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석의 김홍도를 읽었다. 책이야 김홍도란 인물에 대해 여러 사료를 통해 추적해가는 형식인데 생각보다 흡족하진 않았다. 내용자체라기보다는 김홍도를 무조건 옹호하려는 형식의 저자 시선이 거슬렸다고 할까.
저자는 김홍도같이 그림뿐 아니라 글씨에도 뛰어나고 당시 뛰어난 문인들과 교류를 했던 인물이 춘화를 그렸다는 건 비역사적이라고 흥분하던데 내 의견은 다르다. 고상한 사람들은 정사에 관심이 없나?
당시야 지금처럼 일부일처제도 아니고 사내들이 기생들과 정분을 쌓거나 하는 것이 당연시되던 사회분위기였다. 거기다 임금들이야 궁녀가 모두 내 여자란 생각으로 살던 사람들인데(당시 임금말고 뭐 어느 대통령도 그러시긴 했지만..^^) 혹 임금님께서 보다 나은 테크닉을 위해 춘화를 요구했을 지도 모르는 문제 아닌가.
웹에서 단원이 그렸다는 춘화를 본 적이 있는데 화제자체는 충격적이긴 했으나 그림의 수준은 꽤 높았더랬다. 나야 뭐 이야기했듯이 그 춘화가 진짜 김홍도가 그린 건지 감식해낼 안목이야 없지만 말이다. 덧붙여 고상한 사람들이라고 운우지정(雲雨之情)에 무관하리란 법이라도 있냐고???
엄청 두꺼운 책에 굳이 몇 줄 안되는 춘화문제를 왜 걸고 넘어지냐고 하겠지만 역사적 사실은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게 내 소신이라 그렇다..^^
그리고 어찌나 김홍도 주변인물들이 김홍도가 키도 크고 잘 생기고 어쩌고 외모를 언급하던지 몸짱 얼짱 열풍이 조선시대에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겠다 싶다.
어쨌든 단원의 그림보는 맛은 있었고 또 술을 좋아하던 단원이 주변인들과 즐기던 풍류의 장면들은 유쾌하기까지 하다. 전에도 당시의 수필집을 읽다 감동한 적이 있는데 경치가 아름다운 곳에 모여 술을 마시며 시를 나누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연주하던 옛 사람들의 풍취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멋스럽고 가슴이 벅차 오른다.
대학 때 잠깐 거문고를 배우다 말았는데 너무 잘한다고 선생님이 날더러 혹 전생에 거문고를 했을 지도 모르겠다하셨으니 혹 저 풍류장면속에 전생의 내가 있을 지 어찌 알겠는가..(아 물론 선비로서가 아니라 기생으로서..ㅎㅎ)
이건 반은 진담인데 대학교때 이야기했던 고등학교 친구들을 우리집에 모아놓고 학예회같은 걸 한 적이 있다. 대학생이 학예회라니 친구들이 다 황당해했는데 이게 내 전생의 기억일 지도 모른다..하.하.하
국어교육을 전공하는 친구는 시도 낭독하고 피아노를 전공하던 친구는 피아노도 연주하고 나는 춤을 추고(이건 내가 춤을 전공해서가 아니라 그해 갑자기 레크레이션 지도자 강습을 받으러 다녔었다..^^;;) 다른 애들은 단소도 불고 심지어 자기가 쓴 서예작품을 들고 와 감상을 시키기도 하고 쇼를 했었다. 그리고 그 날의 감상을 돌아가며 적는 걸로 마무리. 나랑은 친구하기도 어렵다..ㅎㅎ
나는 정말 가끔 보면 미친 애가 맞는 거 같다. 그제도 반신욕을 하고 너무 더워서는 발가벗고 베란다에 나가 쇼를 하다 신랑의 박수를 받았는데 그게 잘한다고 친 박수였는지 박수를 쳐야 쇼가 끝나기때문이었는지 그 깊은 속까진 모르겠다만..^^;;
어쨌든 거문고야 그래도 그나마 간신히 맥이나 유지해오지 향비파라던지 생황같은 악기들이 어찌 우리 사회에서 자취를 감춰버렸는지 너무 안타깝다. 친구들과 모여 그런 악기들을 연주하는 상상. 너무 고루한가?
서양사람들만 살롱에 모여 음악을 연주하고 감상하고 그랬던 건 아닌데 전승되지 못한 문화가 안타깝기 그지없다. (다행히도 젊은 국악인들이 복원해내고 연주하고 한다는 걸 이 글을 쓰느라 찾아 읽긴했지만)
사실 풍류가 별거겠는가. 음악을 들으며 푸르른 새벽을 숨죽여 바라보는 것도 포도주향을 음미하며 각자의 생각을 나누는 것도 바닷가에 주저앉아 노래를 부르는 것도 다 나름의 풍류겠지. 음악을 연주하는 대신 듣고 그림을 그리는 대신 전시회에 가고 그러면 되지 뭐. 중요한 건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공유한다는 그 느낌 그게 풍류가 아닐까.
이 삼주 후면 술잔을 앞에 놓고 그 풍류(!)를 즐기러 그녀와 고기공놈이 도쿄에 온다. 그래서 이월은 그저 기대감만으로도 행복한 달이다..^^
마음에 쏙 와닿는 김홍도 그림 몇 장.
송하취생도 부분
월하취생도
지장기마도
지금 당대 최고의 거문고 연주자였다는 홍대용의 책을 읽고 있는데 그가 추운 달밤에 바깥에서 연주했다는 거문고 소리는 이 것보다 훨씬 아름다왔겠지.
2007.02.03. Tokyo에서..사야
그림출처. www.danwo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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