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이건 패러디의 법칙이다
언제 이렇게 두꺼운 한국소설을 읽어 보았 던가.
이 책은 무려 사백페이지가 넘는다. 어쩜 그렇게 입담좋게 그 긴 이야기를 줄줄히 풀어내는지 이렇게 말많은 작가는 처음보지싶다.
말 많으면 공산당(p. 288). 이건 인용의 법칙이다
그러니까 천명관은 공산당이다. 그런데 그가 말많은 건 기분이 좋으니 나는 그를 귀여운 공산당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건 해석의 법칙이다.
현실과 신화와 상상의 세계를 넘나들며 풀리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 꿈틀거린다. 소설은 허구다. 물론 기억력에 의존해 쓰여진 소설들도 훌륭하긴 하지만 모두 똑같은 소설을 쓸 필요는 없는거고 이런 소설에 열광하는 것 그건 독자의 법칙이다.
어찌나 웃음이 터져나오는 곳이 많던지 이건 한국적 사회상황을 모르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텐데 이 소설을 과연 외국어로 옮길 수 있을까 읽으면서 내내 걱정했다. 특히 내가 웃으면 내 남자가 왜 웃냐고 물을테고 그걸 설명하는게 얼마나 힘들까에 미리 질려 몰래 웃었다. 이건 오바의 법칙이다.
이 소설이 보통 소설작법과는 다르고 어쩌고들 난리인데 소설을 많이 읽어보지 않아서인가 나는 다른 걸 모르겠다. 거기다 나야 한국대학의 문예창작과에서 어떤식의 소설작법을 배우는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러니 이 소설이 뭐가 어떻다는 거냐고 소설에 대한 기존상식? 웃기지 말라고 당당히 외칠수가 있다. 이건 무지의 법칙이다.
한 소설가는 심사평에서 소설이란 이야기에 그치지않고 '그래서 어쨌다는 거냐'라는 데까지 이르러야 소설이라고 한다. 아니 소설이 무슨 처방전이라도 된단 말 인가. 그렇담 우리 인생은? 낳고 죽는거 뻔히 아는데 뭘 어쩌쟈는 거냐. 그냥 누구나 살다 죽는거고 나름 그 사이에서 발버둥치는 거다. 삶도 그럴진대 도대체 소설을 뭘 '그래서 어쨌다는 거냐' 따지냐고? 이건 반감의 법칙이다.
또 한 평론가는 이 소설의 근원(?)에 대해 정말 말도 많고 (그도 공산당이고 이건 반복의 법칙이다.) 분석하고 난리다. 제도 밖이 어떻고 들뢰즈가 어떻고 작가가 그냥 있던 사실을 말하면 그걸 거대담론 어쩌고 복잡하게 비비꼬는데 군대시절 군대에 비치된 당시의 불온서적을 접했다고 하니 '억압의 중심이 오히려 느슨하고 텅 비어있는 아이러니를 경험했다' 어쩌고 쓴다. 그럼 유식해보이나? 짜증이 확 밀려온다. 평론가야 소설을 난도질해서 돈을 받는지 모르겠지만 나같은 독자는 시간도 내고 돈까지 내가며 소설을 읽는다. 그러니 평론가의 탁상공론이 짜증날밖에..이건 자본의 법칙이다.
다시 소설가로 돌아가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거침없이 풀어내는 작가는 어떤 사람인지 그는 결혼은 했는지 머리속의 구조는 어떻게 생겼는지 혹시 바다에서 고래를 직접 본 적은 있는지 이 소설을 쓰는데는 몇 일이 걸렸는지 이런 시답잖은 것들이 마구 궁금해지는 거다. 이건 호기심의 법칙이다.
그리고 그가 앞으로도 제도권의 문학어쩌고 하는 모든 사람들이 더이상 입을 못 열도록 지속적인 연타를 날려주시길 희망하고 있다. 누구에게 배워서 그런 식으로 써야 당선이 되고 같은 학교를 나와야 그 대학에 취직이 되고 어느 식으로 피아노를 쳐야 누구제자라는 걸 알게되어 콩쿠르에 입상하는 이 짜고치는 고스톱 세상에서 책을 많이많이 팔아먹는 작가가 되길 말이다.이건 모든 비주류의 소망이기도 하니까 공감의 법칙이다.
2006-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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