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묻은 삶

오래된 사진첩을 들춰보니 2

史野 2007. 1. 10. 17:16

근 한달만에 나가서 마사지를 받고 왔다.

우울하게 앉아있는 건 내 스타일도 아닌데다 오시는 손님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다시 즐거운 이야기를 풀어야겠다.

오래된 사진첩 들여다보는데 재미붙였는데 시리즈물로 나갈 확율이 크다. ㅎㅎ 아무래도 보다 나은 서비스를 위해 스캐너라도 장만해야할듯..

 

어쨌든 오래된 사진을 빙자한 우리의 러브스토리. 내가 요즘 내 남자랑 다시 사랑에 빠지고 있는 중이라.^^;;

 

 

지난 번 사진을 올렸던 92년 8월, 독일에 갔을때 신랑이랑 결혼하기로(신랑이 졸업할때까지 우리 마음이 안변하면..ㅎㅎ) 했다.

 

92년 9월, 언급했던 중2때부터의 남친 고등학교 카니발 파트너로 간 날.

진짜 친구였는데 바로 저 날이 우리의 운명(?)의 날이 되어버렸다.

 

이 날 2차에서 우리나라 남자들의 그 웃기는 취미인 선배 구두에 소주가득부어 마시게 하는 의례가 있었다. 친구가 도저히 술을 마실 수 없다며 내게 부탁을 해서 내가 그 술을 마시겠다고 일어났다는 것!!!

 

이 날부터 우리 세 사람의 피말리는 오개월이 진행된다..ㅜㅜ

 

그때 마침 신랑은 러시아로 여행을 갔는데 독일에서 매주 편지가 왔다.(그땐 이메일이 없었다) 황당한 이 남자 미리 써놓고는 일주일에 한번씩 자기엄마에게 보내달라고 부탁을 하고 간 것.

 

 

 

러시아에서 돌아온 이 남자에게 그 슬픈 소식을 알렸다. 00이가 결혼하자고 하고 나도 뭐가 바람직한 건지 모르겠다고..

 

얘기했듯이 이 남자 내 친구에게 여태 그 오랜시간을 사야의 가치를 못 알아보다가..ㅎㅎ 왜 내가 결혼을 하겠다니 다 늦게 난리냐는 편지를 보내놓고도 도저히 견딜수가 없어서 학기중임에도 불구, 나도 갔었지 러시아여행도 했으니 돈도 없어서 런던도 모잘라 홍콩까지 경유하는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나타났다.

 

마침 신랑이 온 날은 한국시리즈 마지막날. 당시 야구광이었던 나는 이 남자를 공항에서 그대로 끌고 야구장으로.. (이건 잠실야구장에서 찍은 사진..^^)

 

태어나서 야구라는 건 처음 본 이 남자. 마누라 잘만나서 그 대단한 게임을 보는 행운을 얻었다지.그 날 우리가 응원했던 롯데가 이겼다.ㅎㅎ

 

 

 

그리곤 10월 단풍철이라 설악산 등반에 나섰다. 중학교때부터 등산부였던 나는 산에 가면 난다..ㅎㅎ

백담산장에서 자고 내설악으로 올라가 소청산장에서 자고 대청봉에 올랐다 외설악으로 내려왔는데 산이 없는 독일서북부에서 자란 이 남자는 또 이런 빡센 등산도 처음.

나는 등산화라도 신었지 랜드로바신고 올라간 이 남자. 평지에 발을 딛고 서서 한 말 '앞으로 우리는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어' 하.하.하

 

이 사진은 어쨌든 92년 10월 사진

 

 

 

자주 언급되던 카페 비.발.디.다. 내 결혼식에도 오셨던 저 카페아저씨(내가 저길 들락거린 후 세 번째 주인..^^ ) 말씀에 의하면 내가 저기 함께 자주가던 두 남자중 누구랑 결혼할까가 늘 궁금했단다( 아 양다리가 아니다 셋이서도 자주 만났다..^^;;)

그런데 어느 날 저 이 외국남자랑 결혼할거예요 하더라나..ㅎㅎ

 

그건그렇고 그 사개월동안 한국남친은 내 옆에(집도 우리 동네다), 신랑은 팔천킬로도 넘게 떨어진 곳에 있다보니 아무래도 불리했던 내 남자. 졸업시험을 앞두고 도저히 공부가 안된다고 설사 헤어지더라도 네 얼굴을 보고 그 말을 들어야 포기가 되겠다며 우리가 만난 지 일년 기념일에 맞춰 또 한국에 나타났다.

 

그러니까 이 사진은 93년 2월말,

 

아니 정확히는 우리가 만난지 딱 일년인 93년 2월 21일. 우리가 처음 만났던 예술의 전당에서 음악회를 본 날 

 

이 머리좋은 남자는 그동안 혼자 한국어를 독학해서 그 일주일전인 발렌타이데이에 내게 한국말로 편지를 보내 나를 감동시켰다. 아니 내 주변 모두를 감동시켰다..ㅎㅎ

 

이때 내 남자를 만난 울 엄마 ' 너 보아하니 아주 괜찮은 애 같다 그러니 독일에 가서 좋은 여자 만나서 잘살아라. 내 딸은 그냥 여기서 나랑 잘 살거야'

 

울 신랑 ' 제가 원하는 건 어머님의 그 딸이지 다른 좋은 여자가 아닙니다' ㅎㅎ

 

어쨌든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저 사진엔 술이 취해 둘다 말이 아니지만 내 남자의 승!

 

93년 3월 어느 슬픈 날. 울 신랑 내 남친 그리고 나 셋이 만나서 상황을 마무리지었다.-_-

 

 

 

웃기는 여자를 만난 덕분에 졸업시험을 망친 신랑은 그 해 사월 졸업을 했고 곧 어찌어찌 지금의 회사에 입사.  

 

93년 7월 24일 바로 그 날, 신랑의 생일선물겸 학교도 알아볼겸 집문제도 그렇고 여름에 독일행.

 

신랑이야 일을 하니까 나혼자 여기 저기 돌아다니던 중 본의 베토벤생가다.

 

우리식구들은 결혼을 허락하지도 않았는데 나혼자 결혼날짜 잡고 결혼식은 한국에서 한다고 말씀드리고 시부모님이 한국오실 날짜까지 다 정하고 왔다.

 

 

국제결혼을 하는 사람들은 결혼식을 여러번 하는데 나는 인간이 한 까다로움하는지라 결혼식은 딱 한번. 그것도 한국에서의 원칙을 고수. 시부모님이 결혼식을 위해 미리 나오셔서 나랑 동해며 제주도며 여행을 다니셨다. 그러니 93년 10월 초

 

신랑이야 입사초기는 휴가도 안된다는데 결혼이라는 특수한 상황이라 간신히 허락받고 결혼식때 맞춰 나오기로 하고..ㅎㅎ

 

 

드디어 93년 10월 23일 결혼.

결혼식에 뭘 입냐는 울 시어머님. 보통 한국분들은 한복을 입지만 어머님은 그냥 마음대로 하시라니 한복을 입으시겠다고 하셨다.

 

저 날 주인공은 내가 아닌 울 시어머니. 체구도 작으셔 한복이 어찌나 잘 어울리던지 다들 난리도 아니었다..^^

 

전통혼례는 아니었지만 함도 못 받는데..ㅎㅎ 폐백은 또 해야겠다고 우겨서 시부모님빼고는 다 우리 친척들이 절받고 돈주느라 애쓰셨다..^^;;

 

어쨌든 야외웨딩촬영도 웨딩드레스를 두 번 입을 수 없다는 이유로 그 아침에 했는데 독일친구들에게 이런 부자연스러운 사진을 찍느냐는 식의 왕비웃음을 샀다 (아 물론 내가 아니라 울 신랑이..-_-)

 

 

시간적 여유도 없었고 보통 한국신혼부부처럼 패키지신혼여행으로 태국에 갔다. 패키지여행이 처음인 울 신랑은 여행가서 거의 기절했다만..ㅎㅎ 나는 뭐 좋았다.

 

저 사진을 독일살때 액자에 넣어놓았는데 우리집에 놀러왔던 어느 유학생. 이 사진 어디서 찍으신거냐길래 신혼여행때라고 했더니 ' 어머 신혼여행을 동물원으로 가셨어요? ' ㅎㅎㅎ

 

 

신혼여행후 이틀뒨가 삼일뒤인가 왕복표가 아닌 편도로 신랑과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다.(시부모님은 우리 신혼여행중 독일로 가셨고)  짐을 미리 보내긴 했지만 그래도 저 이민가방하나 사서 꾸역꾸역 넣어야할 것들이 어찌나 많은지.

 

비행기에서 내려 프랑크푸르트공항에서 뒤셀도르프행 열차를 기다리는데 두렵고 떨리던 그 기분.

 

 

이야기했듯이 집이야 구했고 신랑이랑 페인트칠도 직접한 (도배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우리의 첫 보금자리인 이 아파트. 한국식으론 4층인데 에레베이터도 없어 저 짐을 끌고 올라간 이 아파트에 펼쳐진 광경이다.

 

저 현관문에 붙어있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문구. 신랑이 오기전에 써놓고 간건줄 알고 어찌나 감동을 했던지.

 

그런데 집에 들어가보니 그게 아니었다는 것. 친구들이 나타나서 이 난리(?)를 쳐놓고 간거다.

 

 

이건 정말 까맣게 잊고 있다가 오늘 사진첩에서 발견하고 놀랜 것. 그러니까 내가 저 현관문에 놀래고 어쨌든 집에 들어갔는데 불이 안들어오는 거다. 그래 두꺼비집같은 걸 확인하니 내려져 있어서 올렸다.

 

그랬더니 저 윗 사진의 카세트에서 친구들의 환영인사가 흘러나오더라는 것. (저 테이프 어딘가 있을텐데 갑자기 너무 듣고 싶다)

 

저 문구도 이 친구들이 써서 붙여놓고 간건데 한국식당에 가서 한국말로 결혼축하가 뭐냐고 메모지에 써달라고 한 후 와서 저 말을 베껴쓴 게 아니라 베껴 그린거다..-_-

 

 

또 결혼식은 안한다고 했지만 우리 결혼식에 온 독일사람들은 시부모님뿐. 12월에 뮌스터 예전 마굿간이었던 곳을 빌려 신랑친구들을 모아 결혼파티를 했다.

 

오백만년전에 '그들의 결혼식'인지 올리며 언급했지만 독일애들은 친구결혼식 피로연에 생난리를 치는데  우리때도 그랬다.

 

여기도 왔다던 그 스카웃친구들 무리가 준비한건데 질문에 대답하기 눈에 뭐 두르고 사람들 다리 만지며 내 남자 다리 찾기(물론 내 남자도 거꾸로 했다..ㅎㅎ) 등등을 거쳐 우리가 확실히 부부라는 걸 확인받는 과정.

 

유감스럽게도 나는 당시 저 사회보는 애의 독일어를 못 알아듣고 그 애는 영어는 못하고 왼쪽의 청바지입은 애가 통역까지 해야하는 사태발생..ㅎㅎ

 

 

뭐 지들이 설마 우리를 불합격시키겠는가. 그래서 합격..ㅎㅎ 스티커도 받았다.

 

그리고 저  EHE TueV라는 목거리!!. 여기 모님의 남편이 그 회사에 근무하시기도 하는데 독일의 품질보증서다. EHE TueV 결혼품질보증서.

 

보증서까지 받았는데도 그 후 오년 뒤 이혼한다고 생난리를 쳤다만 오년이면 뭐 낡을 때도 되었지? ㅎㅎ

 

저 뒤에 있는 애들이 안야랑 마쿠스다..^^

 

찾아봐도 사진은 없더라만 우리가 품질보증을 받고 받은 선물은 저 옆에 나오는 현금으로 가득한 가방. 모두 일달러짜린데 물론 대부분은 복사물이고 진짜 일달러짜리가 섞여있었다.

 

놀랬던 건  그 복사물의 일달러짜리엔 진짜가 아니라 (누구더라 조지 워싱턴인가?) 스카웃친구들의 얼굴이 들어있었다는 것.

 

재밌는(설마 나만 재밌는 건 아니겠지? ㅎㅎ) 러브스토리는 여기서 마감..^^

 

 

 

 

 

2007.01.10 Tokyo에서  사야

 

 

21181

 

 

 

 

이건 역시나 잊고 있다 발견한, 독일생활 초반 나랑 친하던 프랑스 아이.

잘 지낼까 혹은 나를 기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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