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겐 다 특별한 작가가 있기 마련인데 내겐 이 특이한 남자 파트릭 쥐스킨트가 그렇다.
그가 소설에서 천착하는 철저히 사회에서 소외된 인물들은 인간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 그 매커니즘의 당위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는 게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다.
세계적 베스트셀러작가면서도 철저하게 숨어사는 남자. 심지어 프랑스방송국에선가 이 남자를 밝힐려고 헬리곱터까지 동원해서 난리를 쳤는데도 실패했다는 믿지 못 할 이야기.(아 나는 나만의 개인적 루트로 좀 들었다만..ㅎㅎ)
이 남자가 세상에 대해 자기 의견을 낸 건 독일 철자법개정을 반대하는 서명이 전부였다나..^^;;
고독한 개인에 촛점을 맞춘 그의 책들은 거의 다 읽었는데 유일하게 한국어로 읽은게 '콘트라베이스'니까 아마 그 책이 첫 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늘 궁금해하는 건데 독일어로는 콘트라바스고 영어로는 더블베이스인데 왜 우리는 맨날 콘트라베이스라고 하는 걸까?)
어쨌든 독일로 돌아가면 꼭 이 콘트라베이스 연극을 볼 생각.
시누이에게 '비둘기'를 권했더니 읽고는 너무 고마와했고 '좀머씨 이야기'를 읽은 시어머님은 도저히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간다고 찌푸리시고..^^;;
'깊이에의 강요'는 내가 읽은 몇 개 안되는 아주 뛰어난 단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단편소설을 별로 안 좋아하는데 줄줄히 풀어놓는 장편과 달리 단편을 잘 쓰긴 너무 힘들다고 생각하기 때문. 지금 기억나는 건 저거말고는 토마스 만의 '기차사고'랑 하루키의 '백퍼센트 여자를 만나는 일' 정도?
그리곤 오늘의 주제인 향수. 추리소설을 싫어하는 나는 (역시 아주 괜찮은 추리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음으로) 그런 류의 소설이라 생각하고 안 읽고 있었더랬다.
그러다 독일어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고 나서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신랑에게 책이 있냐니까 있는데 영어책이라나
아니 독일작가가 쓴 책을 독일남자가 왜 영어로 가지고 있냐니까 향수가 첫 출간 되었을 때 너무 읽고 싶었는데 아직 페이퍼백이 안 나와서(양장본이 먼저 비싼 값으로 나오고 나중에 싼값으로 페이퍼백이 나온다) 그냥 싼 영어책을 사서 읽었다는 거다.
읽으시는 분들은 아무렇지도 않을지 모르지만 내겐 무진장 충격적인 사건이었고 내가 최초로 신랑을 부러워했던데다 우리나라와 독일의 교육시스템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 본 계기였다.
지금이야 물론 상황이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우리 세대만 따지면 신랑이나 나나 둘 다 학교 다닐 때 영어를 무지 잘한 편에 속했는데 비슷한 시기에 그는 영어로 소설 읽기가 가능했고 나는 불가능했다는 것.
그래 관심을 갖고 그와 내가 받은 전반적인 교육을 비교해보니 이건 비교대상자체가 아니더라는 거다. 고등학교때 (김나지움) 독일어시간에도 막스 프리쉬의 슈틸러같은 책을 읽고 토론을 했다니!!
그래서 소설 향수는 내게 잊을 수 없는 책이기도 하다.
어쨌든 있는 책을 또 살 수도 없고 놔두었다가 더블린가서 영어소설들을 읽을 때 찾아 읽었다. 아니 이런 소설이 있었구나 싶을만큼 충격적인 소설..ㅎㅎ
그 기가막힌 표현들은 또 어떻고. 그러다 내가 잠시 독일에 혼자 나와 있을 때 자취하던 집에 독어본이 있길래 빌려 또 읽었다.
내가 독일어를 읽을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했던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그때가 딱 그랬다. 영어본보다 훨씬 좋았던데다 말을 읽는 맛이랄까 감동스러웠던 기억. 이러니 이 책이 어찌 내게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ㅎㅎ
(막스 프리쉬의 '호모파버'를 읽었을 때랑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를 읽었을 때도 그랬다..아 그러고보니 우리나라에는 '슬픔과 사랑의 여로'라고 소개된 양철북의 감독 폴커 쉘렌도르프가 만든 영화 호모파버도 좋다. 특히 샘셰퍼드 넘 멋있다..^^)
이 책이 왜 영화화가 안될까 궁금했었는데 쥐스킨트가 판권을 팔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는 이야길 들은 건 작년 그리고 그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소식.
정말 한 영화를 그렇게 애타게 기다려본 건 처음이다. 개봉날에 맞춰 독일에 갈까까지 고민했을 정도..ㅎㅎ (물론 아시다시피 세 번이나 갔다만 한 번도 못보고 왔다..흑흑)
결론은 어제 결국 봤다는 거다!!!!
하루에 한 번 밖에 상영을 안하니 곧 끝날지도 모른다는 협박이 통했는지 신랑이 점심시간에 표 사놓고(자기근무하는 건물에서 상영하는 영화표를 사면서 폼잡는 남자랑 내가 산다..흑흑) 나는 삼일간 몸무게를 삼킬로나 줄였다는 데 감동해서는 포도주 한 병 혼자 가볍게 비워주시고 영화상영이 8시 40분이었던 관계로 초밥집에서 또 초밥에 회에 맥주에 실컷 먹고 마시고 만땅 취해서 영화를 봐서였나
너무나 마음에 들고 이 소설을 이보다 더 멋지게 영화화할 수는 없었다고 엔딩크레딧 올라갈 때 나혼자 열나 박수까지 쳤다..ㅎㅎ
나를 비웃던 내 뒤의 커플들은 금새 일어나 나가고 손바닥에 쥐났나 아무도 따라 박수 안치더만 그 긴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다 자리에 앉아있다.
나가는데 어떤 서양남자애가 같이 온 일본여자애에게 an exellent movie 어쩌고 그러는데 그 여자애 머뭇거리길래 내가 대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대답해줬다..ㅎㅎ
물론 위에 언급했듯이 이 소설에 대한 내 인연에 따른 편애도 작용을 한다. 객관적으로 보면 나처럼 소설을 읽고 영화를 간절히 기다린 사람이 아니라면 이해가 좀 어려운 부분들이 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을 어떻게 영화화할까 무진장 기대했던 사람들이 봤을 때 감동스러운 면이 많다는 이야기다.
거기다 컴퓨터그래픽이 과도하게 사용된 점이 좀 거슬리고 라벤더 밭처럼 영화에서 중요한 요소들에 색채를 좀 더 가미했다면 낫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그래도 카메라 죽이고(!) 음악 좋고 연기들도 좋고 영화 진짜 끝내준다.
주인공의 눈빛도 한 몫하는데 그 주인공을 처음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캐스팅할려했다니 생각할 수록 끔찍하다..ㅎㅎ
이 소설도 영화도 누구에게나 권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은 아니다. 전적으로 취향의 문제인 그런 종류랄까.
그럼에도 영화를 보실 분들은 일단 소설을 먼저 읽고 보셨으면 한다.
소설을 읽을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어제 영화를 보다보니까 이 소설이 사실은 굉장히 사회비판적인 이야기였구나라는 새삼스러운 깨달음.
술도 덜 깬데다 약간은 묵직한 기분으로 집에 와서는 꽤나 뒤척이다 잠이 들었다.
스포일러를 피하느라(아님 신비주의 전술? ㅎㅎ) 내용 이야기는 하나도 안했다만 예전에 내가 영화 만들어지는 중이라고 다른 사이트에 올렸던 스틸컷이 몇 개 있길래 올린다.
이제 그만 좀 수다떨고 글 뜨문 뜨문 올리렸더만 또 매일 올리게 되네..ㅎㅎ
이 영화를 만든 감독 톰 튁베어. 나도 이것까지 두개 밖에는 못봤다만 어쨌든 그의 영화 '런 롤라 런'이 독일에서 잘나가는 여배우 프랑카 포텐테 주연으로 한국에서도 개봉되었다. 그 영화도 좀 깨는 영화다만 영화음악도 좋고 볼만하다..
예전에 함께 영화보기 좋아하던 우리부부가 정말 오랫만에 둘다 간절히 보고 싶던 영화를 보곤 흔들거리고 집에 온 날. 기분 아주 괜찮았다지..^^
2007.03.27. Tokyo에서 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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