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망 좋은 방

인연

史野 2007. 12. 5. 07:37

 

예전에 그런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이 생에서의 인연이 그간 오백생의 연이라면 나같이 그렇게 떠돌며 오대양 육대주 사람들과 인연을 맺은 인간은 전생도 무진장 파란만장했겠다 싶어 전생의 내가 안쓰럽다고 말이다.

 

14년 만에 한국에 돌아온 나는 요즘 인연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사람관계만큼 뜻대로 안되고 또 힘든 것도 없는 게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누군들 사연없고 질긴 인연이 없겠냐만 나는 특히나 질기고도 질긴 인연, 나를 참 오래도 힘들게 하는 인연들이 있다. 어쩌면 그건 모질지 못한 내 성격탓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한국에 돌아오면 가장 행복하리라 믿었던 두 사람, 그리고 내게 가장 큰 힘이 되리라 믿었던 두 사람이 나를 가장 힘들게 하고 있다.

 

신랑조차 그들은 내게 업이라고 할만큼 그동안도 쉽지 않은 관계였는데 내가 돌아온 지금  여전히 나를 괴롭히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당황스럽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속은 모른다더니 어쩌면 그들이 원했던 건 나란 인간의 실체가 아니라 그들이 만들어놓은 이미지, 그저 그들의 힘든 삶을 견뎌내게 하는 부적같은 존재였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

 

도대체 그들과 나는 전생에 무슨 인연이었을까. 얼만큼 더 힘들어야 그들과의 관계가 끝나는 걸까

 

요즘 몸이 많이 아팠다. 아니 마음이 아파서 몸이 아팠다는 말이 더 맞겠다. 몇 일 끔찍한 악몽에 시달렸고 내 생각보다 먼저 반응하는 정신세계에 진저리를 쳤다.

 

오늘은 다섯시도 안되어 깨어서는 커피를 끓여마시다가 오랫만에 시어머니랑 통화를 했다. 감기가 너무 심하게 걸려 내가 걱정할까 전화를 하지 못했다는 그녀는 생강차라도 끓여마시라는 내 말에 또 눈물바람을 했다.

 

막상 12월이 되니 이젠 크리스마스가 되어도 네가 오지 않을거란 사실이 견디기 힘들어 자꾸 눈물이 난다고 했다.

 

도대체 그녀와 나는 또 전생에 무슨 인연이었길래  인종도 환경도 나이도 넘어 이리 절절한 관계가 된 것일까.

 

이제 툭하면 감기에 걸리고 툭하면 눈물을 쏟는 그녀는 시간이 지날 수록 내 부재가 힘들어질까 아님 세월이 약이 될까

 

토요일에는 드디어 신랑이 온다.

 

겨우 일박이일이지만 시간이 다가올 수록 그것도 너무 힘이 든다.

 

물론 결혼한 후 이렇게까지 오래 떨어져있어본 적은 없어도 이제 겨우 삼개월인데 우리는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온다고 할 때 그냥 오지말라고 했어야 한 건 아닐까.

 

운이 없게도 그 날은 엄마생신모임이 이 동네에서 있는 날이다. 우리 식구들 모두에게 너무나 반가운 사람이었는데 불과 몇 백미터 떨어진 곳에서 상관없는 듯 시간을 보내게 될 거라는 것도 기분이 참 묘하다.

 

첫번째 맞는 고비다.

 

돌아와서 맞는 대부분의 일들이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가고 있지만 어차피 삶이란 뜻대로 되는 건 아니란 것도 잘 안다.

 

어쨌든 아무리 아파도 식사는 꼬박꼬박 챙겨먹고 있으며 어제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끌고 달리기도 나갔다. 일부러 늦게 나갔는데도 어찌나 춥던지 도저히 못참고 당장 따뜻한 옷들을 장만했다.

 

일요일에는 달리는데 어떤 아줌마가 ' 아니 아까 저기서 뛰시던데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네요' 어쩌고 무슨 십년지기라도 만난듯 반가와하며 달리는 내게 말을 시키는데 뛰다 멈추기도 그렇고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요즘 내가 하도 인연을 생각해서인지 또 저 아줌마는 나랑 전생에 무슨 인연이길래 저런 얼굴로 느닷없이 내게 말을 시킨 걸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_-

 

어쨌든 신랑이 오면 함께 달리기를 할 생각이니 오늘은 더 춥다지만 그래도 나가봐야겠다.

 

어제도 몸이 안 좋았지만 밸리댄스 개강일이라 차마 빠지지는 못하고 갔었는데 생각보다 괜찮아 한시간 땀을 흠뻑 흘리고 왔다. 대부분은 지난 학기에 배웠던 사람들이던데 도대체 뭘 배웠길래 몸동작이 저 모양인가 실망스러웠더라도 말이다.

 

금요일에는 고기공놈과 함께하는 살사가 시작인데 부디 폐강이 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래 이러니 저러니 해도 삶은 계속 된다.

 

 

 

 

2007.12.05. 서울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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