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달리기를 즐겨한다고는 해도 요즘 달리는 건 쉽지가 않다.
온도는 문제가 아니지만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이 서울의 그 바람.
웃어도 좋지만 예전 '내 빰을 베어가는 구나' 싶던 그 바람마저도 이젠 '아 이게 그 바람이었어' 하는 그 흥분에 사는 사야다.
뛰다보면 땀도 나고 열이 나기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허벅지가 떨어져나가는 건 아닌가 싶을 만큼의 아침도 여러 번
드디어 값싼 겨울 달리기복들을 장만했다.
역시 웃어도 할 말이 없다만 그 따뜻한 옷을 입고 달리면서 든 생각은' 어머 세상이 이렇게 달라지는 구나.' -_-
대설주의보인지 뭐시긴지는 모르겠고 눈도 아닌 것이 춥지도 아닌 것이 어쩡쩡한 아침 카메라를 들고 길을 나섰다.
아침 해가 웅덩이에 걸렸다.
그래 안다
당신이 나타나기 전이랑 아닌 세상이 얼마나 다른지를..
눈을 찍어 나선 길인데
저 빛나는 햇살 아슬아슬 하기 그저 없다.
늘 지나치지만 달리면서는 엄두도 못 낸 저 역.
1981년 2월 부터 1993년 가을까지 나는 저 역을 정말 부지런히도 들락거렸더랬다.
7시 3분 차의 짝사랑부터 저 역에서 나를 기다리던 내 남자까지의 길고도 긴 나름의 역(그게 무슨 역이던)사가 있던 곳..
그 역쪽에서 내려다 본, 내가 달리는 길의 한 모습
달리가와 산책의 차이다.
아니 어떻게 사는 가의 차이다.
그저 스쳐지나가던 풍경이 내가 어떤 태도로 다가가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젠장 달리기뿐 아니라 인생도 마찬가지겠지만 빨리 달리다보면 스쳐가는 자잘한 풍경들이, 내일 와선 절대 다시 볼 수 없는 풍경들이 수도 없이 일어난다.
내가 달리는 코스중 설치된 조각품이다. 실제 바둑판인데 진짜 바둑을 두는 사람들을 본 적은 없어도 지나 뛸 때마다 가슴이 따뜻한 지점이다. 샨샤의 바둑두는 여자라는 소설도 생각나고..
역시 달리기가 아닌 산보다 보니 평소 안 지나치는 길로 접어들었다
오마나
너희들은 뭐니?
넓은 세상 보고 싶어 바다로 가는 아이들?
사진을 찍는 데 들리는 청소부 아주머님의 목소리..' 장관이네'
내가 턴을 하는 돌다리다.
오늘 사진을 찍다든 생각.. 저 다리도 넘쳐 못 건널 때가 있었다니..
장관이라고 외친 아주머니는 청계천이 진짜 청계천이 되기 위해 애쓰고 계시고..
백수인 사야는 그저 아릅답다 셧터나 눌러대고..
고지가 바로 저기라고 나를 위로하는 이 길은 늘 이렇게 떠나는 길이 아쉬어 늦도록 늦도록 남아있는 응달의 그 길
이 아름다운 동네를 사야가 날이면 날마다 달린다네
겁이 많은 사야는 운동화대신 등산화를 신고 길을 나섰다지..
그래 대설주의보까지는 아니더라도 눈이 온 건 맞는 거지?
저 풍경 뒷쪽에 사야가 자랑해마지 않는 그' 전망 좋은 방' 이 있다
그렇게 한 바튀를 돌고 나오면 아직도 떠나지 못한 가을이 나를 맞기도 보내기도 한다.
그리고 숨을 헐떡 거리며 날이면 날마다 지나치는 저 공중전화 박스안에서 사야는 참 많고도 많은 통화를 했더랬다.
아 젠장 그런데 다음엔 왜 내가 틀고 싶은 그 노래가 없는 걸까.
그렇게 서늘했던 아침이 다시 서늘한 새벽을 달려가고 있는 지금 말이다...
2007.12.07. 서울에서...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