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묻은 삶

江村, 그 곳에 남겨진 사야

史野 2007. 2. 4. 14:25

산넘어 강촌에는 누가 살길래..ㅎㅎ

 

서울에서 대학을 다닌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번 쯤은 가서 밤새 술마시고 놀았을 장소 강촌.

청량리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가다 북한강가 절벽옆에 위치한 역에 내리면 탄성이 나오는 이름만큼 낭만적인 장소.

 

내가 그 강촌에 처음 발을 디딘 건 고등학교 때.

 

어느 휴일, 작은 언니가 지금은 형부가 된 당시 남자친구랑 놀러간다고 김밥을 싼 덕에 나도 김밥도시락을 가방에 넣고는 도서관이 아닌 청량리역에서 혼자 강촌행기차에 올랐다.

 

보통 답답할 때는 버스에 올라 아빠산소를 찾아가 무작정 앉아있다오곤 했는데 그 날은 왜 기차를 탔는지는 모르겠다.

 

강촌역에 내려 주위를 살피다가 구곡폭포와 등선폭포 중 더 가까왔던 등선폭포를 향해 무작정 발길을 옮겨더랬다. 양쪽으로 절벽인 좁은 길을 지났을 때 펼처진 그 별세계는 지금도 가슴이 떨릴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꼭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되었던 기분.

 

휴일의 우리나라 관광지가 거의 그렇듯이 그 날도 단체로 몰려와 놀고 있는 사람들을 피해 다시 돌아나와야했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졌고 비를 어찌 피하는데 나외에도 혼자인 어떤 여자분 하나가 눈에 띄었다.

 

다시 오던 길을 걸어나와 북한강가에 내려갔는데 자갈밭에 앉아 있던 바로 그 여인..ㅎㅎ 그렇게 둘이 만났으니 서로 쑥쓰럽게 웃으며 말을 건네고 겨우 빵조각을 들고 있던 그녀와 내 김밥을 나눠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었다.

 

자세한 기억은 안나지만 나보다 다섯 살쯤인가 위였던 그녀는 아마 직장생활을 하다 힘들었던 거 같고 나야 뭐 누누히 이야기했지만 헤매는 고딩생활을 보내고 있는 중이었으니..

 

그렇게 한참을 강물을 내려다보며 이야기를 나누던 우리는 함께 기차를 타고 돌아와 김밥을 얻어먹었으니 저녁을 사주겠다는 그녀와 청량리근처 어딘가에서 짜장면을 사먹고 헤어졌다. 그 이 후에 서로 연락을 했던 거 같지는 않지만 잊지 못하는 기억.

 

 

두번 째로는 그 기억이 너무 좋았기에 교회사람들과 가는 야외기도회를 그리로 간 적이 있다.

 

 

세번 째 강촌을 갔던 건 과동기들과의 첫 엠티. 강촌역에 바로 딸린 강가까지 계단으로 이어져있던 그 민박집에서 부어라 마셔라 해댄 기억. 당시야 나는 술을 못마셨고 주종을 이루던 술이 더 못마시는 막걸리였으니 슬며시 빠져나와 강가로 내려갔더랬다.

 

강물은 여전했고 내 답답함도 여전했고..

나를 찍어서(나는 공주병이 아니라 도끼병이다..ㅎㅎ) 따라 내려왔던 어떤 남자아이와 오랜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 얘랑도 대학시절 내내 재밌는 이야기많은데..^^;;)

 

 

그리고 네번 째 강촌행 기차에 올랐을 때는 내가 너무나 사랑하던 한 남자하고 였다. 그와 나는 이루어질 수 없는 운명(?)이었는데 왜 그 날 우리가 함께 강촌행 열차에 오르게 되었는 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보는 순간 반했던 풋사랑이 아닌 내 첫 사랑.

표현도 못하고 혼자 일년이 넘는 시간을 그때문에 얼마나 애닯은 시간을 보냈던지. 왜 그가 그렇게 좋았던지.

 

첫 눈에 반한다는 건 어쩌면 상대가 나처럼 외로운 영혼이라는 걸 알아보는 것이었을텐데 난 그때 어렸고 그런 건 알지 못했다.

 

역시 물소리가 사방가득한 그 곳에서 그와 뜨거운 키스를 나눴고 남자를 알지 못함에도 여자도 누군가와 자고 싶어질 수 있다는 걸 배웠다.

 

그 날 그와 내가 잤다면 우리의 운명은 달라졌을까.

아니 그런다고 운명같은 건 쉽게 바뀌지 않으니까 더 아픈 상처가 되어 남았겠지.

 

결국 우리는 헤어졌고 내가 내 남자와 사랑에 빠질 때까지 동시에 그 옛사랑이라는 남자친구와 우리가 나눴던 그 오랜시간이 사실은 사랑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을 그 때까지. 늘 연애를 했음에도 그는 내겐 유일한 사랑이었다.

 

나는 그를 잘 알지 못한다.

그와 내가 헤어져야만 했던 이유도 알지 못한다. 아니 이해하지 못한다.

그의 이유도 내 이유도..

 

그저 내게 내가 누군가를 지독하게 사랑했었다는 기억이 남았을 뿐.

내게 그는 아직도 당시 빛나던 그 모습으로 떠오를 뿐. 

 

 

 

언제 다시 한국에 가면 처음 강촌에 올랐던 그때처럼 혼자 강촌행기차에 올라야겠다.

 

그 곳엔 또 소리내어 울지 못하고 강물을 지긋이 응시하던 열아홉살의 사야가 아직도 오두커니 앉아 있을 지도 모르겠다.

 

내 엄마를 용서하고 내 과거와 화해할 시간.

 

이젠 그 너를 고통속에서 자유롭게 해줘야하는 시간.

 

 

성장의 상처와 사랑의 상처가 여전히 뒹굴고 있을 그 곳에 가서

 

변함없을 강물에 씻어낼 수 있으면 좋겠다.

 

이제 그만 다 놓아버릴 수 있으면 좋겠다

 

 

 

 

 

 

2007.02.04. Tokyo에서..사야

 

 

21913

 

이 글은 강촌에 대해 자세히 모르는 당신을 위한 고백이기도 합니다.

 

요즘의 저를 이해하시는 데 도움이 될거라는 나름 소통을 위한 발버둥(!)이구요

 

아 강촌행에 혼자 안가고 당신을 동행시켜 드릴게요..^^

 

우리 김밥도 사고 귤도 사고 이번엔 달걀도 사서 기차에 오르기로해요.

 

그때는 당신이 운전을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ㅎㅎ

 

  

 

사진은 그 후 또 한 번 더 갔던 써클엠티때 역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저 누군지 아시겠어요? ㅎㅎ

저 뒤로 북한강이 흐르지요.

그런데 사진을 자세히 보니 저를 찍었던 남자가 또 있군요.

선물에 편지공세를 하던 남자는 저 날 참석을 안했는데도 말이죠

이만하면 도끼병마저도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심각한 수준입니다..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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