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묻은 삶

아침부터 술주정

史野 2007. 2. 6. 10:32

어제 또 술을 디립다 쳐(!)먹고 헤맸다. 술꾼에게 술먹는 이유야 태평양 물고기만큼이나 많지만 초급도 아니고 고급술꾼인 내게도 이유야 많지만 결국 또 엄마때문이었다.

 

나랑 그 엄마를 공유하고 있는 언니들은 이제 엄마를 놓았다는데 그리고 이제 그만 나도 놓으라는데 그래야 네가 산다는데 젠장 난 그게 잘 안된다.

 

신랑말대로 답답하리만큼 자꾸 잊고 또 당하고 울고 앉았다.

 

지난 주에 생전가야 안부전화 한 번을 안하는 우리 엄마 전화를 해서는 또 생난리를 쳤다. 그래 또 일주일동안 너무 힘들었다. 신랑은 오빠언니들에게 이야기해서 제발 널 좀 가만히 놔두라고 부탁이라도 하라는데 나는 엄마에게 편지라도 써야하는 건지를 또 앉아서 고민했다. 한 두번이 아닌데 왜 나는 아직도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가. 왜 엄마가 하는 말을 다 믿는건가.  

 

나도 미치겠다 아니 미치고 팔짝 뛰겠다. 당하긴 내가 제일 많이 당했는데 지금도 제일 많이 당하는데 왜 도대체 나란 인간은 학습이 안되는 건지.

 

가끔은 정말 엄마가 소름이 끼칠만큼 싫은데  가슴에 생채기가 날만큼 그녀때문에 아프다. 아 정말 왜 그렇게 사는 건지. 넷이나 되는 자식들에게 다 왕따를 당하면서 그 중 오십을 바라보는 데도 여전히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아들내미마저도 마음편하게 못해주면서 왜 그렇게 사는지.

 

젠장. 참 그지같은 인생이다. 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언니들은 아니란다. 엄마는 자식들만 괴롭히지 나가서는 행복하게 잘산단다. 그러니 마음아파하지말고 너나 잘 챙기란다. 엄마가 하는 말은 반만 믿으란다. 이제 그만 포기하란다.

 

아 각설하고 오늘의 주제는 이게 아니다..술주정에도 주제가 있다..ㅎㅎ

 

그래 대낮부터 만땅 취해서 헤매는데 오랫만에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우리집 전화는 하루종일 울리는 일이 없는데 말이다. 술도 마셨겠다 얼씨구나 하고는 친구에게 한참 주정을 했다.

 

이번에 가서는 연락도 못했는데 이 친구왈 어쩐지 자꾸 내가 생각나더라나.

 

프로필에도 썼지만 나는 누구를 쉽게 친구라고 부르지 못한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론 누군가를 언니라고 불러본 적도 거의 없다. 나보다 여섯살이 많고 학번은 7학번이 빠른 그녀도 내게 언니가 아니다. 그렇게 친한데도 내가 영혼을 내어줄만큼인데도 우리는 지금도 서로 존댓말을 쓴다.

 

한국인 외국인을 떠나 처음 만나도 몇 시간은 수다를 떨 수 있을만큼 오픈 된 스타일인데 이상하게 친구를 만드는 데는 오백만년이 걸린다. 이건 어렸을때부터 그랬다. 그래서 친구들은 나를 어려워했고 너는 꼭 주변에 유리벽을 두르고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래서 내 남자는 가끔 나때문에 미치는데 도대체 너 좋다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왜그렇게 까다롭게 구는 거냐고. 제발 좀 마음을 열고 쓸데없는 이야기도 해가며 살라고 간절히 부탁을 하기도 한다.

 

또 각설하고 그러니까 말을 그냥 놓는 외국인들빼고는 내가 친구가 되어 이름을 부르고 말을 놓고 한 애는 아마 대학졸업하고 얘가 유일하지 싶다. 헉 아니다. 상해에서 만난 동갑 남자놈하나도 말놓고 지냈다..ㅎㅎ

 

이 친구를 난 독일에 가자마자 만났다. 역시나 나는 한눈에 내과가 아닌 걸 알아보고는 시큰둥했더랬다. 그런데 이 왠수가(진짜 왠수다) 끝도없이 전화를 해대는 거다. 정말 보통 사람이면 자기랑 안친하고 싶다는 걸 알았을텐데 너는 손가락이 부러졌냐 왜 전화를 한 번 안하냐는둥 아무렇지도 않게 전화를 하는데 결국 내가 졌다..^^;;

 

그래서 독일을 떠날때까지 사년동안 그 친구부부랑 참 친하게 지냈다. 그렇다 부부였다. 진짜 골때리는 남편도 있다..ㅎㅎ

 

둘 다 키도 크고 인물도 좋고 유머감각도 뛰어나다. 친구는 콘트라베이스를 그 남편은 트롬본을 전공했는데 그래서 우리 아버님 한국사람들인데 엄청 크다며 맨날 콘트라바스랑 포자우네(독일말이다)는 잘 있니? 하고 물으셨다..^^

 

그때 올렸던 우리 결혼파티에 왔다 시댁에서 자고 갔기에 시부모님도 잘아신다.

 

그 집에 가면 늘 밤을 샜다. 이 친구는 요리솜씨도 뛰어난데다 유학생들이 어찌나 잘해먹고 살았는지 밤새도록 뭔가 끊임없이 나왔고 맥주를 박스로 마셔대다 하나밖에 없는 방에서 모두 엎어져 잤다. 당근 아침 혹은 대낮에는 시원한 해장국이 나왔다.

 

신랑은 내가 걔네집에 간다면 당연히 다음 날 들어오는 걸로 알고 있고 또 그렇게라도 한국말을 쓰고 살아야한다고 걔네집에 간다면 좋아하기도 했다. (울 신랑 술먹고 새벽에 들어오는 걸 제일 싫어했는데 그냥 자고 오란다..ㅎㅎ)

 

이럼 엄청 아름답게 들리겠지만 아니다. 얘네는 또 엄청 싸웠다. 그것도 내앞에서..ㅜㅜ 그래서 이 남편이 스트레스를 왕창 받은 날은 친구가 어김없이 전화를 했다. 걔는 지금도 남편을 ㅇㅇ오빠라고 부르는데 '야 ㅇㅇ오빠 또 열받았다 네가 좀 집에와서 풀어줘야겠다' ㅎㅎ

 

그 남편은 가끔 술마시면 나한테 국제전화로 주정(!)을 하는데  지금은 친구가 잘 막아줘서 안한다..^^;;

 

어제는 내가 전화를 한 것도 아니면서 내내 주정을 했다. 알거 다 알고 또 드물게 나를 구박하는 친구인데 어제는 그게 그렇게 좋더라. 우리엄마 재수없는 것도 아는데 내가 우리엄마욕하면 이 친구는 그런다. 어이고 또 저러면서 결국은 앉아 울고 있을거면서..ㅎㅎ

 

우리엄마가 독일에 왔을 때 엄마에게 인사드린다고 이 부부가 왔었다. 신랑하고도 친하고 자고가기로 하고 우리는 술판을 벌였는데 문제는 신랑이 그 날 좀 늦게왔다는 것. 그러니 우리엄마가 그 꼴을 어찌보겠냐. 그래서는 어찌나 우리를 스트레스를 줬는지 그 부부가 혀를 내둘렀을 정도. 나중에 신랑이 얼마나 미안해했는지 모른다.

 

그때 정말 우리 엄마 너무나 개판을 치고가서 내가 거의 날마다 울었는데 압권은 엄마랑 둘이만 갔던 파리여행. 삼박사일을 불어는 커녕 영어도 못하는 우리 엄마가 절대(!) 나를 신뢰하지 않고 맘대로 하려는 바람에 돌아오는 날 파리북역에 주저앉아 정말 소리내어 엉엉울었다. 물론 엄마에게서는 이 사람많은데서 창피하게 왜 쳐울고 지랄이냐는 말을 들었다..ㅎㅎ 

 

우리 엄마는 정말 대단한 인물인데 내가 역에서 내려 어디로 가나 헤매니까 딱 지나가는 프랑스남자 한국말로 너 이리로 좀 와보라고 붙들어세우더니 얘한테 물어보란다. 그때 내가 불어를 열심히 하긴했어도 별 수준은 아니었는데 그 친절한 남자에게 십분이나 설명을 듣고 딱 두 단어 알아들었다..^^;;

 

거기다 또 한국말로 프랑스애에게 물도 얻어드시고 화장실에가셔서는 돈도없이(공중화장실 돈낸다) 잘 다녀오시고 루브르박물관에서는 내가 그림볼 동안 앉아계시다가 프랑스할머니들에게 끼고 있던 반지까지 받으셨다. 이 이야기는 진짜 압권인데 혼자 심심하셔서 찬송가를 부르고 계셨더니 할렐루야를 알아들은 프랑스할머니가 말을 시켰다나. 그래서 한국말로 나는 하나님을 믿고 어쩌고 일장연설을 하시고 그 할머니들이랑 한참을 이야기했단다. 물론 엄마는 한국말로 그분들은 불어로. 결론은 한 할머니가 손에 끼고 있던 반지를 빼주면서 종이에 자기이름까지 적어주고 가셨단다.

 

그게 우리엄마다. 시댁에 가서도 너무나 당당하게 시부모님께 모든 걸 한국말로 말씀을 하셔서(나한테 통역하라고도 안하고) 우리 시어머님이 날더러 제발 어디가지말고 옆에서 열심히 통역이나 하라고 간절히 부탁하셨다..ㅎㅎ

 

첫 해외여행이시니 음식이 안맞을까봐 내가 반찬을 열다섯가지나 준비를 했는데 그래서 엄마갈때 유학생들 불러다 멕였더니 너무 맛있다고 고급한식집에 온거 같다는 칭찬까지 들었는데 그리고 당신도 어쩌면 이렇게 한국음식을 잘하냐고 찬사를 늘어놓으셨는데 우리오빠네가 독일간다니까 가서 뭘 먹냐고 인절미를 싸가라고 하시는 분이 우리 엄마다.

 

아 내가 아직도 술이 덜깨서 이야기가 중구난방이 되어버렸다만 어쨌든 어제 친구랑 통화하면서 너무 좋았다는 것. 그리고 내가 그렇게 재수없게 굴었어도 지치지 않고 결국 친구로 만들어줘서 진짜 고맙더라는 것. 우리도 이젠 심삽년이 넘었으니 세월이 쌓이는 친구라는 게 참 중요하더라는 것.

 

어제 친구남편하고도 잠깐 통화를 했는데 어찌나 안변하는 지 친구랑 그대로라고 한참을 웃었다. 이 남편이 나를 참 좋아하는 이유가 나랑은 역사이야기를 할 수 있기때문이라는 데(그 남편의 주장이다..^^) 친구말이 그 남편의 말을 다 들어주고 반론까지 제기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단다. 어제도 우리는 만나서 역사이야기를 해야한다더라..-_-

 

독도문제 생겼을때 열받은 이 남편 내게 전화를 했는데 아시다시피 나야 독도문제에서 보통 한국사람들과 의견이 다르지 않은가. 그래 더 열받은 이 남편이랑 한시간도 넘게 통화했다..ㅎㅎㅎ

 

내가 이 친구를 좋아하는 건 이 친구가 자기 남편을 너무 좋아하기때문인데 나는 정말 자기 남편을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 처음봤다. 맨날 싸우는데도 그렇게 좋다니..아 자기 남편 너무 좋아하는 사람 또 있다. 홍콩캐런님..ㅎㅎ진짜 잘 지내나 전화 한 번을 못해본다..ㅜㅜ. 울 신랑 내가 홍콩캐런님 잘 안챙기는 것도 불만이다..^^;;

 

어쨌든 이 친구는 나랑 너무나 다른 사람인데 따져보면 비슷한 면이 하나도 없는데 나이들어 만나서도 이렇게 편한 친구가 되다니 내게 새로운 걸 가르쳐준 친구. 중간에 오해가 생겨 끝날 뻔 한 적도 있지만 또 그 끊은 놓지 않았던 친구. 연락한 번을 안해도 가끔 한국가서 그냥 와도 변함없이 안부전화도 해주는 고마운 친구. 도대체 왜 애를 안낳는거냐고 구박을 해도 밉지않은 친구.

 

동생에게 홍콩 우리집에 놀러가자니까 그 동생이 그 언니 성격좋냐고 물었다는데 '뭐 지랄맞다고 볼 수있지'라고 대답했다는 친구...ㅎㅎ 

  

아 그러고보니 독일에서 내가 우울증에 걸려 헤맬때 옆에서 지켜준 친구도 이 친구구나. 이야기했듯이 단시간에 한 이십킬로 정도 불었었는데 한달반만인가 나를 만난 그 남편, 너무 충격을 받으며 하는 말. ㅇㅇ씨 몸에다 펌프질을 했어요?..하.하.하

 

이 친구야 컴퓨터랑 안 친하니 이 글을 보진 않겠지만 (어제 좀 가끔이라도 들여다보라고 했으니 들여다보려나? ㅎㅎ) 경민아 성격 지랄맞은 나랑 잘 지내줘서 진짜 고맙다. 어제 위로가 많이 되었어.

 

 

 

 

2007.02.06 Tokyo에서..사야

 

 

21967

 

자 그럼 어제(아니 그제인가) 그 놈에게 또 받은 제 예전사진을 공개하겠습니다. 이 때가 살이 빠지고 있을 때인데 그래도 엄청 뚱뚱하네요 오랫만에 보고 저도 충격먹었습니다..하하하

 

찌는데는 두 달 걸렸는데 빠지는 데는 일년이 걸렸지요.

 

딱 십년 전 사진이네요. 그렇게 따지면 담배를 피기 시작한 것도 십년입니다..-_-

 

 

 

 

그리고 오늘 언어가 전혀 순화되지 않은 건 술이 취해서가 아니라 제가 앞으로 좀 거친 말을 쓰고 살아볼까 고민중이라 실험입니다..^^;;

 

 

 

그리고 애도 낳았는데 아직도 마돈나같은 몸매를 유지하고 있는 그 친구입니다. 더블린살때 이 식구들이 놀러와서 애를 아는 애에게 맡기고 넷이 바에 갔는데요. 남자들이 난리가 아니었죠. 아일랜드 사람들은 키작은 사람들이 많아서 저렇게 키크고 잘빠진 여자가 많지 않답니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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