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는 비행기가 김포로 낮게 다가가기 시작할때 그 수 많은 건물들을 바라보며 든 생각은 그거였다.
아 집이 저렇게 많은데 내가 들어갈 곳은 하나도 없구나..
이 집에 들어온 지 아직 세 달도 되지 않았건만 꼭 아주 오랫동안 이 곳에 터를 잡고 살았던 것처럼 편안하다. 물론 이 집이 내 집은 아니고 또 일년이라고 못 박아 놓은 기간이 있긴 해도 말이다.
혼자 살아본 적이 없다고 했지만 나는 혼자 살 수가 없던 인간이었다. 그런 내가 세 달 가까이 이 곳에서 이렇게 잘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 꼭 기적같아 신기하기 이를데없다.
술을 안마시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밤에 무난히 잠이 들고 새벽에 깨어나면 내가 또 무사히 한 밤을 잘 보냈구나란 사실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이건 정상인들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인생에서 대단히 중요한 뭔가가 부족한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그런 감동이다.
뉴스를 틀어놓고 이 유리같은 행복이 깨질 까봐 의식을 치르듯 원두를 갈아 커피를 마시는 시간. 그리고 옷을 갈아입고 나가 땀이 나도록 달리기를 하고나면 어쩌면 나도 정상인처럼 살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부풀어 오른다.
돌아와 음악을 틀어놓고 아침을 준비해 먹고는 복근운동을 하는 걸로 내 하루는 시작된다.
요즘은 엄마전화를 받지 않는다. 집전화야 발신자 번호가 뜨는 것도 아니니까 받았다 엄마라는 걸 확인하면 그냥 끊는다. 처음엔 그래놓고도 마음이 아파 큰언니에게 제발 나를 가만 놔두라고 전해달라며 부탁까지 했는데 이젠 마음이 편하다.
진작에 이렇게 했어야했는데 그 전화를 받으며 스트레스받고 울고불고 할 필요가 없었는데 바보같이 어떻게 여태 견뎠는 지 그것도 신기하다.
그냥 그랬었다. 내 마음아프고 말지 엄마가 아프고 괴롭다는 걸 내가 견딜 수가 없었다. 내 남자는 그런 나를 신기해도 하고 답답해도 하고 진심어린 충고도 했더랬는데 그땐 내가 그럴 수가 없었더랬다.
누구보다 엄마가 얼마나 불쌍한 인간인지를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불똥이 다른 식구들에게 튈까봐 늘 전전긍긍했었으니까..
안다 지금 엄마가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지 아니 자식에게 이런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기에 속에서 얼마나 열불이 날지를 잘 안다. 그러나 그건 이제 엄마가 감당해야할 엄마의 몫이라는 것도 안다.나는 엄마딸이지만 엄마 삶의 몫까지 내가 대신 져줄수는 없는 거다.
다행히도 어제 다녀간 올케언니말에 의하면 그 속상함을 엄마가 외숙모에게 하소연을 했다는거다. 언니와 어쩌면 이 일을 계기로 엄마가 조금 긍정적으로 변할 지도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우리 엄마가 남에게 진심을 내어보였다는 건 기적같은 일이다.
내 인생을 괴롭히던 두 가지 문제가 해결이 될 지도 모르겠단 희망. 내 병이야 워낙 오래되어 지금 속단하긴 이르고 엄마도 그렇게 칠십년을 넘게 사신 분이니 당장 변하시거나 하진 않겠지만 처음의 작은 차이가 아주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듯이 이 첫 출발이 계속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요즘 내게 달리기는 명상하는 시간 기도하는 시간 마음다스리기를 하는 시간이다. 앞으로의 인생이 어떻게 진행될 지 아무 생각이 없다면 거짓말이고 어떻게 먹고 살아야하나의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만 지금은 그저 내게 주어진 것들에, 지금 이 작은 행복에 감사하고 있다.
무엇보다 내 곁에서 나를 이해해주고 응원해주고 술잔을 기울여주는 많은 사람들이 눈물나게 고맙다. 어쩌면 인생은 공평한건지도 모른다. 신은 내게 엄마의 사랑도 튼튼한 신경줄도 허락하지 않았지만 분에 넘칠만큼 좋은 사람들을 내 인생에 허락하셨으니까. 나같은 인간에게 삶이란 하루하루가 기적이다.
어쨌든 나를 이렇게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이 공간을 업그레이드했다..^^
조금 흔들렸다만 아침에 침대에서 바라다보이는 풍경이다. 요즘은 해가 늦게 뜨니까 대충 일곱시정도인 것 같다.
나는 아침의 이 빛을 사랑한다. 모두가 조금씩 깨어나는 시간, 기대감에 젖게 하는 시간..
죠 위 역광인 녀석이 요 놈이다. 언니가 고구마를 샀다길래 하나 얻어다 키우기 시작했는데 한 놈은 금방 싹이 났는데 앞의 놈이 꿈쩍도 안하다 드디어 싹을 내밀때 어찌나 기쁘던지.. 지금은 보시다시피 두 놈다 무럭무럭 크고 있다.
바깥유리를 내가 닦을 수는 없고 관리실에서는 언제 닦는 건지 소식도 없고 내가 직접 사람을 불러다 닦아야하나 고민중이다. 이럴때는 시도때도 없이 유리닦을테니 커튼을 치고 계시라던 아타고가 그립다..^^;;
꽃이 너무 작아서 가까이 찍다보니 잘 안나왔다만 이 놈은 내가 키를 넘겨받은 그 날 나가서 사온 놈이다. 창고쪽으로 내놓은 놈들은 다 죽었는데 창가에서 햇살을 듬뿍 받은 이 놈은 오래 견디다 못해 다시 꽃을 피우기 시작해서 감동
독한 술을 좋아하지 않지만 꼬냑은 가끔 한 잔씩 마시는데 비운 병이 아까와 이렇게 변신시켰더니 의외로 괜찮다. 물론 저 줄기는 미리 꽃병에 담아 뿌리를 좀 키운 상태다.
원래 이 문짝에 이쁜 한지를 붙일 생각이었는데 놓고 바라다 보니 그냥 쓰는 것도 괜찮을 것 같긴해도 뭔가 밋밋한 듯하여 표정을 좀 집어넣었다.
아랫 놈은 요 놈인데 원래는 나무재질을 살려고 갔다가 이 화로가 너무 마음에 들어 구입했다. 당장 부레옥잠을 사러갔는데 이젠 들어가는 때라고 아저씨가 그냥 선물로 주셨다. 맨날 나를 '언니'라고 부르는 아저씨인데 정말 그냥 가져가도 되냐니까 주는 것도 기쁨이라시는데 어찌나 웃음이 나던지
위에 놈은 요 놈인데 친구가 인테리어 매장에 갔다가 나를 생각해서 구입했단다. 마음에 들지 모르겠다며 보여주는 데 이거 우리 문짝에 너무 어울리겠다며 대박이라고 좋아했다지 ( 얌마 내 말이 맞냐 안 맞냐? ㅎㅎ) 거기서 강화도로 가야해서 친구는 나중에 자기가 가져다주겠다는 걸 아니라고 당장 가서 걸어봐야한다며 다 싸들고 강화에 다녀왔다..^^
요 놈은 화로사러 간 집에서 발견한 것. 신발신기가 불편해 보통 식탁까지 가져와서 신는 경우가 많은데 보기도 좋고 신발신기도 편하고 역시 대박이다.
우리집에도 드디어 그림이 걸렸다. 지난 달에 지인과 간송미술관에 심상정 전시회를 보러 갔었는데 저 신윤복의 미인도를 보고 내가 너무 좋아하니까 함께 간 지인이 선물해줬다.
처음엔 그냥 그림만 어디 붙일려다 왠지 아까와 두루말이식으로 할려고 했는데 저런 종이 재질은 안된다길래 거액을 들여 액자를 맞췄다. 재밌는 건 내가 저 그림을 말아쥐고 들어갔는데 표구사 할아버지' 간송미술관에 다녀오셨어요? ' ㅎㅎ
워낙 좋아하는 그림이기도 하고 바라보면 바라볼 수록 마음에 든다. 저 곳에 걸 생각은 아니었는데 못이 박힌 곳이 저 곳밖에 없는데다 침대에 누우면 옆으로 보이는 장소라서 의외로 괜찮다.
어제는 블루님네 부부가 공짜표가 생겼다고 해서 고기공놈까지 넷이 헤어스프레이라는 뮤지컬을 보고 왔다. 신랑이 뮤지컬을 좋아하지 않았던 덕에 15년만이라고 좋아했는데 생각해보니 더블린에서 레미제라블을 보러갔었다. (블루님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 어제 제가 마음복잡한 일이 좀 있어 너무 수다를 떨어 죄송했습니다만 퐁듀로 갚겠습니다..ㅎㅎ)
너무 재밌고 흥겨워 일어나 함께 춤을 추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예전에 이야기했지만 나는 다음생에서는 춤추는 사람이 될거다.(누구 맘대로? ㅎㅎ)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진실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지는 참 오래..
다음달부터 어쨌든 춤도 배우러 다닐거다. 어제 등록할려다 못해서 어찌 될 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은 혼자 밸리를 한 번은 고기공놈과 살사를 배울 생각이다. 그녀에게도 살사를 함께 배우쟀더니 웃느라 숨넘어가더라. 그게 웃긴가? ㅎㅎ
송현님이 작업실중 한 방을 내어주시겠단 고마운 말씀도 하시고 시어머님은 그림을 계속 그리면 어떻겠냐고 하시는데 그동안 너무 머리만 쓰고 살았다. 이젠 좀 몸을 많이 쓰며 그렇게 살고 싶다.
석달이 다 되도록 그 좋아하던 클래식 씨디 한 장도 없이 가요나 팝이나 듣고 걸레를 삶고 소설책이나 잡지를 뒤적이며 전혀 다른 사람인양 살고 있지만 편안하다.
그 곳의 내가 나인지 이 곳의 내가 나인지..
2007.11.18. 서울에서 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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