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크 묻은 책장

사쿠라가 지다, 젊음도 지다.

史野 2007. 3. 14. 23:03

'청마풍경'을 읽고 바로 이어서 옥타비오 파스의 시론 '활과 리라'를 시작했는데 집중도 안되고 도저히 안 읽히는거다.

 

몇 년간 읽은 책들이 거의 모두 보고서 형식이어서 그런지 요즘은 시론은 커녕 소설책 읽기도 힘들다.

 

 

 

 

 

그래 잡아든 책이 이 책. 사놓은 지는 꽤 되었는데 늘 사쿠라 피기 전에 읽어 야지 하다 기회를 잃었었다. 전쟁에 관한 키워드로 검색하다 구입한 책인 거 같은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 책이 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씌여진 책이라고 지레 상상하고 있었는데 문화인류학 보고서다.

 

단도직입적으로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너무나 훌륭하다. 굳이 일본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문화속에서의 '상징'이 인간사에 미치는 영향 혹은 역할 (이걸 상징인류학이라고 하더라만) 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겐 아니, 삶을 이해하고 싶은 이들에게 필독서다.

 

사쿠라는(벚꽃이라는 말보다 사쿠라라는 말이 이 상황에서 적합하므로 그냥 쓰겠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본의 국화라고 알고 있을 정도로 일본화된 꽃나무다.

 

내게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당나라 문화에 심취해 있던 일본인들의 자의식에 의해 사쿠라가 중요해졌다는 부분이다. 매화꽃에 감동하던 일본인들이 우리만의 뭔가를 만들어야겠단 생각에 나타난게 사쿠라란다.

 

이 책은 그렇게 사쿠라가 어떻게 일본인에게 중요해지기 시작했으며 어떤 의미변화가 있었는지를 역사, 문화적으로 추적하는 과정을 거쳐 부제처럼 미의식, 그러니까 사쿠라미학과 군국주의의 관계 해명까지 이른다.

 

어떻게 메이지정부가 천황을 팔백만 신중의 하나에서 거의 유일신 수준으로 만들어가는지 사쿠라와 천황을 위한 희생을 어떻게 연결시키는지를 끈기있고도 상세하게 풀어낸다.

 

특히 저자가 노력하는 부분은 외부에서 자살특공대로 알려진 그 젊은이들이 사실은 천황을 위해 자살을 한게 아니라는, 그들 역시 그 시대의 희생물이라는 관점이고 그 설명은 상당히 설득력있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인정하는 낭만주의 차원에서의 (그래서 이 책에서도 낭만주의가 자주 거론되는데 우연하게도 나는 마침 강유원의 강의' 낭만주의의 뿌리'를 듣고 있는 중이다) 인간의 고뇌와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책임과의 갈등. 그리고 세뇌까지라고 이야기하면 무리가 있긴해도 인간은 역시 사회적 산물이라는 마르크스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기.

 

이 부분에 있어서 내가 큰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 건 내 개인적인 경험때문이다. 지금이야 멀리 왔어도 너무 멀리 왔지만 이 카미가제 특공대 대원들 나이만할 때 나도 순교가 내 인생 최고의 가치였을 때가 있었다.

 

이 특공대 대원들의 수기에서 읽혀지는 것처럼 삶에의 고뇌 혹은 내가 믿는 것에 대한 의문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나를 지도했던 전도사님이 너의 그 끝없는 회의와 개똥철학에 지친다고 하셨더랬지만 내 신앙이 흔들렸던 것 내가 믿고 있는 최고의 가치가 흔들렸던 건 아니었더랬다.

 

그러니까 이 책의 주인공들(?)이 천황을 위해서가 아닌 자신들의 이상주의를 위해 죽어갔던 것처럼 나도 당시였다면 그리스도가 아닌 내 신념, 누구나 구원받아야 한다는 그 신념에 의해 죽었을 수도 있었단 이야기다.

 

이 내 과거에 대한 해석도 다른데 예를 들어 여전히 내 과거랑 같은 형태인 조카에겐 내가 '잃어버린 양'이고 다른 조카에겐 내가 '수렁에서 건진 내 딸'이다.

 

이 책이 대단한 건 우리 삶의 주변을 싸고 도는 그런 문제들에 관해서 우리가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고 어느 부분에서 눈을 부릅뜨고 깨어 있어야 하는 지 너무나도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는거다.

 

 

세상엔 딱 두 가지 유형의 인간이 있다.

 

자기를 성찰하고 반성하는 인간과 그렇지 못한 인간. 인류 모든 인간들을 만나보진 못했지만 후자가 전자보다 많으리란건 기정사실이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의 본성이란 성찰이 포함되는가 아닌가.

본성이 아닌, 추구해야 할 지점을 향해 노력하는 것이 과연 인간인가 아님 본성에 충실한게 인간인가.

성찰하고 반성하기 위한 토양은 무엇에 근거하는가.

인간을 정의해야 할, 어느 선에서 딱 멈추어 포기해야 할 그 부분은 어느 부분인가.

우리는 자신에게 혹은 타인에게 어디까지의 기준을 적용해 인간다움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과연 보편적인 인간다움이란 것이 가능한 것인가.

 

한 권의 책을 읽고 나니 읽어야 할 책, 읽고 싶은 책이 갑자기 열 권이 생긴다.

 

 

천황폐하를 위한 희생과 일본이라는 조국을 위한 희생은 당연히 구분되어야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일본인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라는 이해가 전제되어야한다. 그건 베트남에 보내졌던 혹은 자원했던 한국인 병사도 마찬가지고 지금 이라크에 보내지는 혹은 자원하는 미국인 병사도 마찬가지다.

 

삶이 명확이 규명되지 않는 한 모든 인간의 화두는 사는 거다. 우울증에 의한 충동자살이 아닌 한 죽는 이들마저 아니러니컬하게도 살기 위해서 죽는 것이다.

 

아니 가장 적합한 표현은 그렇겠다. 인간은 그냥 살고 싶은게 아니라 나름의 위치에서 인간답게 살고 싶은 거라고..

 

이러니 또 위의 질문인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로 돌아온다.

 

 

각설하고

 

이 책을 사쿠라가 제대로 피기 전에 읽어서 너무 다행이고 사쿠라가 제대로 피면 나는 전몰병사를 위로하는 사쿠라가 가득하다는 야스쿠니 신사에 다녀올 생각이다.

 

그리고 그 곳에 가서 만개한 사쿠라 아래서 술을 마신다는 일본인들을 구경할 생각이고, 또 나는 나대로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그 젊은 영혼들을 위해 기도할 생각이다. (이걸 참배라고 생각하면, 아니 뭐 그래라.)

 

산다는 건 참 쉽지 않지만, 제대로 산다는 건 더 쉽지 않고, 과연 제대로 사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더 어려운 것

 

젠장 그게 인생이다.

 

 

덧붙이자면

 

김동춘의 '전쟁과 사회' 같은 좋은 책이 우리에게도 있긴 하지만 일본관계 서적을 이십권 넘게 읽은 지금, 아니 읽을 때마다 매번 이들의 비판정신 그 내면들여다보기의 전통 등이 미치고 팔짝 뛸 만큼 부럽다.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거니? 너희들의 이 자신감은...

 

  

 

 

 

 

 

2007.03.14. Tokyo에서..사야

 

 

 

 

'잉크 묻은 책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명관-고래  (0) 2007.05.03
은둔자 파트릭 쥐스킨트와 향수  (0) 2007.03.27
작가들의 수다  (0) 2007.03.10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0) 2007.02.12
펌-상처받은 짐승들 이야기  (0) 2007.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