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에세이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가끔은 아주 멋스럽고 가슴에 와닿는 이야기들을 접하곤 한다.
이것도 나이 들어가는 징조일까.
이번에 그녀에게 부탁한 책들도 보니까 그녀가 알아서 챙겨다 준 책까지 합하니 여섯 권중 네 권이 에세이다. 한동안 책을 읽지 못했고 그래 꼭 숙제가 밀린 초등학생처럼 읽기 가벼운 책들을 연달아 읽었다
우선 하루키의 재즈의 초상, 하루키를 좋아하는 건 신랑이고 내가 재즈에 특별히 열광하는 것도 아닌데 그냥 이 책이 읽고 싶었다.
내가 재즈를 좋아하는 건 재즈공연에 한정된다. 공연장에서 음악을 들으며 맥주를 마시고 또 좋아하는 사람과 이야기도 하는 것 그게 내겐 재즈의 맛이다.
꼭 재즈뿐만은 아니지만 음악을 들을 땐 좌뇌가 전혀 작동을 하지 않는 나는 (하긴 우뇌도 작동하지 않고 그냥 가슴으로만 듣는다만) 계보 외우는 것도 관심없고 분석에도 관심이 없기에 이 책은 그냥 그랬다.
하루키의 재즈편력을 읽는 건 그나마 흥미있었는데 키스자렛을 무시하다니..ㅎㅎ
뭐 나도 키스자렛의 재즈를 좋아한다기보단 그가 하프시코드로 연주하는 바흐의 골든베르그변주곡에 열광하는 수준이다만..^^
어쨌든 이 책을 읽었더니 재즈공연을 함께 다니던 리즈가 미치도록 보고 싶었고 그 기분이라도 느껴볼까하고 신랑이 회식을 하는 그제 공연예매를 할렸더니 치사하게 나같이 혼자 갈 사람은 어쩌라고 두 명이 앉는 자리를 한꺼번에 판매를 한다.
아무리 가고싶다고해도 두 명 자리를 사서 갈 생각은 없었기에 포기. 리즈가 보고 싶어 재즈공연에 갈 생각이었는데 리즈만 더 그리워졌다나 뭐라나..^^
그리고 이 책. 몇 장 읽다가 그냥 집어던질 생각이었는데 꾸준히 읽다보니 그녀의 솔직함에 매료가 되었다.
그녀가 장애인이라는 걸 우선 나는 몰랐었고 글을 읽으면서도 미혼이라는 것도 몰랐다.
장애인이라도 결혼하고 아이도 있고 그런 사람일 줄 알았는데 이것도 내 편견일까.
결혼은 몰라도 그녀가 사랑에 빠질 수 있길 빈다. 따뜻한 글읽기였다. (신애야 강의 좀 꼭 들어보고 안되면 청강이라도 좀 해봐라..ㅎㅎ)
황인숙의 시를 모르는데 황인숙의 산문을 읽다니..ㅎㅎ
역시 혼자 사는 가난한 시인의 조근조근한 수다다.
나보다 나이도 많고 사는 방식도 전혀 다르고 생각하는 것도 다르지만 그래도 열심히 잘 읽어내려갔더랬는데 마지막에 걸리던 한가지.
제주여행 뒤 누군가에게 로션을 빌려서는 친구까지 팍팍 발라댔다면서 지금 만나면 로션 한 병을 사주고 싶다 뭐 그런 이야기였는데 그걸 너무도 아무렇지도 않게 아니 혹은 절간에 가도 새우젓을 얻어먹을 수 있는 사람이란 투로 자랑스럽게(?) 써놔서 충격먹었다.
어떻게 남의 물건을 그렇게 조심성없이 다룰 수가 있단 말인가. 예전에 말했었지만 꼭 내 난로를 빌려줬더니 내게 말도 안하고 남에게 빌려줬다는, 그래놓고도 당당히 '언니가 내게 난로를 빌려준것처럼 누군가 필요해서 내가 빌려준건데 왜 그 마음을 이해못하냐고 하나님께 기도까지 했다' 는 어느 여자애가 오버랩되었다면 내가 너무 확대해석하는 건가
아 참 또 하나, 불을 끄지 못하고 잠든다는데 가슴이 아렸다. 내가 아는 누군가도 그런 사람이 있는데 내가 불안한 영혼이어서일까 동병상련의 감정이입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허만하시인의 청마풍경. 그때 강우방 미술에세이에 언급되었다고 독후감에 썼더니 고맙게도 그녀가 알아서 챙겨다준 책이다.
저 멋드러진 '청마풍경'글씨는 강우방의 글씨란다. 글씨 잘 쓰는 사람 좋아하는데 갑자기 간사해지는 이 마음이라니...ㅎㅎ
글씨는 인격인데 또 필이 꽂혀서는 만년필을 꺼내놓고 글씨연습을 한참 했다. 요즘은 안써 버릇해 그런가 안그래도 날라다니던 글씨가 더 날라다닌다. 아무래도 앞으로는 매일 글씨연습이라도 해야할 거 같다.(도대체 시간은 한정되어있는데 하고 싶은게 왜이렇게 많은거냐..ㅜㅜ)
이 책은 지난 번 읽었던 시인의 책보다 흡족한건 아니지만 그의 청마사랑이 감동스럽다.
어렸을 때 청마의 시를 좋아했었는데 멋진 인간이기도 한 걸 이 책을 통해 알았다. 삶에서 누군가를 그렇게 존경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지난 번 한국갔을 때 무소뿔놈이랑 술을 마시며 그런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 놈이나 나나 딱 존경한다고 이야기할 만한 사람이 없더라는 쓸쓸함.
내가 이렇게 이 책 저 책 후벼파며 미친듯이 헤매는 건 어쩜 그 부족함을 채우려는 갈망, 처절한 몸무림인지도 모르겠다.
젠장 존경하는 스승하나, 인간하나 없다니 그러고보면 인생을 헛 산 건지도..
2007.03.10 .Tokyo에서 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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