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예전 다니던 교회친구들과 모임이 있었다.
내 파티에도 몇 명이 왔었고 또 지난번에 한 친구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 남자애들은 몇 만났지만 이번엔 여자애들까지 총 열 세명이 모여 오랫만의 만남을 가졌다.
나는 중2때 이 동네로 이사를 온데다가 처음엔 여의도 순복음교회를 다녔기에 중3이 되어서야 그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말하자면 뉴커머.
대부분의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그 교회를 다니고 또 부모님들이 그 교회를 다니시는 말하자면 교회권력이었달까.
물론 나같이 방방뛰는 애는 (어제 한 남자애 자긴 보수적이라 나같은 여자애 별로 안 좋아한다더라.^^;;) 고딩때 부회장을 하긴 했어도 처음에 그 텃세는 말도 못했다지..ㅎㅎ
그래서 사실 나는 여자애들보다는 그런 걸 별로 안 따지는 남자애들이 덜 부담스러웠고 더 친했던 것 같다.
교회는 학교와는 달리 다양한 아이들이 모여 성적순으로 뭔가를 하는 건 아니니까 어쩌면 한국사회에서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일지도 모른단 생각은 기독교인이 아닌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제 이십년이 지나 치과의사부터 회사원 가정주부 나같이 백수까지 가지가지 모였지만 그 스물 몇 해전 학창시절로 돌아가 장난치고 떠들고 하다보니 사회적 경험의 차이랄까 그런 것들이 거의 없는 느낌이었다.
재밌게도 남자애들은 다 무난한데 여자 여섯명중 나같이 돌아온 싱글부터 미혼이 둘, 거기다 막상 자리가 길어지니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것도 여자애였다.
서로들 하나도 안 변했다고 어쩌고 하다가 육십이 되어 만나도 같은 소리를 하지 않을까하며 웃었다.
일찍 결혼한 친구는 벌써 중3인 아들내미가 있다고 하고 (대학때 사고친 내 친구중엔 고3 딸도 있다만..ㅎㅎ) 애를 셋이나 키우는 애들도 그 중 셋.
대선도 태안반도도 아닌 당시 누가 누굴 좋아했다느니 어쩌느니 그런 이야기를 하며 웃고 떠들며 일차 이차 삼차 사차 새벽까지 술자리는 이어졌지만 이상하게 정신은 말똥말똥.
지난 번 아버님 돌아가신데 와준게 고맙다며 청송에 사는 친구까지 올라와서 그 놈과 새벽택시를 타고 돌아오며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이십년의 세월이 우리를 스쳐지나가며 남긴 건 뭘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삼수를 해서 대구사범대를 갔던 그 놈은 어찌 편입을 해서 지금은 청송에서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고 있다고 했다. 내가 해야할 걸 왜 니가 하니 했더니 니가 안하니까 내가 하지, 하며 웃던 놈.
서울출신이지만 이십년이나 되는 세월을 그 쪽에서 보내 그 쪽 사람과 결혼까지 한 이 놈은 이제 경상도가 고향같단다. 원래 조용하고 괜찮은 놈이긴 했지만 초로가 넘은 지금 편안해 보이는 얼굴이 참 보기 좋더라.
그래 너도 그 사이 인생 잘 살았구나, 싶은 마음.
옛말로도 강산이 두 번이나 변했을 그 긴 시간 정말 하나도 변하지 않은 얼굴들, 세월에 맞게 나이먹은 얼굴들 이런 저런 얼굴들이 섞였어도 그 중고등학교때의 나를 알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저 편안할 수 있는 그 무엇, 그러면서도 쓸쓸하던 마음.
어쩌면 나는 몇년의 짧은 만남이 아닌 그 오래 전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찾아 돌아온거나 마찬가지인데 과연 그게 내게 의미하는 바는 뭘까.
과연 나는 정말 다시 그들사이에 혹은 이 사회에 그 긴 갭을 뛰어넘어 녹아들 수 있는걸까.
나는 왜 내가 너무 멀리 와버린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 걸까.
내가 변했기 때문인지 아님 이 땅의 사람들이 내가 두고 떠나온 땅의 사람들과 너무 다르기 때문인지 이런 저런 생각으로 잠못 이루다 늦게서야 간신히 잠이 들었다.
과연 나는 많은 소중한 것들을 포기하고 이 땅에 돌아온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언어라는 건 형식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내용의 문제인데, 어떤 언어를 쓰고 사느냐는 사고의 기본틀을 형성하는 뼈대라면 내용은 그 뼈를 감싸는 살일텐데 14년동안 한국어와는 거의 무관하게 살아온 내가 그 독일어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이 감성의 언어에 다시 익숙해지는 데는 얼마의 시간이 걸릴 것인가.
나는 당연히 독일인이 아니지만 한국인도 아니란 사실을 돌아온 내내 절감하고 있다.
26년이나 살았던 나라고 그거에 비하면 14년의 세월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데 그 14년에 너무나 올인을 했던 까닭일까
꼭 독일에 계신 내 시어머니가 친정엄마인 것만 같아 힘들고 어려울때마다 그녀와 독일어로 한참 수다를 떨고 나야 편안한 마음이 되곤 한다.
돌아온 지 이제 겨우 사개월인데 너무나 많은 일이 있었기 때문인지 가끔은 그 시간이 아득하고 또 가끔은 초조하다.
한시간 후면 손님들이 오고 일주일내내 하루도 빼지 않고 뭔가를 해야하는데 사야는 지금 참 많이도 흔들린다.
2007.12.16. 서울에서...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