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묻은 삶

술주정 2탄

史野 2007. 2. 6. 14:56

 

 

오늘은 좀 쏟아내야겠다. 안 그러면 죽을 거 같다. 아니 벗어버리려 쏟아내야겠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죽어라 맞고 컸다 왜 맞는지 이유도 몰랐다. 사람들은 아빠가 돌아가신 후부터 엄마가 날 괴롭힌 줄 알고 있지만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초등학교때부터도 엄마가 나를 하도 부려먹어서 큰 언니가 내가 불쌍했을 정도였단다. 그렇게 부려먹으면서도 맨날 때렸다.

나는 어렸을 때 공부를 잘했다. 인기도 많았고 엄마가 학교에 오지 않아도 선생님들이 참 이뻐했다. 그래서 더 얼마나 내가 집에서 불행한지를 내어 보일 수가 없었다. 정말  미칠 것 같았던 고등학교때도 내 친구짝은 그러더란다. 쟤는 어쩜 저렇게 해맑은 지 세상근심이 하나도 없는 애 같다고.

 

그땐 정말 신앙심으로 간신히 버텼다. 아마 그때 교회에 안 다녔더라면 난 죽었을 거다. 지금은 나 교회 안 다닌다고 난리인 우리 엄마 그때는 공부 안하고 교회만 간다고 성경책을 마당으로 집어 던졌다. 우리 엄마는 나를 대학에 보낼 생각도 없었는데도.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맞은 적도 있다. 미치지 않았다면 그게 비정상이다.

 

이야기했듯이 결국 고2때 쓰러졌다. 머리가 너무 아팠고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나는 정말 어떻게 해서든지 빨리 결혼을 해서 그 집을 떠나고 싶었다. 그때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지만 아마 내가 내 남자랑 결혼을 한데는 한국을 떠나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을 거다.

 

그렇게 결혼을 하고 일년 만에 한국에 다니러 가겠다는 내게 우리 엄마는 오지 말라고 화를 냈다. 그럴 때 우리 엄마는 얼마나 잔인하게 이야기를 하는 지 그때도 신랑을 붙들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아 물론 우리 엄마는 내가 걱정이 되셔서 그러셨단다.

 

그리고 한국에 갔는데 그것도 한 달이나 갔는데 하루 큰언니네랑 지리산으로 여행을 간다고 했다가 입에 담지 못할 욕을 먹고 또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 전화를 받았을 때가 작은 언니네 집에 있을 때인데 다시 집에 올 필요도 없다고 그냥 거기서 독일로 가버리라고. 한국에 왔다가 엄마랑 안 있고 여행을 간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난리도 아니었다. 겨우 하루 그것도 언니네랑 여행을 하겠다는데

 

정말 내가 이십년 전에 혹은 삼십 년전에 아팠던 기억때문만이라면 이렇게 힘들지 않는다. 볼 때마다 만날 때마다 우리 엄마 얼마나 가슴에 못을 박는 지 모른다

 

거기다 우리 엄마는 조카들도 엄청 괴롭혔다. 특히 군대간 놈 얼마나 맞았는 지 모른다. 내가 그 아픔이 있기에 그 놈을 볼 때마다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특히 이 놈 초딩때 울면서 자기엄마에게 거지로 살아도 좋으니 이 집에서 나가자고 했다는데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난다.

 

우리 엄마는 오빠를 너무나 사랑하는데 그러다 보니 올케언니는 말할 것도 없고 오빠가 생명하고도 맞바꿀 수 있을 그 자식들마저 오빠에게 빌붙어 오빠를 힘들게 하는 인간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래 큰 조카가 재수를 하겠다고 했을 때 그 놈을 불러다가 재수하지 말라고 생난리를 쳤단다. 뭐라고 어떤 표정과 목소리로 이야기했을지 안 봐도 비디오다. 조카놈에게 미안하다고 할머니 원래 그러신 분이니까 할머니가 하신 말씀 그냥 잊어버리라니 이 놈 웃으면서 그런다. 단점만 골라서 이야기를 하시는 데 어떻게 잊혀지냐고.

 

내가 한국에 가서 조카들 밥이라도 사주면 왜 오빠는 안 사주고 애들만 사주냐고 또 난리다. 아니 우리 오빠가 날 사주면 사줘야지 내가 왜 오빠 밥을 사줘야 하냐고? 우리 엄마는 우리 오빠는 피똥 싸가며 돈 번다고 생각하고 울 신랑은 그냥 앉아서 황금을 줍는다고 생각한다. 그래 내가 밥을 산다고 하면 소갈비도 실컷 드시고 오빠가 밥을 산다고 하면 돼지갈비도 잘 안드시고 왜 나와 먹어야하냐고 불평이다.

 

오빠는 왜 밥을 안사주냐고 난리인 그 엄마는 내가 조카들 용돈주는 것도 불만이다.여섯 명 조카들 일년내내 주는 돈이 엄마에게 쓰는 돈에 발꿈치도 안미치는데도 돈을 왜 쓸데없는데다 쓰냔다.

 

엄마 쓰러지셨을 때 기억나시는 지 모르겠지만 딸들은 모두 홍콩에 있었다. 나도 언니들하고 같이 한국에 갈 생각이었지만 여행하는 사람이나 나나 다 돈도 많이 쓰고 해서 병원비 걱정도 있고 해 내가 안가고 그 경비를 병원비에 보태기로 했었다. 우리엄마 그 아픈 와중에도 오빠 힘들까봐 돈 보내서 고맙다고.

 

오빠 힘들까봐 보낸 거 아니다. 우리 엄마는 딸들에게도 돈이 나와야 마음이 편한 사람이니까 엄마 마음편하라고 보낸거다. 그리고 전화에 그랬다. 엄마 미안하다고 나도 돈이 많은 게 아니니까 이 돈 보내고 나가지는 못한다고 그리고나서 아픈 엄마생각에 나가보지도 못하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우리 엄마 그 몇 달 뒤에 갔더니 삼촌더러 막내딸이 되어가지고 엄마 아픈데 한 번 나와보지도 않더라고 하신다. 

 

오빠 아프다고 할 때도 약해 주라고 돈을 보낸 적이 있다. 우리가 돈이 많고 오빠가 약값도 없어서가 아니다. 그래야 엄마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그 마음을 자꾸 이용한다

 

우리 엄마 돈때문에도 나를 얼마나 괴롭혔는지 모른다. 돈있는 데도 거짓말하고는 구구절절한 사연에 내게 이천만원만 해달라고 해서 해줄 수 없는 내 마음은 찢어졌다. 그때도 돈 들어있는 통장은 숨기고 겨우 만원들어있는 통장을 보이면서 정말 돈이 이거밖에 없냐니까 그렇다고 했다.

 

그 전까지는 가끔 목돈을 드렸는데 그래서 그때부터 매달 용돈을 드리기 시작했다. 우리도 여유가 그리 많은 건 아니었으니까 십오만원 오빠네가 십오만원 드리니까 삼십만원이면 쓸만 하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 엄마 언니들에게까지 이야기해서 어떻게든지 오십만원 만들어 내라고..그것도 저축액이 꽤 많은 상태였는데도 그러셨다.

 

그때도 내가 울면서 그랬다. 엄마가 이 돈으로 증권하지말고(우리엄마 증권때문에도 난리도 아니었었다) 수영장도 다니고 사우나도 다니고 그러면서 즐겁게 사시면 그래서 모잘란다면 내가 절약해서라도 더 드리겠다고 그러니 제발 즐겁게만 사시라고.

 

내가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시댁엔 십원 한 장 안 드린다. 아니 밥도 가서 얻어먹는다. 우리 시부모님 엄청 절약하고 사시면서도 자식들에게는 어떻게든 지 피해 안주려고 애쓰며 사신다.

 

어쨌든 또 올케언니가 밥도 안 해준다고 당신이 해드시겠다고 난리여서 용돈을 올려드렸다. 당연히 밥 안 해드시고 늘 돈돈이다. 용돈외에도 갈 때마다 드리고 명절때도 드리고 가면 원하시는 것도 사드려도 늘 부족하다. 옷사드리면 마음에 안든다고 돈으로 바꿔오시고 다음에 가면 또 옷없다고 하신다. 그래서 사드린다고 하면 마음에 드는 거 없다고 돈으로 달라고 하신다. 그래 지난 생신때도 언니에게 그냥 옷을 사드리라고 했더니 그 옷 바꿔오라고 그 비싼 옷(그래봤자 세일해서 십이만원이었다)을 쳐다보고 있으니 혈압이 올라서 청심환을 드셨다고 했단다. 물론 내가 사드리는 걸 모르셨으니 오빠 돈인줄 알고 그러셨을거다.

 

이번에도 빳빳한 신권으로 십만원 드렸다가 삼촌 병문안에 신권이 필요해 도로 받았다. 나중에 다시 드렸더니 이자붙여 달란다.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하면 그냥 웃을 일이다. 그런데 우리엄마는 진심이다.

 

재작년에도 딸들에게 금반지를 해달라 시길래(패물을 증권때문에 다 파셨다) 칠순 때 해드린다고 하고 말았다. 그러다 내가 어버이날에 또 나가게 되었다. 칠순은 아니지만 반지이야기가 마음에 걸려서 언니들에게 어버이날 드릴 용돈 내게 합해 달라고 내가 나머지는 낼 테니 그냥 이번에 반지 해드리자고 했다.

 

작은 언니가 알아보니 삼십만원 가까이 된다고 했는데 엄마가 동네에서 새로 생긴 곳이 세공비 안받고 해준다고 이십만원에 하셨단다. 그래 내 딴에는 어차피 나는 이십만원 보탤 생각이었으니 가서 뭐 다른 거라도 사드려야겠단 마음으로 갔다. 그런데 우리 엄마 작은 언니가 딸들이 그렇게 하기로 했다고 분명히 말씀을 드렸다는데도 언니들에게 이거 막내가 해준 반지라고 자랑을 하시는거다. 그래 내가 해주는 게 아니라 우리가 해드리는 거라고 했더니 그깟 이십만원밖에 안하는 반지를 그냥 니가 해주면 되지 뭘 언니들까지 끼냐신다.

 

맞다 나 엄마에게 이십만원짜리 반지해드릴 수 있을만큼은 산다. 그런데 이런 것도 한 두번이지 당연하게 생각하고 저러는 거 참을 수가 없다. 정말 치사하게도 이모에게 드리는 용돈에서 몰래 빼내시는 것도 봤다. 이번에 이모를 못 뵈어서 엄마에게 이모용돈 드리고 왔는데 난 엄마가 그 돈을 다 드렸는지 믿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 믿을 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나를 너무 우울하고 힘들게 한다. 우리 엄마는 용돈드리면 그런다. 엄마가 살아있으니 이렇게 용돈도 줄 수 있고 얼마나 행복하냐고.

 

환갑을 크게 해서 칠순은 좀 조용히 지나가려는데 당신이 나서서 예약까지 하시는 분이 우리 엄마다.

 

자식들이 좀 까칠하게 굴면 생을 버리시겠다고 협박하며 유서도 보여주시는데 거긴 또 하필 막내를 잘 보살펴주라는 말만 나온다.

 

너는 마음이 약해서 너만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진다고 하시는 우리 엄마. 특히 그 마음약한 딸내미 잠도 잘 못자고 불안에 떠는 딸내미, 엄마표현대로 자식도 없어 불쌍하고 외롭고 떠도는 그 딸내미가 전화하면 갑자기 목소리톤이 한 옥타브는 다운되어서 세상에서 제일 불행하고 세상에서 제일 외로운 인간으로 돌변한다.

 

지난 주 다짜고짜 전화해서는 울고불고 하며 엄마를 용서하란다. 오죽 속상했으면 나가서 잤겠냐고 무조건 잘못했으니 용서하란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면 우리엄마가 아니다.

 

네가 살 날도 얼마 안남은 이 늙은 에미에게 어찌 감히 그럴 수가 있냐고 너 때문에 삶의 희망을 잃었다고 난 너하나 보고 사는 인생이라고 이 외로운 엄마를 그렇게 홀로 남겨놓다니 요즘 내가 너 때문에 혈압이 오르고 정신을 놓고 살고 있다고. 니가 내속에서 나온 자식인데 엄마 죽으면 어떻하라고 이러냐고. 용서한다는 말을 들어야 전화를 끊을 테니 빨리 그 말을 하라고..

 

나도 엄마를 용서하고 싶다. 그런데 어디부터 어떻게 용서를 해야하는 지 그 방법을 모르겠다. 아니 뭘 용서해야하는 건지를 모르겠다. 그래서 그랬다. 엄마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니까 그냥 좀 즐겁게 살라고..

 

우리엄마가 울면서 내게 용서를 빌었던 적이 한 번 더 있었더랬다. 내가 도저히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때 너를 이렇게 만든 건 나라고 울며 빌었더랬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내가 거의 열흘을 못 자고 발이 땅에 닿지 않은 그런 기분으로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아서, 너무 힘들어서 울고 있는데 병신같은게 꼴갑을 하고 있다고 오늘 오빠에게 얼마나 중요한 날인줄 아냐고 닥치라고..

 

시어머니 앞에서 몇 번이나 통곡을 했다. 제발 말해달라고 나는 자식이 없어서 모르겠다고 어머님같으면 자식에게 이럴 수 있겠냐고.

 

나같으면 그 병든 딸 맡겨놓고는 잘 사는 것만도 고마울 거 같은데 우리 사위가 잘하는 건 다 내 딸이 잘하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너는 나를 닮았기 때문이란다.

 

그러면서 왜 친정을 안 살리냔다. 누가 보면 우리 친정이 굶어 죽는 줄 알거다.

 

용돈이 늘 모자란 이유가 저축을 하시기 때문이란다. 당신 불쌍한 아들 (우리오빠 연봉이 어마어마하다) 에게 한푼이라도 남겨주고 싶어서 그러신단다.

 

우리 엄마는 언어폭력도 대단하다. 당신 기분이 나쁘면 온갖 입에 담지 못할 욕과 사람마음에 상처가 되는 단어들을 이용해 당신 속을 풀어야한다. 그런데 나가시면 세상에서 가장 우아하고 가장 경우바르고 사리분별 뛰어나시고 가장 인자하시다.

 

예전부터 우리 집에 들락거리던 내 친구는 우리 엄마가 늘 부러웠단다. 물론 친구앞에서 맞지는 않았다. 물론 이런 친구만 있는 건 아니다. 대학때 아파서 친구에게 거의 실리다시피 집에 왔는데 어디가 아프다고 그 꼴로 다니냐고 화를 내서 내 친구가 충격받았더랬다.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이를 악물고 버텼다. 유전적으로 엄마랑 자식들중에서도 가장 많이 닮았기에 처절하도록 외롭고 힘들었다. 나는 정말 남들에게 이렇게 상처주는 인간으로 살지는 않겠다고 울었다. 고모가 할머니랑 닮은 건 맞지만 그래도 고모는 좋은 쪽으로 발전했다고 조카가 말해주거나 너는 절대 너희 엄마랑 닮지 않았다고 그런 걱정은 말라고 내 남자가 말해줄때면 그저 눈물이 났다.

 

우리 시어머니 내가 아무리 엄마를 욕해도 너희 어머니가 이렇게 너를 잘 키워서 너 때문에 내 아들이 그리고 우리 식구가 다  행복하니 너희 어머니에게 늘 고맙다고 하실 때도 눈물이 났다.

 

그래 젠장 사실 난 엄마가 너무 잘 키웠는데 나만 그 은공을 모르고 배은망덕하게 이러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앞으로는 진짜 배은망덕해질 생각이다. 우리 언니 나가자면서 그 정도 당할 것도 예상하지 못했냐고 다음에 또 나가자면 된다던데 그러다보면 극복하게 될거라던데...

 

더 이상은 엄마가 내 인생에 관여하게 두지 않겠다. 엄마의 불행이 내 책임은 아니다. 엄마에게 태어난 것도 내 탓은 아니다. 내가 불행한 인생을 산 것도 엄마때문은 아니다. 그냥 내가 약한 인간이어서다.

이제 놓는다. 당신을 놓는다.

 

엄마 나 정말 미치겠다구. 엄마를 놓을 테니 엄마도 날 나줘. 제발 너 때문에 산다고 너를 너무 사랑한다고 말하지마. 자꾸 나를 죄책감에 시달리게 하지마. 너는 엄마에게 할 만큼 했으니까 엄마 죽어도 울지 말라고도 말하지마. 제발 나를 걱정하지도 마나를 그냥 믿어줘. 나도 엄마를 믿을게 엄마 말대로 우린 닮았으니까 나처럼 애쓰면서 잘 이겨나갈거라고 믿을게 이젠 나도 엄마걱정 같은 건 하지 않을거야.

 

 

 

 

 

2007.02.06. Tokyo에서 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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