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묻은 삶

시어머님의 눈물

史野 2006. 7. 20. 16:04

오늘 시어머님이랑 통화를 했는데 어머님이 우셨다..


금방 추스리시고 웃으시긴 했지만 내내 가슴이 저려서 뭐가 손에 잡히질 않는다. 이럴때 신랑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팔월중순에 시부모님 노르웨이 여행을 시누이랑 우리가 보내드리기로 했었다.
그때 썼지만 자식이 되가지고는 용돈도 드리지 않고 생일 크리스마스 선물빼곤 뭔가 해드리는 건 처음이다.


시어머님이 늘 가고 싶어하시던 곳이라 얼마나 좋아하시던지 지금도 그 얼굴이 떠오를 정도다

 


정말 자식에게 뭘 받는 걸 상상도 못하시는 분이(우리 시부모님은 우리 집에 이주 묵고 가셔도 생활비를 내놓는 분들이시다..^^;;) 얼마나 가고 싶었던 여행이면 그러실까 싶어 가슴이 짠했고 그런 제안을 해준 시누이가 고마왔더랬는데..


출발일자가 8월 15일 그리고 겨우 일주일 그것도 패기지 여행이다.


암수술을 받으셨던 아버님은 계속 아프시고 병원에서 검사결과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는데도 벌써 일년도 넘게 힘든 나날들.


 

가실 수 있으려나 걱정은 되었지만 아버님도 가시고 싶다고 하셨다 하고 의사도 아무 문제 없다며 가시라고 추천까지 했다길래 당연히 가시려니 했다.


물론 아버님이 아프시니까 나라도 따라가야하지 않을까 생각했더랬는데 
그 여행을 위해서 내가 또 독일까지 간다는 것도 그렇고 우리도 휴가에서 14일에 돌아오는 관계로 그냥 생각만 하고 말았다


그런데 오늘 결국 여행을 안가시기로 했단다. 아버님이 못가시겠다고 하셨다나.


단지 여행을 못하는 실망감때문이 아니라  이제 어머님은 더이상은 그런 여행을 하실 수 없으리란 생각에, 삶이 끝나가는 구나 하는 생각에 순간 격해지신 거다.


어머님이 한국나이로 일흔다섯 아버님이 일흔일곱. 적은 나이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여행을 못할만큼 그렇게 많은 나이도 아니다.


그런데 앞으로 그런 여행은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셨을때 그리고 남은 건 그저 연약해지는 육체와 지루한 일상뿐이란 생각이 들때, 그게 나라면 어떤 기분이 들까

 


 

우리가 독일로 돌아가면 넷이 가자고 아버님도 나으실거고 더 재밌는 여행을 할 수 있을거라고 웃으며 전화를 끊긴 했지만 이 막막함이란..


늘 삶을 긍정적으로 보시고 왠만하면 힘든 걸 내색하지 않는 분, 육십이 넘을때까지도 양로원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시던 분인데 어머님도 이제 많이 힘드시구나 싶어 가슴이 무너져 내릴거 같다.

 


거기다 아버님은 아프셔도 아프다는 티를 절대 안내시고 암수술하는데도 웃으며 들어가신 분인데 얼마나 힘들면 매일 그렇게 아프시다고 그 편안한 여행도 못하시겠다고 하시는 걸까. 그리고 그런 낯선 아버님을 지켜봐야하는 어머님은 또 얼마나 힘이 드실까.


이런 날은 그저 옆에서 포도주나 함께 마시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앞으로 닥칠일들은 더 많고 더 힘들지도 모르는데 이런 일로 이렇게 흔들리며 마음아파하지 말고 더 강해져야할텐데 나란 인간이 늘 이 모양이다보니 더 속상하다.

 

오늘도 내가 흔들리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아 애를 썼는데 어머님은 아셨겠지. 그래서 자꾸 웃으시려고 했겠지.

 

이만 독일로 돌아가야할거 같은데 신랑은 정말 맞는 자리를 찾는게 그렇게 어려울까.


아무리 내 엄마때문에 속이 상하고 그렇게 외롭게 늙어가시는게 마음이 아프고 해도 그래도 엄마는 오빠네랑 같이 사니까 덜 걱정이 되는데.

 

 

 

아 어쨌든 문제는 나다.


더 강해져야하는데..


왜 나란 인간은 이렇게 세월이 쌓여도 심장에 각질을 가지며 쿨한 인간이 못되는 걸까.
 

다른 것 보다 심적으로라도 의지하실 수 있도록 해드리고 싶은데..


 


 


 


 


 


2006.07.19 Tokyo에서..사야

 

 

 

 

 

 

어제 밤에 쓴 글인데 안 올라가서 지금 올립니다.

 

사진은 지난 크리스마스때..

그때만해도 저렇게 시이모님이 보내주신 과자를 목에 거시고 장난치실만큼 괜찮으셨는데 이젠 정말 너무 안좋으시다네요

무엇보다 당신이 여러 상황을 못 견뎌하시나봅니다.

 

신랑은 오늘 아침 무사히 도착했구요

짧은 기간이긴 했지만 그래도 가서 꽤 많은 일을 했다니 다행입니다.

에고 여행 취소했다니 신랑도 너무 속상해 하네요

제가 간다고 했어도 아버님이 마음을 바꾸진 않으셨을거라고 위로해줘서 고맙더군요

신랑은 아버님이 정신과에 가셔서 우울증치료제같은 거를 드셔야하지 않을까 하는데 어머님이라면 모를까 아버님 성격에 그러실거 같지도 않고.

이래 저래 참 마음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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