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노란대문집

장성에서 보내는 편지 2

史野 2008. 6. 20. 23:04

원래 서울에 조금 더 있을 예정이었는데 가족들과 트러블도 있었는데다 이래저래 마음이 복잡해 지난 화요일 그때 그 친구놈과 함께 다시 장성으로 왔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저 창문위로 달린 스피커입니다. 저기가 저희가 쉬거나 술잔을 기울이거나 주로 앉아있는 자리인데 이젠 저 스피커로 근사한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답니다.

 

실내에 씨디 다섯장이 들어가는 플레이어를 마란츠앰프로 연결해 각자 스테로오인 스피커 두 대로 듣는 음악 정말 죽입니다..ㅎㅎ

 

특히 깜깜한 밤 반딧불이 날아다니는 곳에서 듣는 첼로음은 특별하지요.

 

제가 얼마남지 않은 남친생일에 주는 선물인데 남친이 발품이 아닌 인터넷품을 열심히 판 덕에 중고로 다 합해 23만원에 구입했습니다. 성능 끝내주는데 대박중 대박입니다.

 

 

밤에 도착했은데 그때부터 무섭도록 쏟아진 비는 다음 날까지 계속되었고 개울물은 저렇게나 불었습니다. 마음이 심란해질만큼 엄청난 소리를 내더군요. 저같은 몸매도 쓸려가는 건 순식간이니 조심하라는 남친의 말을 들었을 정도입니다..^^;;;

 

세 사람이 하루종일 꼼짝도 못하고 그저 쏟아지는 비만 쳐다보며 지냈지요.

 

 

 

다음 날은 비가 좀 그쳐 다행이었습니다만 여전히 제가 의자를 가져내려가 책을 읽기는 무리였지요. 친구놈은 물소리가 시끄러워 잠이 안 올정도였다지만 저는 평소에도 저 정도이면 좋겠습니다..ㅎㅎ

 

 

그리고 어젠 제 생일이었습니다. (기대하고 들어왔더만 아무도 축하메시지를 안 남겨주셔서 삐졌어요..흑흑)  전 날 비때문에 장을 못가기도 했지만 친구놈이 심하게 아팠던 관계로 아침 생일상(?)이 저렇게 되어버렸지요

 

목이 부어 먹을 걸 넘길 수 없는 친구놈은 죽이고 남친은 평소먹는 토스트고 저는 저 두 남자의 식사를 준비하느라 전날 남은 찬밥에 저 반찬입니다..-_-

 

비가그쳐 드디어 담양까지 남친이랑 장을 보러갔는데 제가 운전을 했습니다. 이게 왜 신기하냐하실 지 모르겠지만 제가 운전하는 차를 남친이 탄 건 어제가 처음입니다.

 

아주 먼거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코너링이 많이 필요한 길이었는데 저 운전 잘한다고 칭찬들었습니다..하하하

 

 

장을 봐와 점심도 맛있게 먹었지만 저녁에 바베큐를 해먹었습니다. 멤버는 물론 가시님만 아시는 지난 번에 오신 여성분 두 분이 계셨구요..^^ (가시님 한 분은 이장님 사모님을 열심히 찾으시고 한분은 이장님 사모님이 바쁘신데 또 오시겠냐고 하시더군요..흐흐)

 

저 것도 이번에 업그레이드입니다. 집 뒤 부엌쪽으로 비가 그냥 들이쳐서 암담했는데 조금 막고 나무로 된 야외식탁이 생겼더군요

 

 

일부러는 아니지만 쓰레기를 태우거나 어쩌거나 캠프파이어기분도 내고 나름 낭만적이었습니다.

 

 

이젠 음악도 들을겸 앞쪽으로 옮겨 촛불도 키고 제대로 분위기 연출입니다. 저 두 남자는 이년 가까이 한 집에 살았기에 워낙 친하고 저는 또 저 친구놈이랑 늦게 만났어도 무슨 동창처럼 친하기에 셋의 동거(?)는 그저 마음이 편합니다.

 

 

드디어 어제의 주인공 출현인데 사진이 영..^^;;; 워낙 편한 인간들이랑 있어서인지 아님 여러 상황상 기분이 영 아니었는 지 제대로 취해서는 오늘 아침 남친 표현에 의하면 제대로 땡깡(!) 부렸다더군요..ㅎㅎ 

 

 

그럴 수 있었던 건 또 분위기인데  너무나 다른 두 남자는 참 잘 맞고 셋이 말하자면 서클을 만드는 천적관계입니다. 저 한테 엄한(?) 편인 남친은 저 친구놈에게 깜박하고 저는 저 친구놈에게 개판치고 그러거든요..ㅎㅎ

 

 

오늘 아침 피곤했던 거에 비하면 눈을 번쩍 떴습니다. 비는 내리는 데 사위가 밝아오더군요.

 

 

아직 가로등도 꺼지지 않은 시간 비도 오는데 분위기상 참을 수 없어 미친 척 혼자 차를 몰고 나갔습니다

 

 

잘난척하고 차를 몰고 다니긴 하지만 왕초보인 사야, 오늘새벽이 첫 우중운전이었습니다. 빗소리 요란하고 차는 없고 분위기 좋고, 이 이게 차가 있고 운전할 수 있는 재미구나를 절절히 느낀 시간이었어요

 

 

한시간 반 정도 마구 돌아다니다 돌아오는 길. 백양사 들어가는 길입니다

 

 

들어가는 길이 이 분위기인데 갑자기 제가 어디로 살러가려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지요..ㅎㅎ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홍콩의 야경보다 더 제 마음을 흔드는 건 이런 분위기입니다.

 

 

제가 지금 머무는 마을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저 산속 어딘 가에 제가 지금 있으니까요..^^ 자는 남친을 깨워 전화로 부탁하긴 했어도 생애 최초 우중 새벽 드라이브를 마치고 돌아가 막 갈아끓인 원두커피를 마신 그 기분은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친구놈은 오늘 점심에 떠났고 이 곳에서의 일상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번엔 계획없이 머뭅니다.어차피 걱정되던 웬만한 화분들도 싸가지고 왔고 가능한 오래 버텨볼 생각입니다.

 

늘 그랬듯 독일에서 제 생일을 챙길 사람들은 통화내용은 다르더라도 변함없이 챙겼고 오늘 저를 걱정하는 남친과도 심각하게 이야기했디만 지금 마음이 아주 편안한 건 아닙니다

 

그래도 잘 이겨내겠습니다.

 

어쨌든 돌아와 첫 생일을 이 곳에서 지냈습니다.

 

열받는 일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나름 잘 지내고 있습니다.

 

잘 지내다 또 보고 드리겠습니다..^^

 

  

 

2008.06.20 장성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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