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장 우울했다 아니 우울하고 힘도 든다.
아무리 여기다 많은 이야기를 풀어도 또 풀 수 없는 이야기도 많은 법이고 (아니 내겐 아무에게도 풀 수 없는 이야기도 많다) 곧 12월 신랑이 다녀갈 날짜도 다가오기 시작하고 머리는 복잡 사실 미치고 팔짝 뛸 것 같은 심정일 때도 많다.
좀 전에 전화한 고기공놈 ' 언니 그래 달리기는 하셨어요? ' 하던데 얌마 내가 사람이라니까 달리기는 왜 하냐? ㅎㅎㅎ
오늘은 조카가 연극을 보여준다고 해서 돌아오고 처음으로 대학로에 갔었다. 한국에 오면 나가던 대학로인데 이게 정말 다니러 온 사람과 살러 온 사람의 차이인가 싶은 심정.
염쟁이 유씨라는 연극은 내가 도쿄에 살았다면 일년치 웃음을 다 웃었을 만큼 유쾌하고 좋았다.
거기다 벌써 조카놈 덕을 보다니..
중1때 연극부였고 내 인생 최초의 연극이(뮤지컬빼고) 중학생 때 그 대단한 에쿠스를 본 거였으니 소극장에서 멋진 연극을 보고 온 오늘의 감상은 남다르다.
그것도 한국어로 보는 연극이라니..
아까 올케언니에겐 더블린에서 보고 처음인거 같다고 했지만 언젠가도 썼듯이 시댁이 크리스마스때는 늘 함께 뭔가 보러갔었기에 연극을 마지막으로 본 건 시조카가 태어나기 전인 것 같다.
울 올케언니 휴가나온 조카놈에게 너는 엄마랑 고모선물은 안 사왔으니까 연극을 보여달라고 했다는데 왕 황당.
아니 언니 쟤가 어디 해외여행 다녀왔어요? -_-
이 놈이 동생에게 옷을 사준 건 알고 있었는데 수능보느라 수고했다고 형이라 인심쓰는 줄 알았더니 오빠에게도 골프장갑을 선물했다는 거다.
아 그래요? 그럼 우리도 연극은 얻어 봐야죠..ㅎㅎ
일본에서 11월 3일은 문화의 날이다.
나야 백수고 달력도 없고 신랑이 쉰다면 쉬는 가 보다 하는 인간이었는데 어느 날 내일 쉰다던 신랑
자기야 내일은 왜 쉬는 데?
응 네 날이라고 쉰다더라.
헉 내 날이라 쉰다니 무슨 말?
문화의 날이라고 쉰다던데 '문화' 하면 내 마누라잖아..ㅎㅎㅎ
오늘 휴가나와 엄마와 고모를 끌고 이런 연극을 보러 온 멋진 조카놈을 보며 그 말이 생각났다 ( 아 이 연극을 보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건 언니라더만)
실컷 웃고 기분좋게 내가 자주가는 비어할레에 앉아 셋이 맥주잔을 기울이며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란 생각이 들더라.
그때 울린 조카놈의 휴대폰. 우리 오빠 뭐하냐고 묻다가 맥주마신다니 맛있는 거 사오라고 했다나
조카왈 맛있는 걸 먹어라도 아니고 사오라니 잘못 들었나 다시 물어봤다고 해서 또 셋이 한참을 웃었다.
언니야 오빠가 늘 하는 말이라며 웃었지만 둘째 조카놈은 아직 논술과 면접까지 남아 오지도 못한 상황인데 그럴 순 없어 KFC에서 닭사서 들려보내며 참 아름다운 가족이란 생각이 들어 역시 행복했다.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소설이 김영하의 '빛의 제국'인데 그 표지에 그런 말이 나온다
기억하라,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감동했는데 소설가가 한 말이 아니라 폴 발레리가 한 말이라는 게 읽다보면 나온다.
어쨌든 가슴을 치는 말이다. 오늘 연극중에도 삶이란 잘 죽기 위한 과정 작은 것들이 쌓여 삶이 이루어진다는 말이 나오는데 그건 내가 내 스스로에게도 지인들에게도 자주 하는 말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트라우마가 없는 인간도 없지만 또 살면서 힘들지 않다면 노력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을 지도 모른다.
나는 어쨌든 내 인생을 내가 선택하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힘들고 괴로운 게 당연한 건지도...
솔직히는 다른 사람들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모두가 그럴 수 있는 건 아니고 또 그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니까 다 이해할 수는 없어도 나와 다른 그들을 이해할려고 애쓰고 있는 중이다.
물론 아무리 애써도 저렇게 살면서도 인생에 후회가 남지 않을까 아니 잘 죽을 수 있을까 억울해서 어떻게 이 생을 마감할까 싶도록 답답한 게 지금의 현실이라도 말이다.
어떻게 사는 가는 물론 자신만의 몫이다.
아빠가 어렸을 때부터 해줬다는 그 말
선택도 네가 책임도 네가 진다는 그 말.
나는 그게 내게 한정되는 말이기만 한 줄 알았는데 이제야 그게 다른 사람 그러니까 다른 이가 선택한 인생을 그 스스로가 책임져야하고 그게 어떤 그지같은 결과를 가져오더라도 그 사람의 몫이라는 걸 배우고 있는 중이다.
십대나 이십대나 힘들고 고통스럽기 마찬가지였지만 그보다 나았던 삼십대를 보내고 이제 사십대를 살아갈려는 출발
누구나 그렇겠지만 내 삼십대보다 나은 사십대를 살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작년에 포기했던 누드사진을 아직 준비기간이 육개월도 더 남았으니까 만으로 마흔이 끝나가기 전에 찍어볼까 심각하게 고민중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야는 다시 제자리다.
앞으로 나아질거라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앞으로도 노력할 거라는 것.
최소한 내가 노력해서 되지 않은 일이라면 후회가 남지 않으리라 믿는 다는 것.
나는 어쨌든 내 인생을 온 몸으로 부딪히며 내가 살아내고 싶다는 것.
한 달 반도 안되어 한국나이로 마흔 둘이나 되는 데
아무리 내 인생이 후지게 결말이 나더라도
내가 원하는 건 단 하나
누구 탓도 아닌 그저 내가 선택하고 노력했는데 그저 이 모양이라고 편히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조카덕에 보게 된 그 연극
염쟁이 유씨는 참 좋은 연극이다
실컷 웃고 나오지만 그 사이에서 아무것도 건질 수 없다면 그건 연극 탓이 아니라 당신 탓이다
대학로 두레홀 2관에서 12월 30일까지 공연이다.
2007.11.27.서울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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