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묻은 삶

고마운 신랑

史野 2006. 9. 7. 23:16

여기 글을 읽는 사람중엔 내 남자 팬이 많은 관계로 칭찬을 하기가 좀 그렇다만 (고마운 거랑 남편으로 괜찮은 남자인가는 전혀 다른 문제이므로 기대치가 높을까봐..-_-)

 

어쨌든 고마운 건 고마운 거니까 또 주절거려야겠다.

 

나는 진짜 이 남자에게 남편으로서가 아닌 인간으로 평생을 갚아도 못 갚을 고마운 면이 있지만 그건 나중에 이야기 하기로 하고..^^;;

 

 

지금 중요한 건 결국 시댁에 가기로 했다는 것

 

지금 계획으로는 18일에 갈 예정. 몇 일 안남았는데 왜 아직도 계획이냐면 이 비행기표를 회사에서 주는 고향방문표를 쓸려고 하는데 그 일 담당이 내 남자고 지금 그는 그런 일에 신경을 쓸 수 없을 만큼 바쁘다..-_-

 

어쨌든 여행에서 돌아온 바로 그 날 아버님이 무진장 아프시다는 통화를 한 후, 아니 여행 전부터 아프신 건 알았으니까 신랑이랑 내가 독일에 가는 문제에 대해 이야길 했더랬다.

 

신랑이야 자기 부모를 뵈러 내가 가겠다는데 안 좋아할리 만무고 가는 김에 열흘 정도 독일에 머물고 한 삼박사일 정도 다른 유럽도시를 들렸다 오겠다니 그것도 좋은 생각이라고 감동해서 난리도 아니었다.

 

그런데 상황이 너무 안 좋다보니 어머님은 큰 일(?)이 터지면 와도 늦지 않는다는 거였고 우리로서야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우리에게 걱정이 된건 아버님도 아버님이지만 그 연세에 자식도 옆에 없이 아버님을 돌보시는 어머님.

 

그래서 혹 내가 가는게 어머님께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 것.

 

구구절절한 그 사이의 이야기는 빼고 어찌 되었든 잠시나마 어머님이 혼자 여행을 하시는 걸로 하고 나랑 시누이가 시댁에서 아버님을 돌보는 걸로 어머님과 합의를 봤다.

 

그래 내가 먼저 가서 아버님약이며 그런 걸 어머님으로 부터 전수(?)받고 시누이가 오면 어머님이 여행을 떠나시고 어쩌고..

 

문제는 그 총시간을 따져보니 열흘이 아니라 이주 정도가 되는 거다. 아무리 내 남자가 마누라없이 잘 살아도 내가 또 그 후 잠시라도 여행을 하기엔 좀 거시기한 시간.

 

거기다 어머님은 나도 힘들테니 어머님 여행에서 돌아오시면 시누이가 있는 베를린이나 마리아네(그때 이야기했던 내가 좋아하는 시이모님)가 있는 뮌휀이나 다녀오라시는 거다.

 

위에 얘기했듯이 나는 어차피 포르투칼 리스본이나 뭐 그런 곳을 갈 생각이었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니 착한(?) 나는 잠시 당황.

 

안다. 둘 다 나를 너무 좋아하고 내가 오면 무지 좋아하리란걸.

 

그렇지만 나같이 늘 혼자 지내는 애가 이주간이나 시댁에 머물다 또(!) 시댁식구들이랑 지내는 게 뭐가 좋겠냐.

 

거기다 내가 독일에 간다는 건 시부모님 옆에서 그냥 재롱이나 떨고 오겠다는 거였는데(그래 나 철없다..-_-) 어머님이 없으시고 거기다 시누이랑 아이까지 온다면 내 스트레스 이빠이는 안봐도 비디오.

 

그래 시어머님이랑 통화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신랑에게 투정하는데 신랑이 듣다가  그런다.

 

'내게 가장 중요한 건 말이지. 네가 뭘 원하는 가야. 그러니 네가 하고 싶은 데로 했으면 좋겠다.'

 

알다시피 나야 내가 진짜 원하면 누가 뭐라고 하건 하는 스타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상황도 안좋은데 그 말이 어찌나 고맙던지.

 

물론 내 남자가 절대 그럴 스타일은 아니지만 막말로 나는 이렇게 먹고 살려고 죽어라 발버둥치는데 니가 며느리가 되어서 내 부모 챙기러 가며 놀러갈 생각이나 할 수가 있냐 뭐 이럴 수가 있는 거 아니냔 말이다.

 

그랬담 나란 인간은 치사하게 내가 니 부모 챙기러 결혼했냐 뭐 이런 말을 하면서 싸웠을 수도 있는데 내 품위를(?) 지켜주니 고맙지 않을 수 있겠는가.

 

 

위에 썼듯이 신랑이가 너무 바빠서 아직 비행기표를 못 산 관계로 내가 원하는 날 갈 지 안 갈지 모른다.

 

방금 신랑은 오늘도 바빠서 아직 비행기표 예약을 할 시간이 없었는데다 지금도 못 들어온다고 전화를 했고, 

 

어찌되었던 기다리는 시부모님께 그래도 그 날 갈 계획이니 걱정마시라고 통화를 하며 예정보다 일찍 시댁을 떠나 잠시나마 여행을 하겠다는 말씀도 드렸더니 어머님도 너무 좋아하시는 거다. 그러시면서 니가 여기 오는 것만으로도 너무 고맙다고..

 

그건 신랑이 내게 한 말이기도 한데..ㅜㅜ

 

참 그 아들에 그 어머니 아니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다.

 

그러니까 사실은 내가 시부모를 잘 챙기는 착한 애가 아니라 나를 착하게 만드는 건 그들이다.

 

가끔은 정말

 

나같이 승질 드러운 애가 빛이 나도록 온 몸으로 지원해주는 그들이 눈물겹도록 고맙다.

 

 

 

그리고 특히나 우리가 함께 한 그 오랜 세월이면 아무때나 감동하고 울기도 잘 우는 내 성격에 익숙해지고 걔는 원래 그러려니 할 만도 하건만

 

내가 자기 부모 생각하는 걸 늘 고마와하고 ( 물론 그걸 알면 자기가 알아서 챙기지 하며 나를 자주 열받게 하지만)

 

내가 뭘 하던 무슨 생각을 하던 그걸 절대 자기 잣대로 재지 않는 신랑,

 

내가 당신부모에게 진 빚이 많아 더 잘해드리고 싶다고 하면 단 한 번도 우리 엄마아빠가 니가 그럴만큼 했지 라는 말을 하지 않는 이 남자

 

그럴때마다 그저 매 번 눈이 붉어지는 이 남자가.

 

 

 

가끔

 

너무

 

고맙다.

 

 

  

 

 

 

 

 

 

2006.09.07 Tokyo에서... 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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