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부부가 연애를 할때는 디카는 당근이고 메일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래 원거리 연애를 했던 우리는 이년가량 연애하면서 대충 사개월에 한 번씩 만났으니 당시로는 자주 만난거긴 해도 가장 중요한 통신수단은 편지였다.
나는 편지를 쓱쓱 써내려가는 스타일이고 신랑은 고민고민을 하는 스타일이라 신랑이 편지를 쓰는 건 일주일에 한 번. 성질급한 나야 전화도 자주 했지만(전화비가 오십만원씩 나왔슴..-_-) 신랑은 꾸준히 편지를 썼다.
당시야 편지를 보내면 일주일이나 걸렸고 답장을 바로 쓴다고 해도 편지를 쓴 다음에 이주일만에 받아보는 거니 참 어떻게 그 긴 시간을 기다렸는지 모르겠다. 답장쓰면 곧 내용이 다른 편지가 도착..ㅎㅎ
그 습관(?)은 결혼후에 내가 한국에 갈때도 이어졌는데 그때야 사주씩 한국에 갔으니까 또 몇 번 신랑의 편지를 받아볼 수 있었다. 나야 한국가면 친구들 만나느라 편지쓰고 있을 시간이 어디있냐 그러니까 답장은 못했다.(그런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세상에 답장을 한 적도 있다..ㅎㅎ)
심지어 연수원에 들어갔을때도 보낸 편지가 있더라.
그리고 우리부부가 오개월정도 신랑은 아일랜드에 나는 독일에 살며 별거를 했을때 그때도 매주 편지가 왔다.
이야기했듯이 두달 반은 뒤셀도르프에 방하나 빌려 혼자 살다가(여기로 고기공이 놀러도 왔었슴..ㅎㅎ) 나머지 두달반은 그 집에서 못견디고 시댁으로 기어들어갔는데(이 표현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울 시어머님이 더 기다리셨을 정도..
어느 날 학교를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버스정류장까지 편지를 들고 뛰어오신 울 시어머님. 다녀와서 읽어도 되는데 내가 나가자마자 우체부가 가져왔다나 뭐라나..ㅎㅎ
동양에 와서부터는 일주일정도만 한국에 가니까 그런 일이 전혀 없는데 내 남자의 편지가 가끔은 그립다.
편지는 아니지만 가끔 여행길에서 엽서를 쓰기도 하는데 한번은 친구들에게 엽서를 보낸다고 마주앉아 각자 엽서를 몇 장씩이나 열심히 쓰고 있었더랬다.
그런데 집에 왔더니 신랑은 내게 나는 신랑에게 엽서를 보냈더라는 것. 마주 앉아서 자기만 보내는 줄 알고 상대방을 힐끗보며 속으로 웃었을 생각을 하며 신랑이랑 나랑 박장대소를 했다.
어쨌든 내가 한국에 가 있던 어느 날 신랑으로부터 편지가 도착했는데 신랑의 얼굴이 들어있는 거다. 자기 얼굴을 까먹지 말고 생각해달라고 보내는 거라면서. 신랑지갑에는 지금도 내 사진이 들어있지만 내 지갑에는 그때나 지금이나 신랑 사진이 없다..^^;;
그때야 디카가 있길했냐 이 남자 자기 얼굴을 어떻게 보냈냐면
바로 이 것.
뭔줄 아시겠는가? 자기얼굴을 복사기에 복사한거다..하하하
이런면에서만 엉뚱하겠냐 엉뚱한 면이 많아 예전에는 맨날 왕짜증을 냈는데 요즘은 그냥 웃는다
내가 참 드물게 엉뚱한 남자랑 살다 성격좋아졌다..^^;;
오늘 창고에 가서 신랑에게 받은 편지철을 찾아 수영장에 올라가서 들춰보았다. 이렇게 섬세한 남자였나 싶게 편지지를 꾸민거며 내용이며 웃음이 나고 가슴이 따뜻해진다. 물론 연애할때부터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야기 잠은 잘 잤냐 잘자고 있다니 좋다 뭐 이런 이야기에는 콧등이 시큰거렸지만 말이다.
거기다 92년 9월 손으로 쓴 한 편지(신랑은 그때도 늘 컴퓨터를 이용해 편지를 썼었다)
My 경-Mouse
don't forget, whether your condition is good or bad, I will always love you and never stop!
14년 반이 지나도록 이 남자는 이 약속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눈물이 났다.
재밌는 건 연애시절이니까 주로 영어편지인데 93년 5월인가 독일어 한 장 영어 한 장식으로 섞이기 시작한다 내 독일어가 당시 벌써 그렇게 괜찮았다는 건가? 신기함..하하
거기다 당시 혼자 한국어를 공부했으니까 가끔 책에서 베낀 한국어 문장들, '멀리 떨어질수록 그리움은 커진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너를 불행하게하지 않겠다' 혹은' 만나면 만날 수록 나는 그녀가 좋아진다' 뭐 이런 문장들이 중간에 써있어서 웃음이 난다.
거기다 너에게 지원하기 위해 이력서를 동봉한다는 편지까지..^^
어쨌든 편지를 몇 개 읽어보니 기억나는 일. 한국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독일은 소포가 왔을때 집주인이 없으면 어디로 찾으러오라는 메모를 편지함에 남기고 간다. 찾으러 가기는 귀찮지만 보통은 한국에서 온 소포이기에 누가 보냈을까 뭘까 설레이는 마음으로 우체국을 향하곤 했더랬다.
그런데 그렇게 설레이고 찾아가서 받은 건 황당하게도 미모군이 보낸 등기편지. 한 두 번도 아니고 어찌나 열을 받았는지. 아니 이 왠수는 별 내용도 없는 편지를 왜 등기로 보내고 난리냐고 마구 투덜거렸었다. 그런데 신랑이 내가 한국에 갔을때 보낸 편지에도 메모를 받고 우체국에 갔더니 00이가 보낸 등기편지가 와 있어서 찾아왔다고 한국에서 만났으니 알테지만 적어보낸다는 말이 나온다.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다시 열받음. 그 놈은 참 오랫동안 나를 이런 저런 면으로 많이 열받게 했다는 생각..-_-;;;
각설하고 엉뚱한 남자의 편지 사진 몇 개(이런거 여기 공개하는 줄 알면 욕먹겠지만..^^;;) 여기 탄력받아서 모두 예전 연애편지라도 들춰보시는 날 되시길..ㅎㅎ
받는 사람 보내는 사람 이름대신 그들의 사진을 붙인 기발한 편지봉투..^^
이건 소포에 붙여보낸 나름 작품..ㅎㅎ
저 큰 대자에 동그란 건 한국인들은 다 도장을 찍더라면서 자기가 개발한 자기 도장이다..^^;;
그리고 이건 나를 생각하면 떠오른다는 단어들..^^
이건 우리부부가 좋아하는 그 사진없는 뽀뽀..하하
노인네 티내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편지받던 시절이 좋았단 생각이 든다..ㅎㅎ
2007.01.26 Tokyo에서 사야
조카놈이 오래된 사진첩이며 재밌다길래 탄력받았습니다..ㅎㅎ
저때문에 요즘 즐거우시죠? 아니면 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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