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노란대문집

그 남자네 집을 다녀와서

史野 2008. 5. 29. 15:46

요즘 심각하게 고민하는 문제중 하나가 집문제다.

 

이 집이야 어차피 삼개월이면 계약이 끝나고 월세도 비싸서 나같은 백수가 더이상 감당을 할 수 없으니 집을 알아봐야한다.

 

서울 전세값은 너무 비싼데다 여기 일자리가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서울에서 버텨야할 이유가 있을까 싶어 남자친구쪽으로 이사를 해볼까 고민하고 있다.

 

박완서의 소설제목은 아니고 그래서 '그 남자네 집'에 가서 그 동네 분위기도 좀 볼겸 있었더랬다.

 

 

 

그 남자는 국립공원안 저런 특이한 집에 산다.

 

처음 갔을 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지..^^

 

내겐 별세계나 다름 없는 곳. 참 낯선 곳이라 생각했는데 몇 일 묵었더니 나무들때문인지 새소리때문인지 참 마음이 편한 곳이었다.

 

저녁이면 그 남자는 꼭 혼자 목탁을 두드리며 독경을 한다. 역시 처음 들었을 때의 그 신기했던 기분.

 

 

그리고 전자기타도 연주한다. 목탁소리에 고즈넉한 마음이었다가 들리는 전자기타소리는 삶이란 참 재밌는 거구나 생각하게 한다..ㅎㅎ

 

 

이번에 새로 꾸며놓은 건데 저 의자에 앉아 밖을 내다보면 내 방 창문으로 보이는 세계와는 백팔십도 다른, 세상과 격리된 느낌을 받는다. 하긴 예전 시댁거실에서도 그 비슷한 느낌을 받았으니 내게 아주 낯선 느낌은 아니더라도 말이다.

 

 

원래는 주변을 돌아볼려고 간 거였는데 여러가지 일이 많아 내내 저 집에서 낫으로 풀을 뽑고 나무들을 정리하는 일을 했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해보는 낫질이었는데 힘은 들었지만 무심이랄까 정말 일하는 동안은 아무 생각이 들지 않더라.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땀이 흥건하도록 일을 하곤 소박한 밥상에 한끼의 고마움(?)을 느낀 날들이었다고 해야할까.

 

그래도 지 버릇은 누구 못 준다고 그의 어머님 텃밭에서 뜯은 상추에 삼겹살을 구어먹기도 했다.

 

저 뒤의 돌무더기(?)는..

 

 

이번에 내가 만든 작품(?)인 돌배수관이다. 저길 다녀온 적이 있는 고기공놈이 그제 저 사진을 보고 놀래던데 물이 안빠져 지저분해 보이는 걸 참을 수 없어 돌을 날라다 만들어놓았더니 내가 생각해도 흐믓하기 이를데 없다.

 

난 왜이렇게 아이디어로 넘치는 거냐고(문젠 꼭 돈과 상관없는.-_-) 혼자 오바하고 난리났었다지..ㅎㅎ

 

 

그 남자는 요즘 벌을 키우기 시작했다. 토종벌인데 아직 새끼들이라 신기하기만 하다. 아직은 겨우 두 개지만 조금씩 늘려갈 생각을 하고 있더라. 커다랗고 무뚝뚝한 남자가 새끼벌들에겐 어찌나 자상하고 대답도 않는 벌에게 말은 많은지 벌하고 놀고 있는 걸 보면 웃음이 날 지경.

 

 

그 남자가 묵는 방은 장작을 때는 방이다. 저렇게 쌓인 나무들을 보면 먹이 쌓아놓은 개미도 아니면서 왜 기분이 좋아지는 지..

 

 

 

처음갔을 때는 사람살 곳이 아닌 줄 알았는데 차츰 사람사는 꼴을 갖춰가고 있는 중인데 그 남자네 집이 '우리' 집이 될지는 미지수다...ㅎㅎ

 

 

 

 

어쨌든 돌아온 지도 벌써 구개월이 넘었다.

 

한치앞을 내다볼 수 없다는 게 인생이라해도 내 삶은 일년 전과 비교 백팔십도 달라져있다.

 

가장 중요한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진 않았지만 그래도 참 많은 일을 했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

 

삶에 참 서투르기 짝이 없는 인간인지라 여전히 좌충우돌이긴 하지만 아직까진 아침마다 새로운 희망에 부풀어오르고 뭔가 해낼 수 있을 것 같으니 웃어야할 지 울어야할 지..

 

한동안도 면허따고 운전한다고 정신없었는데 남은 삼개월은 더 처절하게(?) 고민해야하고 더 많이 바쁠 듯하다.

 

우선 새로운 거취문제가 해결이 되야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을테고 한동안 엉망이 되어버린 생활리듬도 다시 찾아야 하니 말이다.

 

운전한다고 달리기를 제대로 못하고 또 사람들 만나느라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더니 순식간에 몸무게가 불어버려서 오늘 오랫만에 달리는데 내 몸이 무거워서 죽는 줄 알았다..^^;;;;

 

우짜든둥 남에게 피해주면서 살진 말아야할텐데 내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이렇게 나와서 혼자 지내니 여러사람들 신경쓰이게 하는 건 피할 수 없는 사실인거 같다.

 

그래도 뭐 14년 떠나있던 삶이니 다시 돌아오는데 일년정도 과도기는 필요한 거 아닐까? ㅎㅎ

 

삼개월뒤를 가늠할 수 없는 인생일지라도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시작이다.

 

이 삼개월을 잘 마무리해야 내게 펼쳐질 새 인생이 온전히 내 것일 수 있을테니 말이다...

 

오늘 모님과 점심을 먹으면서도 이야기했지만 참 팔자도 드럽게 센 인생이다만 팔자를 만드는 것도 성격이니 불평같은 건 하지 않으련다.

 

내게 산다는 건 이유불문의 'must'....

 

 

 

 

2008.05.29.서울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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