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크 묻은 책장

펌-상처받은 짐승들 이야기

史野 2007. 2. 10. 18:00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2005-12-05

 

 

그렇다

이 얘긴 상처받은 인간들이 아니라 짐승들의 이야기다.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리고 그런 일들은 주로 껍질이 단단해지지 않은 막 생을 시작하거나 살아야 한다는 자각이 생기기 시작할 때 발생한다) 자기를 동물적 본능으로 보호해야만 하는 그 때가 이야기의 전부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상처받은 짐승들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랑은 아무 상관이 없을 것 같던 사형수랑 어느 잘 사는 집 아가씨의 사랑이야기라고도 표현할 수 있는 소설. 소설의 광고도 읽지 않았고 소설을 읽고 난 후의 작가이야기도 읽지 않았고 심지어 책의 뒷표지의 이야기도 읽지 않았다.

 

이 소설을 읽는내내 나는 울었다. 아니 울었다기보다 내 속에서 눈물이 계속 쉬지 않고 철철 넘쳐 흘렀다. 그랬다 절대 울고 싶지 않았는데 강물이 흐르듯 양재기에 물이 차면 넘쳐 흐르듯 그렇게 끊도 없이 눈물이 흘렀다. 저녁에 약속이 있고 그 약속이 아주 중요한 일이라는 걸 내 이성이 끊임없이 내게 강요하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옷을 거의 벗고 바닥에 퍼질러 앉아 정말 짐승같은 모습으로 꺼이꺼이 울어댔을 지도 모른다. 어쩜 그렇게 울어대야 한다는 걸 알고는 미리 술을 마구 사다 쟁여놓고는 그렇게 읽어내려 갔을지도 모르겠다.

 

그랬다 이 소설은 내가 가지고 있는 상처를 제대로 건드렸다. 위에 언급한대로 사형수와 어느 여자의 사랑이라고 했지만 그냥 만나다 끝나는 이야기다. 그 흔한 섹스장면 하나도 없다.

그냥 그들은 만난다. 만나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하고 자신의 속들을 꺼내 보인다.

 

아주 어렸을때 왕성한 독서력을 자랑하는데 집에 책이라는 건 별로 없고책을 읽고 싶어 괴로운 딸을 위해 극성스런 엄마는 새 책을 사주는 대신 늘 그 손을 잡아 끌고는 헌 책방으로 향했었다. 전질로도 사오고 읽고 또 가져다 더 싼값에 팔고 그러다 어떻게 읽게 된 책이었을텐데 잊지 못할 이야기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아님 내 기억력이 나빠서인지 지은이도 제목도 기억 할 수가 없다.

 

어쨋든 남의 마음을 볼 수 있는 선글라스와 내 마음을 누구나 들여다 볼 수 있는 단추를 팔고 있는 사람과 그 물건을 사는 사람 이야기다. 물론 누구나 선그라스를 사고 싶어했을테고 그 주인공도 선글라스를 사고 폼 잡다 상처받고 결국은 단추를 사게 된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무진장 어렸던 내게 그 이야기는 내 삶을 결정할 만큼 중요했는데 그때 난 인생을 알아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으니. (난 이래서 어렸을때 너무 심각한 책을 읽는 것에 부정적이 되었다.)

 

이 관계없는 것 같은 이야기가 내게는 그런 이야기로 읽혀졌다. 누구나 소통하고 싶어하는데 선글라스도 그 단추도 가지지 않은 인간들은 어느 곳에선가 빗겨가고 제대로 남의 마음을 읽을 수가 없는거다. 제대로 볼 수도 보일 수도 없으니 상처는 깊어가는게 아닐까.

 

자라면서 단 한 번도 엄마가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는 생각을 해 보지 못했다. 바꾸어 말하자면 이해받는 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그게 얼마나 외로운 일인지는 겪어 본 사람만이 안다. 그래서 난 지금도 그런 상황에 처한 사람이나 심지어는 사물에게도 감정이입이 쉽게 되어 헤맨다. 이 소설에서도 처음 버림받은 두 소년이 아파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더랬다.

 

그 이해받거나 사랑받아야할 대상으로부터 소외된 외로운 영혼들이 겪어야할 그 끝도없는 나락.

여 주인공은 그래도 그 아픔을 내어보이며 여러 번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난 거의 내 아픔을 내어보인 적이 없다.

 

심지어 고등학교때 나는 도저히 납득 할 수 없는 이유로 엄마에게 피가 나도록 종아리를 맞았는데 이 독한 애는 치마를 입고 학교에 갔다. 그때 걸어갔었는지 지하철을 타고 갔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뭔들 어떠랴. 중요하고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건 내게 묻는 애들에게 내가 잘못해서 맞았다고 나름 그럴싸한 이유를 꾸며냈다는거다.

 

늘 웃었던 나는 그랬다. 도저히 남이 나를 불쌍히 여기는 걸 한시라도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래 나를 포장하는 일에 익숙해졌던거다. 비겁했다고 할까 아니 그래서 속으로 더 많이 곪았다고 할까.

 

학교를 밥먹듯 빠져가면서도 공부를 했고 어떻게든지 내가 정말 이해받지 못할까봐 두려웠었다.

불면증과 신경과민으로 시달리던 그때 비겁했던 나는 죽음조차도 두려워 죽는 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어 이 여주인공이 부러울 정도다. 대신 미쳐버렸으면 좋겠다고 내가 이 고통을 느끼지 못하도록 아무 것도 몰랐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더랬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왜그렇게 삶에 집착하는 걸까 나란 인간은..

 

내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두 번의 생의 고비를 넘겼다고 하던데 그런 기억이 살아야한다는 본능으로 내게 그렇게 강력하게 각인 되었던걸까.

 

나는 결국은 엄마가 미안하다고 울고 불고 하게 할 만큼 아팠고 스무살 초반 나름 개판을 치며 복수도 했지만 속으로 용서하거나 이해한게 서로 아니다보니 늘 이 상황은 반복된다.

 

아이같은 건 낳지 않겠다고, 나같은 삶을 대물림하는 그런 잔인한 짓 같은 건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더랬다.

 

스스로를 위악적인 인간이라고 자부(?)하던 나는 또 이 책에서 한 구절을 만난다. 위악적인 인간은 스스로가 선하다고 생각하는 교만에서 비롯된다고..그런지도 모르겠다 내가 지금도 엄마에게 꼬박 꼬박 용돈을 보내고 엄마를 만나 울부짖고 엄마에게 좀 잘 살라고 끊임없이 외치는 건 나란 인간이 더 나은 인간이라고 그렇게 믿어버린 교만이었는지도.. 

 

그 날 눈이 퉁퉁 불어 사람을 만나고 또 술을 사들고와 내 남자를 기다렸다. 잘 우는 마누라랑 사는 그 남자는 소설때문에 울었다는 사실에 안심을 하고는 왜 울었는지를 자기에게도 말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맞아본 기억은커녕 소설에서도 언급되지만 사형수는 없고 수감자들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호화로운 감옥에서 생활을 하는 그런 나라에서 살다온 내 남자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나라.

 

윤이상씨가 감옥에 갇혔을때도 독일기자들이 온다니까 한국에서 탁자를 가져다 놓고 난리였다는게 갑자기 이해되던 그런 순간이 내겐 절망스러운 순간이기도 했다.

 

참 좋은 남자인 이 남자는 도저히 이해가지 않는 세상을 이해하려 무한한 노력을 하고 끈질긴 여자인 나는 또 그걸 이해시키려 몇 일 뒤까지 설명에 설명을 해대고..

 

이해받지 못하고 살았다고 생각한 여자는 과연 지금은 이해받고 있는건가 하는 절망감이 새삼 또 들더라.

 

내가 별 다섯개를 먹이는 이 소설은 사실 구석 구석 유치한 부분도 많다. 내 아픔을 제대로 건드리지 않았다면 그냥 넘어갔을 지도 모를..그리고 리뷰랍시고 이런 글을 풀어놓는데에 대한 갈등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숙제를 마치듯 이 글을 쓴다.

 

그리고 소설을 읽고나서는 그녀에겐 모니카고모라도 있었다는 생각을 했었더랬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내게도 모니카고모만큼은 아니더라도 일단 나를 이해하려던 형제들이 당시 있었다는 그런 생각이 드는 걸 보니 나도 이제 조금씩이나마 상처를 회복해 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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