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묻은 삶

우울해서 목이 조이는 것 같다

史野 2006. 10. 12. 14:29

어제 다른 일도 좀 있고 너무나 우울해서 술을 마시다가 결국은 퇴근한 신랑앞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고 말았는데 여전히 속이 답답하다.

 

병원에 입원하신 아버님은 원래 오늘이나 내일 퇴원을 하셔야 하는데 그제 밤에 전화를 해보니 암이 여기 저기 전이가 되어 폐까지 갔다는 거다. 오락가락 하시는 상태도 전혀 나아지시지 않고 말이다. 병원에서도 밤에 일어나셔서 왔다 갔다 하신다는데 당장 집으로 모실 수도 없는 상황인가보다. 거기다 시누이는 오늘 간다고하고..ㅜㅜ

 

병문안을 왔던 아버님 직장 후임은 그런 아버님에  너무나 당황을 해서 금방 가버렸다나. 아버님이 얼마나 좋아하시던 사람인데..ㅜㅜ 하긴 우리도 인사드리러 갔을때 너무나 황당했는데 남이야 오죽했겠는가. 두 시간동안 제대로 하신 말씀은 내일 기차(?) 몇 시에 타니가 전부다.

 

우리가 독일을 떠나기전 의사는 당장 생명이 위독하신 건 아니라고 했는데 막상 정밀검사를 해보니 이젠 장담할때가 아니란다.

 

기가막히고 한심한건 나란 인간인데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돌아가셔서 독일로 당장 또 가야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부터 들더라는 거다. 좀만 더 쉬고 싶다고..ㅜㅜ 이렇게 이기적인 애가 다 있나 싶은게 정말 나한테 너무 실망이 되어 눈물이 다 나더라.

 

그리고 신랑이나 나나 이번에 가서 사실 아버님과의 이별을 하고 오긴 했기에 마음의 준비는 그래도 되어 있는 편인데 막상 일이 코앞에 닥칠지도 모른다니 어머님 어떻하나 싶은게 아버님보다 어머님이 더 걱정이 되는 거다.

 

아 정말 황당한 우리 어머니 내가 독일에 가자 마자 아버님께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살 계획이냐고 했더니 누가 먼저 죽을 줄 어떻게 아냐고 하시는거다..ㅜㅜ

 

물론 지금이야 악화되셨으니 그렇게 생각하고 계시지야 않겠지만 어쨌든 어떻게 그렇게 아무 생각이 없으신건지.

 

그래 내가 시누이도 올 겨울에 다시 뮌헨으로 이사를 가고 마리아네도 뮌헨에 사니까 어머님도 뮌헨에 가서 사시는게 어떻겠냐니까 (우리 어머님 뮌헨에서 태어나 소녀때까지 사시기도 했다) 마리아네때문이라면 모르지만 시누이때문에 절대 안된다나.

 

주말마다 늙은 어미 걱정이나 하고 있으면 어떻하냐면서. 아니 늙으막에 자식에게 의지하는게 뭐가 나쁘단 말인가.

거기서 멈추셨으면 또 덜 열을 받았을텐데 당신은 우리 옆에서 살고 싶으시다는 거다. 순간 아니 아들내미랑 며느리가 걱정하는 건 괜찮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아시다시피 우리시부모님들 자식사랑이야 유별나고 시누이 걱정도 유별나긴 하지만 정말 우리 어머님 왜 그러시는 지를 모르겠다. 옛날에도 우리랑은 휴가를 가기도 하고 또 가고 싶다고 말씀은 하시면서 걔 불편할거라고 시누이랑 여행할 생각은 아예 엄두도 못내셨다.

 

그래서 오래전이긴 해도 시어머니랑 대판 싸운 적이 있는데(싸웠다고 뭐 소리지르고 싸웠다는 건 아니고)

 

내가 시댁에서 몇 달 살 때 우리야 가면 지하방에서 묵지만 몇 달을 지하방에서 묵을 수는 없으니까(거기다 티비도 그 방 밖에 없다) 예전 시누이방에서 묵었다. 크리스마스가 되어 더블린에 있던 신랑도 오고 시누이도 오니까 나는 다시 아래서 신랑이랑 그동안 묵을 생각이었는데 내가 신랑 데리러 간 사이에 세상에 우리 어머님 그 방에 있는 내 짐을 다 치우고 시누이가 살던 때랑 똑같이 다시 만들어 놓으신거다. 신랑가면 다시 그 방에 묵을건데 그러니 어찌 내가 열을 받지 않을 수가 있겠냐고.

 

그때가 우리 시누이가 집떠나 산지 십년도 넘었을 때다.

 

내가 이번에도 독일에 가서 생각해보니 우리 시부모님이 자식이 하나도 아니고 둘인데다 그 하나는 독일에 있는데 왜 나는 맨날 시부모님께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당장 가야한다고 생각을 하는지 이해가 안가더라는거다. 근데 이게 다 알게 모르게 시어머니 영향을 받은 이유다..-_- 

 

나를 편하게 생각하시는 건 고맙지만 아버님 아프시니 이모들이며 다 손을 내밀었는데 우리 어머님 말씀이 당신이 도움이 필요하면 손을 내밀 사람은 나 하나라고 하셨다나.

 

어쨌든 이번에도 지하방에 있으니 샤워시설이야 지하에도 있지만 화장실이 없다보니 삼주간이나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그래 오죽하면 내가 여기서는 안되고 뮌스터에 호텔하나 잡고 한달이건 두 달이건 아버님 간호를 내가 할까 신랑에게 물었겠는가.

 

각설하고 나야 뭐 섭섭한건 왠만하면 말해 풀고 꽁하고 있는 성격은 아니고 또 어머님 마음을 이해못하는 것도 아니니 자꾸 이 상황이 죄송스럽고 뭔가 크게 잘못한거 같고 그렇다.

 

그래 어제도 신랑을 붙잡고 그러게 내가 이번에 독일로 돌아가자고 하지 않았냐고 따졌다는거 아닌가.

 

어제도 이 남자는 인사부에서 룩셈부르크에 자리가 있다고 했다는데 자긴 도쿄 이년 연장을 한다고 거절했단다. (진짜 그러고보니 우리 비자연장하러 어제 여권도 맡겼는데 갑자기는 독일도 못간다..ㅜㅜ)

 

울 시어머님 영국으로만 와도 좋겠다고 하시는데 룩셈부르크는 시댁에서 차로 네 다섯시간밖에 안걸린다.

 

내가 룩셈부르크에 살고 싶은지 아닌지는 차치하고라도 그 얘기를 듣는데 당장 그리로 가면 좋겠다 싶으니 나도 참 병이다.

 

문제는 신랑은 지금 독일이건 유럽이건 돌아갈 생각이 없다는거고 어머님은 곧 혼자 남게 되시리라는 것.

 

당신은 정원도 있고 정든 집이니까 그냥 그 집에 사시고 싶다는데 이웃들이야 좋지만 우리 어머님 연세도 있고 그나마 제일 가까이 사는 막내이모집도 차로 네 시간이나 걸린다는 것.

 

뭐 그래도 운전하고 오시긴하지만 막내이모도 육십중반인데 그리 만만한 거리는 아니다. 어머님 혼자 그 길을 운전해 가신다는 건 말도 안되고..

 

신랑이야 ㅇㅇ부인도 그 큰집에서(그 집은 정원도 배다) 혼자 사시는데 뭐가 걱정이냐지만 그 분이야 어머님 보다 어리신데다 남편되시는 분이 오십대 후반에 돌아가셨는데 그때부터 혼자사신거랑 칠십중반의 어머님이 혼자 사시기 시작하는 거랑 같냐? 거기다 그 집은 애들 셋에 손주도 다섯인데 다 근처에 산다..ㅜㅜ

 

이번에 시이모도 은근슬쩍 우리가 시댁을 물려받으면 어떻겠냐고 하시는데 정말 그럴때마다 난 꼭 죄지은 사람처럼 몸둘바를 모르겠다.

 

지금상황으로 가장 바람직한건 시어머님이 시누이 곁으로 가시는건데..

 

일년뒤부터는 시누이가 일을 할거니까 물론 애보는 사람은 구할거지만 가끔 손자랑 놀러도 다니시고 이모님이랑 산책도 하고 그러면 얼마나 좋겠는가. 거기다 뮌헨에서 한시간 거리에 막내이모 딸내미가 살아서 막내이모도 뮌헨쪽으로는 자주 움직이시고 말이다.

 

내가 신랑에게 뭐라고 하긴해도 독일로 무조건 가자고 마구 우길 수는 없는 게 우리는 자식도 없는데 늙으면 간호며 뭐며 다 돈으로 해결을 해야하니 물려받을 재산이 많은 것도 아니고 젊을 때 한푼이라도 더 벌어야하는게 우리 상황이다.

 

이번에도 절실히 느낀거지만 밤에 간병인을 쓰는게 너무너무 비싸서 어머님이 여태 그 고생을 하신건데 늙어서 아프고 돈없으면 정말 암담하다는 현실.

 

아 참 이것도 너무 깨는데 울 어머님 모아놓은 돈도 별로 없는데 너희 물려줄 돈을 자꾸 쓰게 된다고 하시는데 기절하는 줄 알았다. 그래 우리 돈 필요없다고 시누이앞에 놓고 너는 돈 필요하냐고? 우리 다 필요없으니 제발 좀 그러시지말라고 짜증을 냈다. 이럴땐 자식에게 받을 수도 있는거라고 말이다.

 

자식에게 너무 바라는 부모도 문제지만 또 너무 피해안줄려고 저러시는 것도 이런 상황에선 힘들다.

 

신랑말대로 이젠 어머님이 시누이에게 기대시는 걸 배우셔야 하지만 칠십평생을 그렇게 살아오신 분이 그게 쉬울지도 암담하고 편한 아들내미랑 며느리는 지구를 삼분의 일바퀴는 돌아야 되는 곳에 사니 어찌 속이 답답하고 우울하지 않을 수가 있겠냐고.

 

뒤셀도르프에서 하는 카라밧지오 전시회가 너무 가고 싶지만 크리스마스때까지 하니 그때나 가야겠다고 했더니 너랑 전시회가서 네가 해주는 설명들으며 그렇게 살고 싶다고 말씀하시던 어머님 얼굴이 자꾸 떠오른다.

 

 

 

 

 

2006.10.12 Tokyo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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