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하셨습니다.
지난 목요일에 벌써 몇일 째 물도 거부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젠 정말 끝이구나 생각했는데 정말 그러네요.
그래서 생각했지요 당신도 끝을 원하시는구나 하구요
계속 편안히 가시게 되기만을 빌었는데 진짜 편안히 숨을 거두셨답니다. 물도 안드신다는 이야길 들었을땐 신랑이랑 울었는데 막상 돌아가셨다니 실감이 안나네요.
혹시 했는데 정말 지난 번이 마지막이 되어버렸습니다.
다행히도 어머님이 혼자가 아니시고 시누이도 와있고 마리아네도 와 있답니다.
저희는 빨리가도 내일 비행기를 타야하네요. 멀리 있다는 건 이렇습니다. 목요일에 이야기를 듣고는 여권도 집에 없다는 걸 알았죠. 그래 어제 신랑에게 혹 모르니까 당장 여권을 찾아오라고 했는데 어제 안 받아왔으면 어쩔뻔 했나 아찔합니다.
아버님
단 한 번도 아버님이라고 불러본 적이 없는 아버님
그래도 당신은 늘 제게 존경하는 아버님이셨어요
아버님
꼭 좋은 곳에서 다시 태어나세요
다음 생에선 너무 힘들지 않게
화도 내시고 남에게 피해도 좀 주시고
빨간불에 길도 건너시고
맛있는 것도 죄책감없이 많이 드시고
해야할 것들이 아니라 하고 싶은 걸 하시며
그렇게 사시길 바래요.
다음에 또 건축을 전공하시면
그땐 꼭 직접 설계하신 집에서 사시구요
아버님을 만나서 참 좋았습니다.
아버님은 꼭 친정아빠같았어요.
그래서 장난을 칠 수도, 짜증을 낼 수도 있었죠.
양말을 신어라 목도리를 해라 그러실때마다 가만히 좀 놔두라고 놀렸어도
참 마음이 따뜻했습니다.
그래서 진짜 양말을 신지 않아도 허연 목으로 나가도 감기에 걸리지 않을 거 같았어요
그리고 늘 저를 자랑스러워해주시고 믿어주신 것도
감사드려요
난 네가 자랑스럽다는 말씀을 하실때마다 쑥쓰러워 그냥 웃었지만
다른 누구에게 들은 말보다 좋았답니다.
가끔은 위로해주시는 어머님보다
안 본듯 안들은 듯 아무렇지도 않게 대해주시던 아버님이 더 위로가 될때도 많았어요
정말 마지막 부탁이 되어버린 아버님 말씀
아버님 아들과 더 행복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할게요.
그리고 아버님이 그리 아끼시던 어머님께도 잘할게요.
아네테도 유스투스도 아버님이 믿고 사랑한 것만큼은 아니더라도
저희가 방패막이가 되게 노력할거구요.
앞으로도
아버님때문에 웃기도 울기도 하겠지요.
아버님과 둘이서만 갔던 음악회
아버님이 해주시던 미라콜리
담요을 들고 따라다니시고
하루종일 누워서 꼼짝도 안하던 저를
산책해야한다고 지치지도 않고 잡아끄시던 그 모습들을
우리가 나눴던 많은 이야기들을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기억할거예요
마음아프게 해드린 적도 많고
다시 가보고 싶어하셨던 한국에도 결국 모시고 가지 못했지만
아버님께 잘했던것만 좋았던 것만 기억하고 지낼래요
아버님께 아주 좋은 며느리였다고
그렇게 생각할래요
그리고 무엇보다
아버님이 늘 자랑스러워하실 수 있게
아주 괜찮은 한국인으로 남을게요
Mein lieber Martin,
ciao.
Ich hab' Dich sehr li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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