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거나 말거나지만 이 수다쟁이인 나는 여자들이 모여 수다떠는 것도 엄청 싫어하지만 쇼핑하는 것도 싫어한다.
이러니 어찌 인생 편히 살겠냐고? ㅎㅎ
물론 마음에 드는 걸 찾기 어려운 까다로운 성격탓도 있다만 뭔가 사러 돌아다니는 자체를 피곤해 하기때문에 꼭 필요한 것도 미루기 일쑤.한국에 살때 그 많은 옷들도 맘잡고 나가 산 적은 거의 없다. 그저 돌아다니다 아 저거다 싶어 구입한 것들. 마음에 드는 걸 구입하기 어렵긴 해도 마음에 들면 당장 사는 지라 한 집에서 싹쓸이를 해오는 경향도 물론 있다..^^;;;
아무리 효소를 먹는 단식이라도, 그리고 절대 배부르게 먹는 법도 군것질을 하는 법도 없는 나지만 막상 이렇게 버틸려니 무진장 힘이 든다. 말하자면 뭔 영화를 보겠다고 이 고생을 자처했냐하는 자학까지 들더라는 것.
눈앞에선 맛있는 것들이 아른거리고 누군가를 만나 시끄럽게 떠들며 들이키고 먹고 싶은 욕망은 의외로 집요하고 강하다는 데 스스로 놀라고 있는 중.
도저히 집에선 혼자 견디지 못할 것 같아 그제는 찜찔방에 가 전신 피부맛사지라도 받을 생각으로 집을 나섰으나 때도 밀게 놔둔 적이 없는 관계로 또 이리 저리 돌아다니며 딴짓만 하다 집으로 왔지만 어제는 미친 척 나가서 머리를 자르고 염색도 했다.
이 동네에서 머리해서 성공해본 적이 없는 나이기에 그 시간에 시내로 나가긴 귀찮고 머리만 잘라 염색을 해달라고 했는데 그나마도 못 미더워 ' 아저씨 혹시 실패하실 경우 남들이 자를 수 있는 길이로 해주세요.'(아이고 잘났다..-_-)
어쨌든 변화를 좋아하는 나는 기분좋게 집에 오는데 평소엔 쳐다보지도 않고 다녔던 길거리의 호떡이며 음식점들이며 어찌 그리 눈에 팍팍 들어오던지..
어제는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오늘은 한의원에 다시 가야하는 날이기도 해서 달리기하고(얼어죽는 줄 알았다..ㅎㅎ) 복근운동하고 올케언니랑 약속을 잡았다.
먹을 것 담배 등등 딴곳으로 신경돌리기엔 영화보고 쇼핑하고 그런게 나을 것 같아서 말이다.
영화 '색, 계'는 오늘이 개봉이니 보실 분들을 위해 러닝타임 157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는 말만 하자.
날씨는 추워지고 가져온 옷은 거의 없고 (비싼 순서대로 싸왔기에 이야기했듯이 코트들 아니면 부츠다) 오늘 맘잡고 쇼핑을 좀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상설할인을 하는 곳으로 갔는데 워낙 필요한 게 많아서인지 눈에 띄이는 것들이 부지기수.
아 나 까다로운 인간 맞아? 싶을 정도로 이것 저것 구입했다.
나야 쇼핑 함께 다니는 사람뿐 아니라 파는 사람들까지 감동하도록 신속성을 자랑하는 데 자꾸 봐서 뭐하냐? 내 옷이면 옷이고 아니면 아닌 거지..ㅎㅎ
집에 와서 입어보고 매치시켜보고 그러는데 이럴 수가 뭐 하나 마음에 안드는 것이 없고 이 것 저 것 안 어울리는 것들이 없다. 오버쟁이 사야 조금 오버하자면 그냥 이렇게 오늘 한판으로 겨울나도 되겠다.
내가 좋아하는 색색 스타킹들도 몇 일전에 길거리에서 충분히 장만했으니 가방이랑 신발들까지 오면 이 찬란한 패션국가 대한민국에서 어찌 대충 살아남겠다 싶다.
내가 가진 가장 비싼 코트값정도의 의상 쇼핑을 그것도 잔뜩 하고 와서 이렇게 행복하다니 어찌보면 인생 참 단순하다. 아니 내가 단순한가..
사십년을 살면서 이렇게 꼭 필요한 물품들만 구입한 것도 처음이지 싶다. 집안 물건들도 그렇지만 내 옷장엔 지금 한번도 안 입거나 한 번 입고 말 옷들이 전혀 없다. 그 이야긴 자주 빨아야 한다는 이야기..^^
십년간 건조기를 썼기에 이 좁은 집에서 빨래말리는 것도 스트레스였는데 이젠 가습기 역할을 해주니 빨래하는 것도 즐겁다.
니가 언제까지 그렇게 버티나 그런 말은 말길 바란다. 지금 좋으면 좋은 거지 뭐 지금도 힘든데 오지도 않은 미래까지는 따지지 말자고..ㅎㅎ
이쁘고 따뜻한 옷들도 장만했고 날씬해지기 위해 이를 악물고 있으니 이제 이쁜 옷을 입고 만나러 갈 놈(!)만 찾아 나서면 되는 건가?
이렇게 집에만 있긴 좀 억울하잖아..ㅎㅎㅎ
꼭 필요한 물건들을 저렴하게 구입하는 게 이렇게 행복한 거구나를 경험한데다 오늘 옷팔던 아가씨, 저렇게 청바지 잘 어울리는 분도 드물다던데 그래 살다보면 좋은 일 행복한 일도 있는 거지 뭐 그치?
속이야 같지 않지만 요즘 사야는 꼭 한국을 떠나긴 전 그 때로 돌아간 그런 기분이다.
언니 오늘 안바쁘면 나랑 옷사러 갈래요? 물을 수 있고
북한산에 올라요 이야기할 수 있고
퇴근하는 지하철안이라는 그녀에게 당신 나 기분 그지 같은 데 오늘 술살래요 떼쓸 수 있고
술집주인에게 나 오늘 취했으니 개판쳐도 경찰부르지 말라고 이쁘게 경고할 수도 있고
구할 수 없던 먹거리가 널린데다 싸기도 한 이 나라....
주변인간들이 자꾸 나를 실망시키고 열받게 하긴 해도
집도 절도 없는 세계시민을 자처하면서도 도저히 한국인에서 벗어날 수 없어 한국여권 움켜쥐고 살던 이 여자 사야에겐
이러니 저러니 해도 돌아온 서울은 참 좋다....
2007.11.08.서울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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