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묻은 삶

남자친구..ㅎㅎ

史野 2007. 1. 30. 17:29

내게는 아주 오래된 그리고 아주 특별한 남자친구가 있다.

 

오늘은 '오래된 사진첩을 들춰보니-특별판'이다..^^

 

 

1986년 3월 같은 대학은 아니었지만 어찌 동문회라는 명목의 단체 신입생환영회에서 처음 만났다. 물론 나는 이날 모님도 만났다..^^

 

그러니까 3월이면 만으로도 21년의 세월. 내가 아직 만으로 서른 아홉이니까 그 놈과 함께한 세월이 그 놈과 함께하지 않은 세월보다도 길다. 그리고 앞으로는 더 길어지겠지.

 

 

어제 술 취한 상태에서 대충 찍었더니 진짜 오래된 사진처럼 되어버렸다만 (뭐 오래되긴 되었지..ㅎㅎ) 그 해 첫 동문카니발에 1부 사회를 보던 그 놈과 나다.

 

그 놈과 나는 쉽게 친해졌고 자주 만났다. 87년도 부산여행기에서 역앞에 나와 무조건 기다렸다는 동기놈이 그 놈이다..^^;;

 

당시 드물게(!) 운동권이 아니었던 나는 그 놈과 사상을 같이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통하는 면이 많았고 나는 그 놈이 좋았다. 우리의 불행(?), 혹은 그 놈에게 다행(?)이라면 난 당시 좋아하던 남자가 있었기에 연인이 되지는 않았다.

 

그 놈은 지금도 가끔 농담으로 그런다. 너같은 여자랑 살았으면 자긴 말라죽었을거라고..아니 진심인가? ㅎㅎ

 

 

메뉴를 고르는 사람들 빼고는 다 표정이 넘 웃기다만 저렇게 옆자리에 앉은 때는 사이가 좋았던 때고 싸우기도 정말 많이 싸웠다. 그래 몇 달씩 안볼때도 있었는데 참을성이라면 내 남자보다 더한 그 놈은 몇 달 후 정말 아무일이 없었다는 듯이 전화를 걸곤 했다

 

그러다 그 놈이 군대가기 바로 전 만나서는 진짜 심각하게 싸웠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친구가 다른 곳도 아니고 군대를 가는데 좋게 보내진 못할 망정 반성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그 놈에게선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훈련소에서부터 편지가 왔다..-_- 

 

 

그 놈이 군에가 있던 삼년간이 우리가 아마 가장 사이가 좋았을 때였을 거다. 나는 참 열심히 내게 일어난 일들을 편지에 적어보냈고 면회도 두 번이나 갔다. 아 물론 군에서는 무슨 애인이(?) 면회를 두 번 밖에 안왔냐고 했다더만..ㅎㅎ

 

어떻게 두 번다 겨울이었는데 그 곳은 진짜 눈이 많이 왔었다. 부대앞에서 택시가 잡히질 않아서 그 눈길을 한참을 걸었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나중에 내 그 남자친구가 너는 00이 면회는 두 번이나 갔으면서 어떻게 자기에게는 면회를 한 번도 안왔냐고 따졌는데 걔는 한달에 한번 꼴로 외박을 나왔는데 내가 총맞았냐 그거 만나기도 바쁘구만 면회를 왜가냐? ㅎㅎ

 

그 놈을 우리 엄마가 참 이뻐했다. 나같이 승질드러운 애를 받아주고 살 사람은 그 놈밖에 없다며 날이면 날마다 나를 꼬셨다..-_- 내가 결혼한 뒤에도 엄마는 그 놈에게 안부전화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렇게 진짜로 애인이 될 뻔(!)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난 또 다른 남자랑 연애를 했다.. 그 놈이 만났던 내 남자친구들만 꼽아도 한 손으로 모자랄거다..-_- 저건 아마 그 놈 제대하고 첫 번째 비발디 주인아저씨가 이사한 카페를 찾아갔던 때일거다.

 

 

내가 마누라 잘 만나서 신랑이 한국시리즈경기까지 봤다고 자랑을 했던 저 날도 사실 그 표를 몇 시간이나 기다려서 사다주고 내가 내 남자를 데리러 공항에 다녀오는 동안 그 복잡한 야구장에서 우리 자리를 잡아 지켜준 것도 그 놈이었다.

 

아 물론 그 놈은 롯데팬이었고 표는 내가 산데다 그 날 롯데가 우승했으니 그 놈 손해는 아니다..ㅎㅎ

 

 

나는 그 놈 대학졸업식에도 갔다. 물론 남자친구가 아래서 기다리고 있었다만..ㅎㅎ 졸업식을 챙겨줘야할 중요한 친구였으니까..^^

 

내 추억의 장소 비발디를 처음 발견한 것도 그 놈과 나다. 그래서 우리는 싸우고 안만난다고 할때마다 서로 비발디를 양보하라고 더 싸웠다..-_- 

 

사실 오늘 이 글을 쓰는 이유인데 어제 그 놈이 뜬금없이 저 사진을 내게 보내줬다. 뭐 본인이야 뜬금없는 건 아니고 내가 요즘 오래된 사진첩을 들추는 걸보고 자기도 사진첩 보다 발견했다나 뭐라나. 무슨 이유에선지 내게는 없는 사진이다.

나는 이렇게 사진을 받으면 자기 이야기도 올려달라는 의미로 이해하고 당장 이렇게 올린다..ㅎㅎ

 

나중에 한국에 갔다가 그 놈이 곧 결혼할 여자를 처음 만났던 것도 역시 저 비발디에서다. 나는 그때 나보다 술쎈 여자를 처음 만났다..^^

 

그리고 저 오른쪽 구석에 조금 보이는 액자가 내가 비발디를 사진찍어 주인장에게 선물한 액자다..

 

 

그리고 내 조카들과 피자를 먹으러 다닐때 열심히 쫓아다닌 것도 그 놈이었다. 아 저 귀여운 조카가 지난 번 증권경시에서 총리상을 받았다는 그 애고 그 놈과 내 사진을 찍은 건 오늘 군대간 놈이다..ㅎㅎ

 

 

사진이 역시 잘 안나왔다만 그 놈이 첫 월급을 타서 내게 사준 옷이다..연애는 안했는데 연애하는 사람들이 하는 건 다했다..ㅎㅎ

 

아 그리고 우연히 그렇게 되었다만 이게 내가 독일에서 입원했었다는 그 요양원이다..주말에 집에 다녀왔더니 외출이 되는 걸 모른 사람들이 나 없는 사이 왕창 병문안을 다녀가서 꽃이랑 멜론까지 저렇게 많다..ㅎㅎ

 

별 쓸데없는 편지를 등기로 보내 우체국까지 가게 나를 골탕먹였다는 놈도 그 놈이고 김대중과 김정일이 만나는 역사적인 날이라고 국제전화까지 해준 놈도 그 놈이다. 나는 당시 여행중이라 응답기에서 나중에 들었는데 누군가 그런 역사적인 순간에 나를 기억해줬다는 것이 참 고마왔더랬다.

 

그 놈이 유럽으로 출장을 왔을때 유럽이 무슨 대한민국크기인줄 아는 그 놈은 자길 만나러 오라고 스위스에서 파리에서 전화를 해댔다. 결국 그나마 우리집에서 가장 가까운 암스테르담으로 가서 그 놈을 만났다

 

 

시누이가 혼자 한국에 갔을때 만나고 싶어했다는 내 옛사랑은 못만나고 대신 만났던 것도 그 놈이다. 자기 주관이 뚜렸하고 참 괜찮은 남자더라고 우리 시누이 입에 침이 말랐다.. 물론 우리 시누이 남자고르는 걸로 보면 믿을만한 안목은 아니다만..^^;;

 

그 놈왈 울 신랑 동생이라고 해서 남자동생인줄 알았는데 나가봤더니 여자더라나..ㅎㅎ (저 구석자리가 내가 술마시고 일어나다 엎어진 그 자리다..ㅜㅜ)

 

우리는 역시나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자주 싸웠고 연락도 안하고 한국에 갔던 날 친구들을 만나고 있는 데 그 놈이 그냥 비발디에 나타난 적도 있다. 감이 왔다나..^^

 

5년전인가 또 싸웠고 그렇게 오래된 친구는 버리는게(!) 아니라는 올케언니의 만류를 뿌리치고 4년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다. 아마 가장 오래된 별거(?) 기간이었을 거고 우리는 진짜로 끝났다고 생각했다. (정말? ㅎㅎ)

 

 

그런데 그 놈은 2005년 가을 또 출장이라며 나리타공항에서 도쿄시내로 들어가는 길이라고 전화를 했다.

 

가시님께 전화를 했더니 내 전화번호를 모른다고 했다고 하고..ㅎㅎ 결국 올케언니에게 전화했단다. 큰 조카놈은 엄마 이제 고모에게 혼났다고 하더라나..하하

 

조카놈이 틀렸다. 그 놈이 올케언니에게 전화번호를 물어보는데 올케언니가 안가르쳐주는 건 말도 안되고(전화해서 조심스럽게 그 얘기를 전하던 울 언니 내가 잘했다니까 그제서야 고모 00씨 목소리를 듣는데 무지 반갑더라구요 하더라..^^) 나 역시 반가왔다.

 

저 날 나는 필름이 끊기도록 술을 마셨는데 내가 눈물을 철철 흘리며 제발 행복하게 살라고 하더란다..기억나지 않고 술마시고 우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 말이 맞을거다. 난 그 놈이 진짜 행복한 인생을 살기를 바라니까.

 

 

하모니님이 찍으신 이 사진은 지난 번에도 퍼왔었지만 저 날 번개에 청일점으로도 참석한 그 놈 저 놈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유럽에서 한국에 올때는 가기 전에 늘 저 뒷배경의 세 사람, 그러니까 나 그 놈 사막님 거기다 나의 그녀 또 지금은 연락하지 않는 다른 내 친구까지 다섯이 종로에서 모여 송별회를 했더랬다. 그러고보니 네 여자는 무슨 할 이야기가 그렇게 많았는지 술집문을 닫아 포장마차까지 전전해 가며 꼬박 밤을 새워 아침에 집에 들어간 적도 있다..ㅎㅎ

 

 

그리고 그때 있었던 엄마의 칠순잔치에도 그 놈이 왔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작은형부, 그 놈, 울 신랑, 그녀, 고기공 그리고 민들레님인 큰 형부다.

 

그 날 울 오빠 그녀는 내가 한국에 오면 만나는 일순위 고기공놈은 이순위 중요한 사람이 다 모였다고 하더니 그 놈보러는, 쟤는 한동안 안 만난다고 난리더니 어떻게 또 나타났는지 모르겠다고..ㅎㅎ 

 

저 날, 한 주책하는 내 엄마는 내 남자를 붙들고 '엄마는 00이를 사랑한다'고 혹 이 간단한 한국말을 내 남자가 못 알아들을까봐 한마디 한마디 강조까지 해가며 말했다..-_- 

 

그래 우리 엄마는 말안통하는 사위보다 그 놈이 사위가 되었다면 더 행복했을 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번에 한국에 가서 누군가에게도 이야기했지만 (아 우리는 또 싸워서 이번엔 안만났다..^^;;) 그 놈은 내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사람이다. 심지어 내 남자나 그녀도 이제 겨우 15년인데 나머지 헤매던 시절 6년간의 나까지 기억하는 사람.

 

물론 내가 그녀에게 털어놓는 것만큼은 아니어도 그 놈에게도 참 많은 이야기들을 한다. 역시 그 놈도 잘 들어주고 함께 마음아파해주고 그래도 넌 괜찮은 인간이라고 말해준다.

 

여우가 어린왕자에게 그랬던가, 네게 장미가 소중한 건 네가 그 장미에게 들인 시간때문이라고..

 

21년의 세월. 그 놈에게 내가 소중한 건, 내게도 그 놈이 소중한 건 우리가 나눴던 그 시간때문일거다.

 

그 놈에게  짜증을 참 많이 냈는데 이제 그만 나도 그 놈에게 좋은 친구였으면 좋겠다. 사실 그 놈에게 네가 힘들때 어깨를 빌려주겠다고 해놓고서는 막상 그렇게 하지 못했다.

 

어쩌면 나란 인간은 엄마를 그렇게 욕하면서도 엄마가 당신의 상처를 내게 풀었던 것처럼 내 상처를 그 놈에게 풀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시는 분들이야 다 아실테고 여기에 쓴 이야기야 뭐 우리 이야기의 반도 안된다만 어쨌든 미안하고 고마운 친구.

 

언젠가 또 만나게 되면 마구 짜증을 내고 또 싸우기도 하겠지만 내게 그 놈같은 친구가 있어서, 21년간의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모두 기억해주는 친구가 있어서 다행이다.

 

우리도 벌써 중년이구나.

 

 

 

얌마 너 나 열받게 하지 말고 앞으론 좀 잘해라.

이 나이에 자꾸 싸우면 창피하잖냐..ㅎㅎㅎ

 

 

 

 

 

2007.01.30 Tokyo에서..사야

 

 

 

 

21741

 

몽님

몽님이 그때 올려주셨던 그 음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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