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흔적

성적 욕망이 들끓던 도시

史野 2004. 5. 28.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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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투어 슈니츨러(1862-1931 Wien)의 꿈의 노벨레를 읽었다. 아시다시피 이 소설은 큐브릭감독의 유작이된 영화 아이즈 와이드 샷의 원작이다.
이런 소설을 원어로 읽을때만은 잠시 독일어가 고통이 아니라 기쁨이다..ㅎㅎ

큐브릭은 무대를 뉴욕으로 바꿔 현대적으로 달리 표현했지만  원작의 무대는 100년전 오스트리아 수도 빈이다.
물론 내겐 영화와 소설 둘 다 별 다섯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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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출판된 소설을 읽으며 그 당시 빈을 상상해보는건  의외로 가슴떨리는 일이었다.
(이건 무의식화된 내 욕망의 떨림이다..ㅎㅎ)

 

오래전에 빈에 일주일간 머물며 하루 시간을 내어 부다페스트까지 다녀온 적이 있다
그냥 대충이나마 오스트리아- 헝가리 대 제국이 남긴 흔적을 느끼고 싶었다고 할까?

빈은 같은 독일어권이지만 통일을 이루지 못했던 독일과는 달리 오랜시간 절대왕정 수도의 흔적이  남아있어 엄청 다른 분위기이다.

이 곳 저 곳을 걸어다니며 돌아본 도시는 아름답긴했지만 겉으로만 봐서일까 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파리에는 꼭 한 번  살아보고 싶고 정 안되면 육개월 어학연수라도 다녀오고 싶으면서 왜일까
빈도 파리못지않게 역사와 문화적 전통을 자랑하는 도시인데 말이다.

물론 가서 바라보며 침만 삼키고온 아래 훈데르트바서의 건물에 살 수 있다면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겠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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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자 슈니츨러는 그 제국이 무너져가는 때에 빈에서 태어나 세계1차대전과 제국이 공화국이 되는 걸 겪은 사람이다.

처음엔 의사라는 직업을 가졌다가 작가로 성공을 거두게되자 완전 전업하게 된다.
난 뭐 하나밖에 안 읽었지만 그 이유로 그의 소설의 주인공들은 의사가 많단다..^^

 

그 당시 빈은 말러 슈트라우스. 쉔베르크  프로이드 클림트 쉴레 코코쉬카 호프만슈탈등등 문학과 예술사에 굵직한 이름을 남긴 사람들이 모여살던 곳이었다.

1900년경 인구2백만이 되는 대도시였던 빈에는 유대인이 9퍼선트에 달했다는데 프로이드 말러 슈니츨러 다 유대인들이다.

 

빈하면 빠질 수 없는 사람이 또 아돌프히틀러다. 오스트리아인이었던 그도 역시 당시 유명하던 빈으로 가서 미술학교에 지원했다가 낙방하게 되는데 그때 바보들 왠만하면 좀 뽑아주지..
실패감으로 재산까먹어가며 빌빌대다가 똘아이가 되었으니 이 어찌 안타깝지 않을 수가 있는가
(내공이 좀 쌓이면 복거일씨의 비명을 찾아서처럼 히틀러가 빈미술학교에 합격해서 유명한 화가가된다는 전제로 소설을 쓸려고 하니 아이디어도용하지 말기 바란다..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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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고 안정적인 중산층 부부는 서로의 성적욕망에 대해 솔직하게 얘기하나 그 솔직함에 상처받고 질투하고 방황하고..
꿈과 현실을 통해 부부의 성적 정체성에 의문을 던지는 이 소설이 그의 나이 60이 넘어 쓰여졌다는게 내겐 참 신기하다.
하긴 자세한 내막이야 모르겠지만 그는 그 나이에 이혼도 했다니..^^

 

이 소설을 읽다보면 슈니츨러가 프로이드의 영향을 받았음을 쉽게 짐작해볼 수 있다

그러나 프로이드가 슈니츨러의 60세 생일에 보낸 편지에 그와 친하게 지내지 않았던 이유를 자신과 너무 닮아서 오랜시간 일부러 피한거라는  고백과 함께 슈니츨러의 타고난 정신분석학적 재능을 칭찬하는 걸 보니 또 그게 아닌가 싶기도하구..ㅎㅎ

 

지난 번 언급했던 알마도 그 시대사람이었구 그녀의 자유로운 성생활을 생각해보면 소설 속의 얘기가 결코 소설로만 끝나는 건 아니라는, 또한 그 당시 사람들이 성적욕망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행동했는지 (아 생각만 진지하게하고 행동은 쉽게 했을 수도 있지만..ㅎㅎ) 상상이 간다.

 

예술이란 돈이 없는 곳에 꽃 피기는 힘들다. 작곡한 음악을 들어주거나 그림을 사주거나 하는 사람들이 있어야하지 않겠는가?

당시 작곡하고  카페에 모여 문학에 대해 토론하고 각종 전시회를 개최하던 사람들, 주변을 서성거리던 또 한무리의 사람들..

 

교회에 바치던 작품이 아닌이상 낭만과 지적허영 퇴폐가 한 곳에 어우러지지 않을 수 없을텐데 이 소설뿐 아니라 클림트나 쉴레의 그림들을 보면 그 당시 빈이야말로 프로이드가 주장한대로 인간행동의 근원이 되는 리비도로 차고 넘치던 도시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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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stav Klimt (1862-1918), Allegorie der 'Skulptur', 1889,Wien, Österreichisches Museum für Angewandte Kunst

 

 

이럴땐 정말 타임머신이란게 있어서 그 당시 그들이 자주 모여 얘기했다는 카페들을 돌며 그들의 얘기에 귀기울이고 싶다.

뭐 그들이야 나를 아는척도 안하겠지만 슬그머니 뒷자리에 앉아 포도주 홀짝 거리며 훔쳐듣는 일이야 가능하지 않겠는가? ㅎㅎ
 

 

 

2004.05.26 東京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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