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투명한 그녀의 실크기모노가 흔들린다.
바람은 보이지 않는다.
손을 넣어 가슴을 배를 살며시 쓰다듬는다.
미세한 떨림,
발끝에서 시작된 둔중함이 깊이를 알 수 없는 내 몸 어딘가에서 꿈틀대기 시작한다.
그 바람이 내 몸을 거슬러 흐르는데..
바람은 보이지 않는다.
바람이 아닐 지도 몰라.
그건 실크만큼 부드러운 그녀의 목소리일지도,
아니 그녀가 휘감은 저 투명한 실크자락일지도,
만지면 녹아버릴 것같은 그 피부의 섬세함인지도
바람이 분다
바람은 느껴질 뿐 보이지 않는다.
푸르른 새벽을 가르며 음악이 흐른다.
그녀의 입술이 멈춘 곳에 바람도 멈춘다.
일요일, 친구가 이 책을 아느냐고 물어왔을 때 그저 아는 책인것 같다고만 대답했다.
그러다 갑자기 벌떡 일어나 책을 찾아보았다.
내가 읽은 책은 이 표지 이 출판사도 아니지만 책표지 안에는
99, 2, 27
다 읽다
아름다운 소설.
이라 적혀 있었다. 그 때야 어렴풋하게나마 8년 전 이 책을 읽었을 때의 그 느낌이 살아났다.
얇은 책이기도 해 당장 펼쳐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틀을 헤매느라 놓고 있다가 오늘에야 다시 나머지부분을 읽었다.
8년이란 세월동안 내 독일어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는 걸 확인한 건 아프지만
그때와 똑같이 이 소설을 읽고 느끼는 이 아득함, 어지러움, 세포 하나 하나가 떨리는 듯한 이 에로틱의 절정. 실크의 부드러움에 혹은 실크만큼 부드러운 피부의 감촉에 질식할 것 같은 고통. 그 생생함.
친구는 영어로 읽고 있다는데 찾아보니 한국어로도 번역이 되어있다. 작년 11월 출간되었으니 나름 따끈따끈한 책이다. 이태리 작가가 쓴 책인데 번역이 어떤지 알지는 못해 편히 권하긴 어렵지만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다.
2007.02.07 Tokyo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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