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망 좋은 방

씩씩한 사야

史野 2007. 12. 13. 23:51

사야는 좀 심하게 씩씩하다.

 

징징거려봤자 해결되는 일이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기때문이다..ㅎㅎ

 

요즘은 옛 버릇이 나와서인지 가끔 새벽에 잠드는 일이 있어 달리기를 빠지는 날이 있긴해도 그래도 꾸준히 달리고 있다. 지난 일요일에 신랑과 강변역까지 달렸는데 잘 뛰는 나를 보고 어찌나 자랑스러워하던지.

 

러닝머신에서 나란히 뛰어본 적은 있지만 바깥에서 함께 뛴건 처음이다.  

 

사람들은 이 추위에도 달리는 내가 너무 놀랍다는데 사실 뛰다보면 땀이 나니 별로 안 춥다.

 

이야기했던 아는 동생놈하고 이십킬로 달리기는 선거일인 19일에 하기로 했다. 과연 잘 달려낼 수 있을 지 기대만땅이다. 그 놈에게 구박 안 받을려면 미리 십킬로로 연습을 좀 해놔야할텐데..^^

 

벨리댄스는 벌써 두 번을 했는데 힘은 들어도 너무 재밌다. 첫 날은 옷을 잘못입고 가서 땀을 무지 흘렸는데 두번 째는 춤복을 입고 가 맨발로 춤을 췄는데도 목뒤 머리까지 구슬같은 땀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온 힘을 다해 동작을 따라했다.

 

머리 가슴 엉덩이가 다 따로 놀아야한다는데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유연하기 이를데없는 선생님을 따라하다보면 십킬로 달리는 게 훨 낫겠다 싶을만큼 진이 다 빠지고 다음날은 엉덩이 근육이 뻐근거린다.

 

그래도 내가 왜 여태 벨리댄스에 관심이 없었을까 싶을만큼 무진장 섹쉬한데다 춤 추는 맛이 그만이다.(겨우 두 번 한 주제에 오바는..ㅎㅎ)

 

살사는 선생도 우리도 당연히 폐강일거란 생각으로 갔는데 학생 셋이 너무나 열성분자들인 관계로 폐강을 안하고 지속하기로 했다. 고기공놈하고 나는 구십프로 참석할거라니 한 여자가 자긴 백프로라나.

 

살사야 워낙 배우고 싶었던 춤인지라 몇 가지 스텝을 배우는 데 어찌나 신이 나던지.

 

우리가 혹 안나올까봐 살사바에 가는 이야기를 침튀겨가며 하는 선생에게 우선 춤이나 배우고 보자고 했다.

 

내일은 높은 샌들도 주문할텐데 정말 열심히 연습해서 살사바에서 날리는 아줌마가 되어야겠다고 주먹을 불끈..ㅎㅎ

 

뭘 입고 가야할 지 몰라 벨리댄스에 입으려던 긴치마를 입고 갔는데 무릎이 살짝 나오는 옷이 좋다나. 어쨌든 그 차림으로 고기공놈하고 비어플러스에 가서 맥주마시며 우리의 새출발을 자축하고 집에 와서 그 밤중에 둘이 연습까지 했다.

 

우리집에 전신거울이 있긴 한데 도저히 공간상 그 앞에서 춤연습을 할 수는 없으니 전신거울을 하나 따로 장만해야할 듯 하다.

 

이번주에는 영화를 빌리러 가서 '스텝업'이라는 춤 영화도 빌려다 봤는데 모든 세포가 살아나는 느낌. 아무래도 나는 전생에 기생이 분명하다..흐흐

 

여전히 맛사지도 빠지지 않고 다니고 있는 데 갈 때나 나올 때나 기분이 무지 좋다. 앞으로 나는 외모로(!) 먹고 살아야할 듯 하니 말하자면 나름 투자다..^^;;;

 

어젠 송현님덕에 무당이 하는 종이꽃 전시회에 갔다가 그 무당의 약식 굿까지 보고 거기서 샤머니즘을 배운다는 독일애랑도 잠시 이야길 나눴다.

 

재밌는 건 지난 번에 또 송현님덕에 인사동에 갔다가 전각예술하시는 분을 알게 되었는 데 어제 전시회에서 또 뵈었다. 아무도 모르는데 아는 얼굴이 보이니 어찌나 반갑던지..

 

그동안 갤러리에 왜 안 놀러왔냐고 난리시던데(아 정말 이 놈의 인기는..ㅎㅎ) 정말 나를 성격좋고 야무지다고 어찌나 좋아하시던지 무료로 전각을 가르쳐줄테니 갤러리로 출근하라신다.

 

밥까지 먹여줄테니 걱정말라시던데 설마 농담이시겠지..-_-;;;

 

그 분께 맛있는 저녁을 얻어먹고는 송현님과 우리집에 와서 새벽 세시반까지 술을 마셨다. 덕분에 돌아와서 처음으로 11시까지 자는 사태 발생..ㅎㅎ (송현님 오늘 멀쩡하신지..^^;;;)

 

친구놈말에 의하면 내가 술취하면 말도 많아지고 막무가내라던데 어제도 딱 그랬다지. 내 장점이자 단점은 아무리 술이 취해도 말을 하다 삼천포로 빠지는 일이 없다는 건데 아마 송현님 '저 질긴 인간' 하셨을 거다..ㅎㅎ

 

아무리 마음이 복잡해도 살아야하고 또 살아야한다면 잘 살아야한다, 가 내 신조다

 

이왕 온거 헤매지 말고 남들 걱정도 덜 시키고 내가 외국을 떠돌며 갈망했던 그러나 얻을 수 없었던 한국에서의 삶을 즐기며 행복해 할 생각이다.

 

정말 달리다가 배가 고파지면 들어와 밥챙겨먹기도 귀찮아 질때가 있는 데 그럴때 모퉁이슈퍼에서 단돈 천원에 한줄 맛있는 김밥을 사들고 들어올 수 있다는 것도 내겐 행복이다.

 

아직 사개월도 되지 않았는 데 단골들도 생겨서 어젠 맡긴 바지를 찾으러 갔다가 주인이 안 계시길래 내 맘대로 바지를 들고나와서는 그 앞 꽃집아저씨에게(나를 언니라고 부른다는 그 아저씨다) 상황설명을 하고 돈도 드리고 왔다..ㅎㅎ

 

성탄트리를 위해 진짜 나무를 구해야하는데 이 아저씨가 난색을 표하고 계신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 (하긴 뭐 나무에 꽂을 초도 아직 구하진 못했다만.)

 

여전히 이 곳에서의 삶이 낯설기는 해도 연말이 다가온다고 토요일엔 예전 교회친구들과 송년회도 있고 이 해가 가기전에 얼굴 한 번 봐야하지 않겠냐는 전화들도 걸려오고 한국에 돌아왔다는 걸 절절히 실감하고 살고 있다.

 

신랑은 네가 바라던 그 사랑의 느낌(나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니까)을 주지 못한 것 같아 마음아프다고 하던데 사람이란 원래 단 한사람만의 사랑만으로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신랑이 다녀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내 주변 많은 사람들이 내 남자와 나때문에 마음아파하고 있지만 이런 결과에 가장 마음이 아픈 건 당사자인 내 남자와 나고 (물론 가장 불쌍한 건 우리 시어머니다만) 그 아픔을 이겨내고 새 삶을 살아내야하는 것도 그와 나다.

 

함께 아픔을 공감해주는 건 미안하고도 고맙지만 안그래도 힘들고 아픈 나를 더 아프게 만들지는 말아줬으면 좋겠다.

 

어쨌든 사야는 그럼에도불구하고 씩씩하고 내 선택으로 남들에게 피해주지 않으며 이 곳에서 잘 늙어가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14년이 짧은 세월이 아니었기에 다시 한국인의 삶에 녹아들고 이 곳에서 자리를 잡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겠지만 그런 각오도 없이 돌아온 것은 아니니까..

 

여전히 뉴스야 안 듣지만 한국드라마도 보기 시작했고 가계부도 쓰기 시작했고 나름 애쓰고 있다..^^

 

 

 

 

2007.12.13.서울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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