과 채마밭을 조성하려고 하고 있다.

 

폐가(?)나 마찬가지였던 집이었는데 이렇게 우리의 손길로 하나씩 자리를 잡아가니 신기하기도 하다.

 

남친은 어제 마당에서도 들을 수 있게 집앞에 거대한 스피커를 세팅했단다.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는데 내가 돌아와 남친을 만난 건 정말 내게 행운이다.

 

그 남자는 내게 커다란 산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나는 뭐가 이렇게 자신이 없는 걸까

 

서울로 돌아온 지 이틀

 

거기 있을 때는 구박십일이 아니라 그냥 한달을 내리 사람하나 보지 않고 살아도 괜찮을 것 같았는데 다시 서울로 돌아오니 그 곳이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절묘하게도 남편신상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설마했는데 지난 주 본사에서 도쿄지사를 폐쇄하기로 확정을 했고 이젠 우리 문제도 확실히 마무리를 지어야할 시간. 

 

안그래도 복잡한 상황이 더 복잡해져 버렸다. 안그래도 내가 우리부부는 회사때문에 헤어졌다고 말할 정도로 그지같은 회사인데 정말 끝까지 내 인생에 도움이 안된다.

 

지난 주에도 어제도 전화한 시어머니의 목소리가 하도 애닯아 일본이 아니라 당장 독일에 다녀와야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가슴이 아프다.

 

한번은 꼭 넘어야할 산인데 그리고 나는 어디로 올라가서 어디로 내려와야하는 지를 알고 있는데 왜 이렇게 막막한 걸까

 

나는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걸까

 

마흔이 되어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살겠다고 한국에서의 생일파티를 준비하며 들떠있던 게 겨우 일년 전인데 그동안 너무나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난 지금 그 곳으로 부터 너무나 멀리 와있다.

 

조만간 결정을 내려야하고 해결해야할 일들은 산더미같은데 머리는 하얘지고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그런 시간들이지만

 

믿자 나를 믿고 다 잘될 거라고 믿고 또 내게 앞으로 따뜻한 인생이 남아있을 거란 희망을 버리지 말자.. 

 

 

 

 

 

2008.06.14. 서울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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