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시누이는 11월 13일에 도쿄에 와서 이주정도 머물 예정이었다. 벌써 몇달 전에 비행기표도 다 사고 내가 독일갔을 때도 그 기대로 난리가 아니었는데 당근 아니 당근인지 아닌지 모르겠다만 아버님때문에 결국 여행을 포기하겠단 전화를 했다.
이건 우리때문에 일부러 오는 것도 아니고 시누이 남친이 비지니스여행같은 걸 오게 되어, 우리가 도쿄에 사니 시누이도 여행을 계획한거고 얼마나 기대한 줄 알기에 마음이 좀 아프지만 어쩌겠냐 나도 당장 다음 달에 있을 음악회표도 예약 못하는 상황인걸.(나야 뭐 신랑때문이라도 늘 그런 인생이긴 하다만)
어쨌든 안온다니 나는 사실 안심이 된다..^^;;
나도 독일가기 전까지는 시누이의 방문을 기대했더랬는데 막상 독일가서 애 데리고 팔 일을 있어보니 그게 장난이 아닌거다. 거긴 정원도 있고 집도 넓은 데도 그러니 이 좁은 아파트에서 어떻게 지지고 볶나 하는 생각에 암담하더라는 것.
거기다 먹는 것들도 어찌나 요란스러운지. 내가 요즘 오는 손님들에게 스트레스를 거의 안받는 게 잘해주자란 맘을 버렸고 그냥 대충 챙겨주는 이유인데 안 먹는 게 많은 사람들은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지 않은가.
이 꼬맹이 놈이 가장 강적인데 하긴 애비는 이야기했듯이 고기생선도 모잘라 버섯종류도 안 먹고 에미는 그나마 생선은 먹지만 부모가 그런 상황에서 무난한 식습관을 갖기란 하늘의 별따기다..ㅎㅎ
채식주의자들은 자기들이야 아니라고 우기지만 남들에게 엄청 스트레스를 주니 결국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고 사는 거다..-_-
안온다니 기분이 좋아서는 아니고..ㅎㅎ 조카놈 자랑을 좀 해야겠는데 나야 애를 싫어하니 내게 구박을 받지 사실은 이야기했듯이 무지 귀엽다.
특히 귀여운 이유는 말을 잘하기 때문인데, leider를 너무 잘쓴다. (이건 한국말로 하자면 안타깝게도, 유감스럽게도 그런 뜻이다. 한국말로는 엄청 대단해 보이지만 이런! 이렇게 해석하면 무리가 없을 때가 많다.)
토마토를 안 먹는데, '나는 토마토가 싫어. 토마토는 시다.'(아직 접속사는 못한다) 그러더니 'leider' 를 붙이는 거다. 처음 들었을 때 웃겨서 뒤로 넘어가는 줄 알았다..ㅎㅎ
어쨌든 하루종일 '이런(leider) 비둘기가 가버렸구나 비둘기는 다시 올거야', '이런 할머니가 가버렸구나 할머니는 다시 올거야'. '이런 자동차가 망가졌구나 고쳐야지' 뭐 이러고 돌아다닌다..^^
거기다 할아버지를 무지 좋아하는데 할아버지가 워낙 아프시다보니 자기랑 놀아주는 건 꿈도 못 꾸신다. 그래도 할아버지를 볼때마다 '할아버지가 다시 왔다 할아버지 안녕?' 하고 아주 반갑게 인사를 하는데 아버님 많이 아프실때는 당신께는 그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놈을 왕무시하시고 그냥 지나가신다는 것.
그래도 이 놈은 눈하나 깜짝 안하고 역시 웃는 얼굴로, '이런 할아버지가 가버렸구나 할아버지는 다시 올거야' ..ㅎㅎ
하도 웃겨서 너는 Leidermann(해석하자면 유감스럽게도 남자지만..-_-)이라고 했더니 또 자긴 Leidermann이라고 따라다니는 아이
울 시어머니가 전에 걔를 몇 일 돌봐주시며, '저기 해가 지는 곳에 알브레이트가(울 신랑이다) 살고 있단다', 고 하셨단다. 그 이후로는 그 안되는 발음으로(울 신랑 이름 발음하기 무지 어렵다..ㅎㅎ) 우리가 '유스투스(얘 이름도 어려워서 아직 자기 이름 발음 잘 못한다..^^;;) 해가 어디로 지지?' 그러면 '알%%%' '해가 어디서 뜨지?' '알%%% '
그걸 이렇게 이쁘게 웃으면서 말하는데 진짜 귀엽다..^^
똑똑하기는 또 무지 똑똑해서 소유권이 분명한데 내가 아버님이 자주 앉으시는 의자에 앉아있으면 할아버지를 외치고 내 볼펜은 엄마거라나. 그래 이 볼펜은 내거라고 말해줬더니 내가 읽던 엄청 무거운 책이랑 그 볼펜을 낑낑대며 나한테 갖다준다. 거기서 멈추면 좋으련만 내 담배갑과 라이타까지 따라다니며 무조건 나를 갖다주니 어찌 웃음이 안나겠는가.
이렇게 구구절절 귀여운 점을 말하는 건 강조하듯이(!) 안온다고 하니 좋아서가 아니고..ㅎㅎ 오늘 그 놈 두돌이 되는 날이다.
Leidermann! 계속 건강하고 행복한 아이로 자라거라...^^
아 생일이야기하니 또 왕 황당사건!
울 시누이 애 옷사러 나간다길래 내가 생일날 도쿄에서 뭘 보내기도 힘들고 하니 이 돈으로 뭐 바지라도 하나 사라고 하면서 오십유로를 줬다. 오십유로면 한국돈으로 대충 육만원. 아 이 왠수가 생일선물이라는데 그냥 비싼 바지라도 하나 사올것이지 반은 남겨와서는 도로 돌려주는 거다..ㅜㅜ 이 우리 시댁식구들의 특이함을 어디다 하소연 하겠냐고??? ㅎㅎ
각설하고 월요일에 아버님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셨고 어제 전화에 어머님말씀이 많이 좋아지셨단다. 병원침대를 거실에 들여놓고 낮에는 거기서 지내시는데 어제는 슈피겔지도 좀 읽으시고 스프도 몇 술 뜨시고 그러셨다니 정말 다행이다.
다음 주부터는 밤에 간병인도 일주일에 세 번 오고 낮에도 몇 번 병원에서 나오기로 했다는 바람직한 소식과 시누이는 떠났지만 이달 말에는 마리아네도 다녀갈거라니 어머님도 좀 덜 힘드실테고 말이다.
마음 한 켠으로야 회복이 되시거나 그런 기적을 여전히 소망하긴 한다만 그렇게만이라도 지내주셨으면 더 바랄게 없겠고 지금으로선 집에 오셨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하다
이번 일을 겪으며 보니 정말 자식도 소용없고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건 미우나 고우나 세월을 함께 쌓아온 배우자라는 것.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우리부부 요즘 관심사는 어떻게 치매를 피하고 또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늙어가느냐다..^^;;
2006.10.18 Tokyo에서 사야
'먼지 묻은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틴. 내 시아버지 (0) | 2006.10.25 |
---|---|
우리는 평행선 (0) | 2006.10.23 |
우울해서 목이 조이는 것 같다 (0) | 2006.10.12 |
마리아네의 수채화 한 장 (0) | 2006.10.10 |
어쩌면 산다는 건 사기다 (0) | 2006.10.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