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묻은 삶

어쩌면 산다는 건 사기다

史野 2006. 10. 9. 14:08

그가 그의 남은 시간과 싸우는 걸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길래 그렇게 고통스러운 마지막을 보내야하는 건지..

 

독일인으로 태어난게 뭐가 그렇게 큰 죄라서 그 원죄에 그리 고통을 받아야하는 건지..

 

그도 그저 한 평범한 인간으로 그저 삶을 성실하게 남에게 피해 안주려 노력하며 순간순간 최선을 다했건만 그런 그가 이 세상을 떠나가는 모습이 너무나 처절해서 그저 눈물이 났다.

 

아직은 아니라지만, 이젠 회복할 가능성은 전혀 없는, 그저 남은 날들이 덜 고통스럽고 덜 아프고 맑은 정신을 유지하는 시간이 조금만 길 기를 바랄 수 밖에 없는 그런 상황.

 

 

그 건장했던 체격이 이제 뼈에 간신히 가죽만 걸쳐져 있는 처참한 모습인데도 의사는 단백질이 육십프로가 없어져야 마지막이라니 도대체 인간의 목숨이 얼마나 질긴건지, 혹은 얼마나 더 처참해져야 생을 마감하게 되는 건지..

 

육체적 고통만으로도 힘들텐데 이제 몰핀도 큰 효과를 보지 못하는데 그는 자주 과거속에서 헤매며 아팠던 기억의 파편들을 곱씹느라 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희망을 품었더랬는데 이젠 정말 그가 조금만 더 편안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기만을 한동안 찾아본 적이 없는 내 오래된 신께 간절히 빌었다.

 

낮에는 고통에, 혹은 약에 취해 내가 있는 지 없는 지도 모르지만 저녁이 되면 조금씩 정신을 차리고 목소리마저 소멸되어가는 건가 싶은 그런 안타까운 음성으로 하나씩 하나씩 대답을 하던 그.

 

앙상하고 차갑기까지한 그의 손을 잡고는 당신을 그대로 닮아서 당신아들이 유머있고 성실하고 공정하고 의로운 사람이 되었노라고 이야기를 할때면 이제 반은 이 세상을 떠나버린 그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그리고 그랬다. 너희부부가 죽는 날까지 서로 의지하고 잘 지냈으면 좋겠다고..어쩌면 그건 그가 내게 남기는 유언일지도..

 

쉽게 단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싸우기는 해도 이제 서로를 정말 많이 이해하는 그런 부부라고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고 그렇게 대답했는데 이건 내가 그에게 지켜야할 마지막 약속일까.

 

도저히 불안해서 신랑을 급히 불렀는데 그는 또 그 아들내미를 잡고 그랬단다. 사야는 성격도 좋고 속도 깊고 참 대단한 아이라고. 그런 아이가 네 곁에서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이것 역시 그가 내게 남긴 마지막 배려였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모습이 너무나 처참하고 고통스러워 보여 차마 사진에 담을 생각을 못했었다.

 

 

그래 이렇게 날좋은 날 잠시 정원에 앉아 있던 그의 뒷모습을 찍었는데..

 

 

그래도 그의 모습을 기억해야할 것 같아 그나마 이야기를 붙일 수 있었던 시간.

 

 

오래는 아니어도 잠시나마 신문을 읽으시던 순간. 신문만 보신다고 해도 어머님 눈물이 글썽하셨더랬는데..

 

 

그리고 이건 아들이 오자 반짝 좋아지셔서 그래도 사람들과 이야기도 하시던 때. 오른쪽은 신랑의 대모이자 어머님의 막내동생이신 이모님이다.

 

그는 혈전증때문에 지난 목요일밤에 병원에 실려갔고 지금 병원에 있다. 생명이 위독한 상태까지는 아니라지만 어떤 조치를 취하기도 힘들만큼 몸이 너무나 허약한 상태. 거기다 내가 있는 동안 세 번이나 왕진을 왔던 의사는 조금은 더 사시겠지만 이 상태에서 감기라도 걸리시면 회복불가능이라는 말을 너무나 쉽게 냉정하게 했더랬다.

 

그래 어머님도 연세가 있으시고 아주 건강하신게 아닌데 호스피스에 모시는게 가장 바람직하다는 말도..

 

어쨌든 너무나 바쁜 신랑을 독일까지 부르는 것도 내겐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는데 그래도 그가 아직 정신을 놓치 않았을때 아들을 보고 기뻐하고 몇 마디라도 나눌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었다.

 

이젠 정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고 그나마 의사와 상의한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인위적으로 생명을 연장하는 것같은 건 하지 않겠다는 것. 그건 결코 그가 원하는 일이 아닐거라는 것에 가족모두 동의했다.

 

아직은 정말 그가 얼마나 더 우리곁에 머물지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얼마나 더 맑은 정신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희망은 버렸지만 그래도 남은 날들을 집에서 덜 고통받으며 지내주기만을 간절히 바랄뿐이다. 이 상태로 일년이고 이년이고 가는 건 그에게 너무나 비인간적인 거라고 그 고통이 빨리 지나갔으면 한다는 시누이이야기에 물론 동의하긴 하지만 그래도 가능하다면, 그 고통을 견딜 수있다면, 조금만 더 오래 우리 곁에 그리고 어머니곁에 계셔주기도 간절히 바란다.

 

 

 

 

 

2006.10.09 Tokyo에서...사야.

 

 

이렇게 삼주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병원에 입원하시지만 않았으면 더 있을 생각이었는데 당장 시누이도 온데다가 잠도 제대로 못자고 삼주간도 여러가지로 너무 힘들었던 관계로 그냥 왔네요.

 

가까이 살며 자주 가보는 것만으로도 두 분께는 큰 힘이 될텐데 저희도 그렇고 시누이도 그렇고 멀리 살다보니 자식노릇도 제대로 못합니다. 지금보다 훨씬 나은 대우를 받으셔야 할만큼 자식들에게 충분히 하셨는데 참 애절하고 쓸쓸한 말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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