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크 묻은 책장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史野 2007. 2. 12. 00:15

언제부터 무슨 이유로 그를 사모(?)하게 되었는 지는 모르겠다. 그저 내게 막연하게 무지 괜찮은 인물로 비쳐지던 남자. 담헌 홍대용(1731-1783).

 

그가 당대 최고의 거문고연주자였기때문인지 아님 잘난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거의 야인으로 살았기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의 을병연행록.('산해관 잠긴 문을 한 손으로 밀치도다'란 제목은 그가 처음 북경을 향해 떠나며 쓴 시속에 나오는 구절이다)

 

 책 좋아하시는 분들은 절절히 공감하시겠지만 가끔 사놓고도 쉽게 집어들지 못하고 바라만 봐도 기분이 좋은 그런 책들이 있다.

 

오바하자면 언제 인연이 닿아 저 책을 읽게 될까 두근거리게 되는 그런 책말이다. 내겐 이 책이 그랬다. 뭔가 연관이 되어 읽어야 하는데 강우방 책을 읽다 김홍도가 읽고 싶었고 김홍도를 읽으니 드디어 홍대용이 읽고 싶었다.

 

난 18세기의 한 남자랑 사랑에 빠지겠다고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다녔고 나말고 누구랑 사랑에 빠지겠다는 거냐는 신랑의 투정아닌 투정을 뒤로하고 드디어 이 멋진 남자를 속속들이 알게 되리란 설레임에 읽기 시작한 이 책은 유감스럽게도 너무나 너무나 너무나 읽기 힘든 책이었다.

 

현대어로 변역을 한 거라는 데도 나는 저들의 대화를 혹은 그 분위기를 따라갈 수가 없어 숨이 턱턱 막혔다.

구만리 너머 사람인 괴테의 소설을 읽을 때 느끼지 못하는 이질감을 왜 나는 그의 책을 읽으며 느껴야하는가.

 

그는 괴테보다 18년 먼저 태어났다. 그리고 괴테가 그 유명한 이탈리아 여행기(난 물론 아직 못 읽었다만)를 남긴 그 역사적인 여행보다 21년 전인 1765년에 중국 북경을 방문하고 이 여행기록을 남겼다.

 

그가 살았던 시대가 어떤 시대냐를 대충 감잡기 위해 필요한 사람들을 좀 언급하자면 하이든보다 일년 먼저, 모짜르트보다 25년 먼저 태어났고 박지원보다는 육년전에 김홍도보다는 십사년 전, 정약용보다는 31년 전 그리고 김정희보다는 55년 전 그리고 짧은 생을 마감해서 김정희가 태어나기 삼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그런 그가 혼천의를 자체 제작하고 지동설을 믿고 북경여행기록을 한문뿐 아니라 어마어마한 분량의 한글로까지 남겼다는 사실이 놀랍다.(아시다시피 아니 아시는지 모르시는 지 모르겠지만 박지원은 한글을 몰랐다)

 

언제 가게 될지 모르는 아니 그 기회가 주어질지 아닐 지 모르는 중국여행을 위해 틈틈히 중국어회화를 공부했다는 그, 그리고 그 멀고도 먼 국여행길에도 자신의 거문고를 지참했다는 그. 아니 아무리 짐꾼들이 많았다고 해도 그 먼길에 그 큰 악기를 들고 가고 싶었을까?

 

무엇보다 나를 놀랍게 했던 건 그의 호기심이다. 그가 작은 아버지를 따라 자제의 신분으로 사신행렬에 올랐던 건 그의 나이 서른 다섯. 아는 건 왜 그렇게 많고(물론 뭘 알아야 물어볼 거 아니겠냐만) 궁금한 건 또 왜 그렇게 많고 어찌 그리 구구절절히 기록은 했는지.

 

뭔가 알기 위해선 약간의 모욕감마저 감수하며 그 거대왕국 혹은 황국의 수도를 돌아다니던 그 사내가 놀랍다.

 

이 책은 그의 을병연행록의 축약복이고 대부분은 그가 만나 필담으로 우정을 나누었던 청국선비 세 사람과의 오가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통하지 않은 언어 그리고 다시 만날 기약을 할 수 없는 선비들이 만나 나누는 이야기들은 아무리 읽기 지난하다고 해도 감동적이다.

 

거기다 그는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재치있고 멋진 인간이다

 

물론 중국을 향해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동방에서 온 한 선비의 한계, 명나라랑 비교해 청나라를 업신여기는 태도. 주자학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등이 내가 그와 사랑에 빠지게 하는 데 결정적인 걸림돌이었다고 해도 말이다.

 

백년도 훨씬 넘는 명나라 복장을 하고 있어서 아이들에게 혹 연예인(?)들인가 오해를 받음에도 우리만이 그 제대로 된 문화와 전통을 따르고 당신들은 오랑캐의 문화를 따르니 부끄럽지 않냐는 그의 끊임없는 질문.

 

명나라를 위해 조선선비가 죽음도 무릅쓰고 절개를 지켰다고 이야기할 때의 그의 자부심.

 

中外의 법, 그러니까 대국인 중국과 변방나라인 조선의 법도때문에 심지어 호형호제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는 그의 겸손

 

그가 21세기를 사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데도 그 뼛속깊이 흐르는, 몇 백년을 변하지 않고 유전자속에 흐르는 조선인들의 그 대국망상이 서러워 울고 싶었다.

 

어쨌든 찬탄하기도 하며 길을 잃고 헤매기도 이를 악물기도 하며 힘들게 힘들게 이 책을 마쳤다.

 

내가 아는 것이 워낙 적어 모든 글들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깝지만 무엇보다 안타까운건 괴테의 여행기도 아닌데 스무 살이 아닌 마흔 살에 그의 책을 읽었다는 그 사실이다.

 

내 잃어버린 이십 년이 안타까운 밤이다.

 

 

 

 

 

 

 

 산해관의 위치

 

 

그의 글씨

 

 

 

 

 

그리고 책의 앞에도 나오는 그가 교류했던 엄성이라는 중국선비가 그렸다는 홍대용의 초상이다.

 

 

 

 

 

2007.02.11. Tokyo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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