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묻은 삶

마틴. 내 시아버지

史野 2006. 10. 25. 10:27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자꾸 아버님생각을 하게 되는데 가능하면 즐거운 이야기들을 주로 생각하고 있다

 

우선 아버님때문에 걱정해주시는 분들 나 아니 우리 괜찮다. 신랑도 나도 지난 번에 가서 나름 아버님과 작별을 고하고 왔기에 마음의 준비도 하고 있는 편이고..-_-;; 신랑은 당시 무리긴 했지만 자기를 불러준걸 너무나 고마와하고 있다

 

또 집으로 오셔서 반짝 좋아지셨던 아버님은 날마다 나빠지고 계시다는 안타까운 소식.

 

울 신랑도 무지 웃기지만 울 아버님도 한 유머하시는데 가끔은 깨는 모습도 보이신다..ㅎㅎ

 

먼저 라면이야기.

 

시댁에 가면 한국음식을 안 먹는데 어쩌다 그 날 내가 라면을 먹고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쨌든 맛있는 신라면을 끓여서 김치야 없지만 부엌에서 혼자 열심히 먹고 있었는데 출현하신 아버님

 

나를 보시더니 너무나 놀래시면서

 

 '헉 너는 스프도 젓가락으로 먹는 구나!!!'

 

내가 무슨 고공줄타기 묘기라도 하는 듯한 얼굴로 바라보시는데 너무 웃겨서 먹는 거 뱉을 뻔 했다..ㅎㅎ

 

 

삼년 전 그 끔찍하단 사스를 무릅쓰고도 홍콩에 오신 시부모님(세상에 그게 겨우 삼년하고도 몇 달 전 일이라니..ㅜㅜ). 역시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별로 나가지는 않고 집에서 있는 경우가 많았다.

 

신랑이야 출근을 하고 셋이 점심을 먹은 어느 날 설거지는 어머님이 하시겠다는 걸 아버님이 굳이 하신다길래 어머님은 오수를 즐기러 나는 인터넷을 하러 사라졌다.

 

인터넷을 한참을 했는데도 부엌에서 덜그럭 거리며 안나오시는 아버님. 아 뭐 그런가보다 하고 있었는데 한 시간도 넘게 걸려서 출현하신 울 아버님

 

너무나 흐믓하고 자랑스러운 얼굴로 '사야야 내가 가스레인지를 반짝 반짝 닦아놨당'  허걱.그래 가보니 파리가 미끄러지게 빛나는 가스레인지...-_-

 

그땐 청소부를 못구했을때라 늘 대충대충만 닦아놨더랬는데..ㅜㅜ

 

마틴 너 말이지. 가스레인지를 닦아준건 고맙지만 그럼 꼭 내 가스레인지가 무지 더러웠다는 이야기로 들려 내가 민망하잖아.(이건 내 말이다)

 

당연히 더러우니까 닦았지. 그래 니가 닦을려면 힘들까봐 내가 닦은거지 (이건 울 아버님 말이다..흑흑)

 

....내가 도쿄에 와서 처음으로 한국에 갔을 때 내 남자는 내가 도쿄와서 한 번도 안닦은 후드를 반짝 반짝 닦아놨다..부전자전..ㅎㅎ 결과는? 요즘은 신랑 눈에 더러워보이기 전에 내가 미리 미리 닦아 놓는다..-_-

 

또 황당사건

 

이건 무지 오래전 이야기인데 울 어머님이 이태리어학연수가셨을 때 울 아버님이 마중을 나오셨다. 뒤셀도르프공항으로 오신지라 우리 집에 먼저 들리셨는데..

 

그 날 생전가야 안 넘어지는 내가 넘어져서 스타킹이 쭉 찢어지고 다리가 좀 긁히는 사태 발생. 무지 아끼던 스타킹이라 무진장 속상해 하는데 또 울아버님

 

사야야 그래도 스타킹이 찢어진게 다행이지 비싼 바지가 찢어졌으면 더 속상했을거 아니니 다행이라고 생각해라..(허걱)

 

마틴, 너 이 스타킹이 얼마짜린줄 알고 하는 소리야? 이십마르크(당시 만원)도 넘는 거라고..(내 말이다)

 

(입이 안다물어지시며)아니 너는 그렇게나 비싼 스타킹을 신는단 말이야?  내 마누라는 안그런데.

 

그 순간 끼어드는 내 남자

 

그런 마누라를 둔 아빠가 부러워..ㅎㅎ

 

 

또 하나 이건 뭐 이야기를 했던 것도 같고 아닌것도 같다만..^^

 

치마를 줄여달라고 가지고 간 내게 울 어머님 입혀놓고 열심히 핀을 꽂고 계셨다. 그걸 바라보시던 아버님

 

아니 그 치마 지금도 충분히 짧은 데 뭘 또 줄인단 말이냐?

 

왜 짧은 치마가 싫어? 내 남자는 짧은 치마 입은 여자가 좋다던데(당근 내 말)

 

여자는 자고로 긴 치마를 입어야 이쁘고 어쩌고..그런 치마를 안입어도 되니 내가 여자가 아닌게 얼마나 다행인지 저쩌고..(울 아버님..^^;;)

 

그때까지 핀만 열심히 꽂으며 가만히 듣고 계시던 울 어머님

 

얘 남의 남편이 뭘 좋아하는 지 까지 신경쓰고 살거 없다 너는 그냥 니 남편에게 이쁘게 보이면 돼..ㅎㅎㅎ

 

 

아버님이 처음 암수술을 받으셨을때 어머님이랑 내가 중환자실로 면회를 갔다. 당근 가운을 입고 들어가서 아버님이랑 몇 마디를 나누고는 나오는데 목소리는 잘 안나오시는 분이 손짓으로 우리를 애타게 부르신다.

 

뭔 일인가 싶어 다가갔더니.

 

그 가운 집에 가져가면 안되는 거니 꼭 벗어놓고 가야하는 거라고..ㅎㅎ

 

그 상황에서도 농담을 하시는게 너무 웃겨서 나는 뒤로 넘어갔는데 그 얘기를 들은 신랑은 아직도 그건 아빠의 진심이었다고 우긴다..-_-

 

 

이건 아버님의 아버님의 유머다.

 

울 아버님은 이란성 쌍둥이신데 또 한 살위로 누나가 한 분 계신다. 연년생이 쌍둥이보다 힘들다는데 연년생으로 셋을 키우셨을 시할머니의 고생은 안봐도 비디오. 거기다 아들을 또 둘 더 낳으셨다.

 

그래 고생하고 있는 시할머니를 찾아온 친구분이 시할머니께 넌 왜이렇게 애는 많이 낳아 고생이냐고 구박을 하셨단다.

 

그 소리를 옆에서 들은 시할아버님이 애들을 다 불러모아 일렬로 세워놓고는 마리아(친구분 이름이란다) 이 중에 누구를 뺐어야하는지 말해봐..하.하.하

 

그런데 말이다 저 이야기를 들었을땐 정말 기가막힌 반격이라고 너무나 웃었는데 지금 생각을 해보니 혹 어린 마음에 상처가 되진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아버님이 귀여우실때(?)도 많은데 압권은 작년 크리스마스였다. 놀러온 시누이친구가 간다고 해서 다들 현관문앞에 서있었는데 시누이친구가 어머님께 자식들이 다 모여서 행복하겠다고 하니 울 어머니 세 명(물론 나까지..ㅎㅎ)의 볼을 차례로 쓰다듬으며 바라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다고 하셨더랬다.

 

그때 울 아버님, 나만 빼고?? 하시는 바람에 결국 어머님의 볼쓰다듬기를 받아내셔서 우리가 얼마나 웃었던지..그때 아버님 표정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난다.

 

내가 지금 기분좋았던 것들만 생각하며 당신보내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당신도 좋았던 것들만 생각하시며 시간을 보내시고 계시길 바래본다.

 

 

 

 

 

 

 

2006.10.25 Tokyo에서 사야

 

 

 

작년 크리스마스때 마리아네가 보내준 크리스마스 과자를 목에 거시고 장난하시는 아버님. 신랑양복은 그 전전날인가 산건데 이번에 허리를 십센티도 넘게 줄였다..ㅎㅎ

 

그리고 오랫만에 도쿄타워 사진 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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