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묻은 삶

새로운 시도 그리고 옛 사랑

史野 2007. 1. 11. 14:25

85년 태어나서 나를 감격시켰던 내 첫 조카가 이달 말에 드디어 군에 간단다. 함께 살았기에 더 정이 들기도 했지만 갓난아기가 아주 괜찮은 인간으로 성장해가는 걸 지켜보는 것도 감동이었다.

 

어쨌든 그래서 다음 주 월요일에 한국에 간다. 썼듯이 너무 고민이었는데 그래도 그 놈도 보고싶고 신랑표현대로 가끔씩은 한국어로 수다떨며 떠도는 외로움도 풀어줘야하는 관계로 가기로 했다.

 

중요한 건 이번에는 집에서 묵지 않기로 했다는 것.

 

올케언니는 말도 안된다고 그럼 올라와서 자라는데 엄마가 아래층에서 외롭다 외롭다 주문을 외고 계시는데 집에 가서 자면서 위에서 묵는 건 아무리 나라도 못할 짓이다 정 그게 안되겠으면 언니들 집에라도 가서 묵으라는데 나야 늘 나가서 술마시고 늦게 들어오는지라 민폐를 끼칠 게 분명. 그냥 맘편하게 나와자는 게 낫다.

 

돈들어갈때도 많은데 한국까지 가서 방값을 쓰는 게 부담은 되지만 신랑말대로 여행간다고 생각하면 못할 것도 없다. 이런 의견을 내주고 전폭적으로 지지해주는 이 남자 정말 고맙다.

 

드디어 묵을 곳을 예약했고 돈까지 지불했다. 그렇다고 뭐 엄마도 안만나고 올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일주일내내 옆에서 자면서 스트레스를 안받아도 되니 이것만 해도 어디냐

 

각설하고 애까지 딸린 시누이랑 시댁에서 열흘을 지내는 사람도 없지만 이 나이에 엄마랑 일주일을 같이 자는 사람도 없다. 물론 이거야 다 떠도는 바람에 생기는 일이지만 말이다.

 

이제 새 출발을 향해 첫 발을 내딛는 거다.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면 나라도 변해야지 어쩌겠는가.

 

갑자기 이런 내가 어찌나 대견한지..^^

 

한국만 갈려고 하면 불안하고 한국에 다녀오면 우울하던 다람쥐쳇바퀴같던 것들이 이렇게 해결이 되면 좋겠다. 정말 마누라 기분 좀 좋아지라고 한국에 보내는데 오면 허구헌날 울기나 하고 못할 짓이었다. 우리 엄마는 안 변한다. 이제는 변하리란 기대도 안하기로 했다. 마음이야 아프지만 나도 살아야겠다.

 

핑계김에 요즘 계속 술독에 빠져살았는데 어제 내 남자 드디어 한마디 하더라. 뭐 그래봤자 '아이고 우리 마누라 제대로 취했군' 이지만 나는 정말 가끔보면 안 쫓겨나는게 다행인 마누라다..ㅎㅎ

 

술을 많이 마시긴 해도 술먹고 주정을 하는 스타일은 아닌데 (물론 내 생각이다..ㅎㅎ) 두 번 개판을 친 적이 있다.

 

한 번은 결혼전에 비발디에서 그 남친이랑 술을 마시고 집에가려고 일어서다 넘어졌는데 난로를 치고 넘어져서 다리에 뜨거운 물을 뒤집어 썼다는 것.

 

한겨울이었는데 바지라도 긴 걸 입던지 아님 코트라도 긴 걸 입었더라면 별 일이 없었을지 모르겠지만 미니반바지에 허리까지 오는 미니코트를 입었던 나는 쇼크로 정신까지 잃고는 응급실에 실려갔다.

 

어찌 정신이 들었는데 의사가 '뭐하는 여자야?' 허걱. 아마 그 밤중에 술이 취한데다 반바지에 빤짝거리는 스타킹을 신고 있었으니 어디 나가는 여잔줄 알았나보다..ㅎㅎ

 

재밌는 건 레지던트인지 뭔지가 ' 모르겠습니다 저기 남편이 와 있어요' 그 와중에도 내가 결혼을 했던가 내 남편이 누군지 궁금했던 기억. 알고봤더니 카페아저씨였다. 걱정이 되는데 못들어가게 하길래 자기가 남편이라고 했다나..ㅎㅎ

 

또 한 번은 도쿄와서인데 술먹고 집에 오다가 넘어져서 얼굴을 제대로 갈았다. 문제는 그 얼굴을 가지고 곧 한국에 갔다는 것. 망신살 제대로 였다.

진짜 웃겼던 건 어떻게 넘어졌는지 묘한 곳이 다쳤는데 울 신랑 누가 그걸 술먹고 넘어진줄 알겠냐고 다 내가 널 때린 줄 알거라고 어찌나 걱정을 하던지..ㅎㅎ

 

 

어쨌든 요즘 내가 옛 남친을 생각하는건 오래된 사진첩을 들춰보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남자친구가 다니는 회사가 자꾸 신문에 나기때문이기도 하다. 그녀조차 그 기사를 보고는 그 애를 생각했다는데 어찌 내가 생각을 안할 수 있겠는가.

 

살면서 남자친구가 참 많았지만 내가 아 정말 그를 사랑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세 사람(많은가? ㅎㅎ)

울 신랑 그 애 그리고 또 다른 사람. 또 다른 사람이야 연애도 제대로 해보지도 못한 짝사랑 수준이었으니 (그렇다 나도 짝사랑이란 걸 했더랬다..^^;;) 빼기로 하자.

 

아 그러고보니 짝사랑을 처음한게 아니다. 난 그 애를 처음본 중학교2학년때부터 짝사랑했다..ㅎㅎ 그 애를 진짜 좋아했는데 누구를 좋아하는 게 늘 그렇듯이 왜 좋아했는지를 모르겠다. 신랑이랑은 처음부터 이런 남자가 한국사람이라면 참 완벽한 신랑감이겠다란 생각을 했을 정도로 나랑 비슷한 점이 많았고 잘 통했는데 그 애랑은 그런 것도 없었다.그냥 보면 가슴이 뛰었다.

 

지난 번에도 시누이랑 그런 이야기를 했었는데 아마 그 애랑 결혼했더라도 지금처럼 행복하진 않았을 거라는 것. 아니 전혀 다르게 살았겠지.

썼듯이 우리는 연애를 너무 요란하게 했던 관계로 그 애는 시댁과 신랑친구들 사이에서도 유명한데 오죽하면 시누이가 한국갈때 네가 그렇게 사랑했다는 그 남자를 꼭 만나보고 싶다고 했겠는가..다른 이유로 시댁에서 유명한 애 하나 더 있다만..ㅎㅎ

 

신랑도 오래 사귄 여자친구가 있었는데(너무 너무 이쁜 여자였다..^^;;) 그녀를 만나고 와서 내게 ' 그녀를 많이 사랑했었는데 지금보니까 너랑 하는 것같은 대화도 불가능하고 자기에게 맞는 여자가 아니었다'는 편지를 보낸 적이 있다. 그런게 청춘의 사랑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그녀를 잊지는 못하기에 내가 그녀를 만나보라고 어쩌면 이제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아 물론 그녀도 울 신랑이랑 좋은 친구가 되고 싶은가는 별도지만 말이다. 내가 그녀를 만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신랑이 가끔 그녀를 만난다면 찬성이다. 그건 신랑의 추억이니까. 

 

울 신랑도 우리 셋이 만났을때 너희가 오랜시간 친구였으니까 앞으로도 좋은 친구로 남길 바란다고 했었는데 그 애랑 나랑은 친구가 되지 못했다.

 

지금이야 아들을 둘이나 낳고 잘 살고 있지만 내가 결혼하고도 육년간이나 결혼을 안하고 있을때 내 남자 내가 한국에 갈때마다 돌아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렸다..^^;;

 

실제로 결혼한지 일년 후 그 애는 이제 그만 돌아오라고 했더랬는데 내가 돌아갈거였으면 진작에 자기랑 결혼을 했지 바보냐 -_-

 

재밌었던 건 그녀와 비발디에서 만나고 있을때 그 애가 나왔는데 회사에서 '과장님 저 지금 퇴근해야겠습니다 독일에서 왔습니다!!' 했더니 그 과장님 '저런 멍청한 놈 나가봐! '하고 소리를 꽥 질렀다나..하하하 그녀랑 어찌나 웃었던지.

 

나랑 하는 짓이 똑같다는 어느 이혼녀를 사귀어서 나를 힘들게 하기도 했는데 너랑 똑같은 인간이 또 있냐고 내 친구가 다 궁금해했다..ㅎㅎ

 

이 나쁜 놈은 결혼한다면서 우리집으로 신혼여행을 오겠다고 전화를 했었는데 내 멋쟁이 신랑 대 환영이라고 침실도 내주겠다고 했다. 어쩌면 그 애가 결혼을 한다는데 너무 감동해서 오바했는지도 모르지만..ㅎㅎ

 

아는 동생이 결혼전에 그 애를 만났는데 오빠 결혼식에 언니도 오냐니까 결혼식끝나기전까지는 내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다고 했단다. 그 동생은 울 신랑도 엄청 좋아하는데 그래도 이루어지지 않은 언니오빠의 사랑을 생각하면 가슴이 너무 아프다고 했다.

 

그러고보면 그 애도 내가 자길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해 갚을만큼은 갚았다..내가 오랫동안 힘들었으니까.

 

결혼이란게 참 신기한게 울 신랑이 꼭 외국인이어서만이 아니라 남들이 그 낯선 땅에가서 어떻게 살거냐고 걱정할때 못살면 도로 오면되지 뭘 걱정이냐고, 쉽게 말했었는데 그게 아니더라. 최소한 사람들 다 모아놓고 잘살겠다고 했으니까 잘 살아야하지 하는 생각으로 애쓰게 되더라는 거다. 물론 하다하다 안되니까들 헤어지기도 하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이기 때문인지 아님 어린시절부터 우리가 공유했던 시간때문인지 난 아직도 그 애를 생각하면 아프다. 그리고 신랑은 왜 사랑하는 지를 백가지 이유도 댈 수 있는데 그 애는 왜 사랑했는지를 아직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더 아팠던 사랑. 어쩌면 나는 이 애를 영혼의 반쪽이라고 생각한 건 아닐까.

 

그 애가 첫 아이를 낳았을때 잠깐 만나 차를 마셨는데 구석자리에 앉아 기다리던 그 애에게 걸어가면서 가슴이 뛰던 생각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이젠 감정이 사그라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니.

 

그 후로는 본 적도 없고 지금은 거의 생각하고 살지도 않지만 가끔 이렇게 생각이 날때면 궁금해진다.

 

난 지금도 그 애를 보면 가슴이 뛸까 혹은 그 애는 아직도 나를 생각할까. 뭐 그런 쓰잘데기없는 궁금증

 

그러고보니 울 신랑도 그 여자친구를 만나면 가슴이 뛸까도 궁금해지네..^^

 

노파심에 또 강조하자면 난 지금 행복하고 내 남자보다 나를 잘 이해하는 사람이 있을거라곤 믿지 않는다.

 

우리처럼 각자의 영역을 존중해주고 친구같은 부부.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쳐 처음만났을때보다 둘 다 더 괜찮은 인간이 되었다고 상대를 열나게 칭찬하는 그런 관계는 어느 다른 사람과도 만들진 못했을 거다 

 

어찌보면 사람이란 가슴에 사랑하나 쯤 묻어두고 사는 건지도 모르겠다.

 

 

 

 

2007.01.11 Tokyo에서 사야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몇 분 계시던데 넵 한국에 갑니다. 15일에 갔다가 21일에 돌아옵니다.

 

번개라도 했으면 좋겠지만 왔다갔다 빼면 오일밖에 없는데다 군대가는 놈 밥도 사줘야하고 이번에 대학붙은 놈 옷도 사줘야하고(민들레님의 따님이 이번에 대학갑니다..^^) 엄마도 봐야하고 언니들도 봐야하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녀를 만나야하는지라 시간이 없네요. 앗 고기공놈도 봐야죠.

 

아 그러고보니 장애아이를 키운다는 친구도 이년넘게 못봤네요. 참 사람노릇 못하고 삽니다. 변명을 하자면 애쓰는 친구를 보면 자꾸 눈물이 나서..ㅜㅜ 비겁하죠.

 

어쨌든 자꾸 비싸게 굴어서 죄송합니다만 그냥 조용히 다녀오겠습니다. 지금생각으로는 유월에 제 생일을 한국가서 할 예정이니 그때 뵙지요.( 아 물론 신랑 휴가가 맞아야합니다만)

 

그리고 제가 요즘 불안한 상태다보니 자꾸 주절거리는데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원래 수다쟁이지만 요즘은 수다가 늘었네요. 이래서 가끔씩 한국에 가줘야 하는건데 작년에 한번 밖에 안갔더니 이런 후유증이 생깁니다..ㅎㅎㅎ

 

아 이러니 저러니해도 한국에 간다니 부담보다는 보고싶은 사람들도 많고 가슴이 설레입니다. 오랫만에 기른 머리 빠글빠끌 파마도 하고 싶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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