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흔적

과일가게 할아버지.

史野 2004. 4. 19.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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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에 와서 재밌는 게 있다면 오자마자 못하는 일본어로 쇼하며 헤매다가 동네가게 사람들 몇과 친해졌다는거다.

 

우리 동네는 완전 사무실촌 .왔다간 조카표현에 의하면 길거리 사람들이 다 넥타이부대.
거기다 여자들은 다 잘 차려입은 오피스걸들인데 나만 몸배바지 입고 부시시 나갈 순 없는 일 아닌가?

차마 시장갈때 화장하고 차려입고 나갈 수 없어 다 퇴근할때까지 기다렸다 어두워져야 우유한개라도 사러 나갈 수 있는 곳이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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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된 슈퍼하나 없는 이 곳이지만 구석 구석 조그마한 가게들이 몇 개있다.

그런 가게 사람들과의 소통이 이런 익명성의 대도시 중간에 가능하다니 참 좋다.

편의점총각이랑 독일술집사장님 만물상 할머니 특히 과일가게 할아버지가 압권인데 오늘 그 재밌는 할아버지 얘기를 좀 해보려고한다..^^

 

문도 없는 완전 구멍가게에 칠순도 넘어보이는 할아버지와 젊어보이는 할머니가 우리나라 몇 십년전처럼 과일과 야채를 판다.

무지 친절하시기도 하지만 그만 쉬셔야할 나이에 그 겨울 가게에서 떨고 계시는게 안쓰러워 왠만하면 그 곳에서 과일과 야채를 산다.

따뜻한 집에 있다 얇게 입고 나간 내게 하루종일 떠신 할아버지는 춥겠다고 걱정하시고..ㅜㅜ

 

과일과 샐러드가 주 저녁메뉴라 중요고객인 내게 할아버지는 참 이쁘게(?) 웃으시며 강매도 하시는데..^^

권하는거 다 사들고 와서 괴로와(?)하는 내게 울 신랑 그 할아버지 벌써 내 마누라를 다 파악했다고 어찌나 웃던지.

그리고 그게 과일이니 얼마나 다행이냐며..

그치 자기야 과일야채야 뭐 아무리 많이 먹어도 건강에 좋은 거니까 안그래?

그게 욕이건만 신나서 헤벌레 웃는 바보같은 나..-_-;;

 

얼마전 남편이랑 나가다가 골목에 나와계신 할아버지랑 부딪혔는데 너무 반가와하시는걸  그게 아니라 어디 가는 거라니까 그럼 오다가 꼭 들리란다..ㅎㅎ

들리라는데 그럼 들려야지 내가 힘있냐?ㅎㅎ 처음으로 그 가게에  들린 내 남자 내게 듣던 분위기가 재현되니 웃음 참느라 애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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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남편이 유감스럽게도 여정이 바뀌어 그렇게 고대하던 상해가 아닌 싱가폴로 출장을 갔다.

포도주 담배 도시락 사들고 와 삼박사일간 완전 집시(?) 처럼 살 계획을 세운 나.

도시락은 떨어지고 막판엔 남편식사용인 귀한(!) 마른 오징어로 떼우며 일본어선생님은 그냥 신발신고 들어오시라고 할만큼 나가지도 않고 청소도 안하고 혼자 신나게 살았다..ㅎㅎ

오는 날 방탕한(?) 흔적을 다 지워야하므로 하루종일 반짝 반짝 쓸고 닦고 난리를 쳤더니 넘 지쳐 시장은 포기...^^

 

어제 아침 운동잠시하고 또 출근한다는 남편 식사는 제대로 챙겨줘야할거 같아 부랴부랴 뛰어간 365일 무휴 유기농가게는 마침 임시휴업이고 지하철을 타기엔 옷차림이 영 아니고..ㅜㅜ

편의점에서 인공식품종류로 대충 재료를 사서 낑낑대며 오는데 울 할아버지가 저쪽에서 자전거를 타고 오시는게 보인다.

 

인사성 밝은 나..^^ 아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길가는 사람이 쳐다볼정도로 크게 인사를 했더니 알아보고 다가오신  이 할아버지 당장 하시는 말씀이 사과 필요없냔다..ㅎㅎ

필요하긴 한데요 오늘 쉬는 날 아니예요?

보통은 쉬는데 오늘 아니라고 따라오라시길래 따라가봤더니 자전거로 먼저 도착하신 할아버지 셔터올리고 계신다..하하하

덕분에 필요한거 다 사고 강매하시는 것도 다사고..^^

 

다시 셔텨내리시는 할아버지를 뒤로하고 집에 오는 길 미리 산거에 과일야채까지 무거워 죽겠는데 그래도 자꾸 웃음이 났다.

거리에서 부딪힌 내가 얼마나 반가우셨으면 맨 먼저 사과 필요하지 않냐는 말이 나오셨을까.

그래 난 사서 기쁘고 할아버진 팔아서 기쁘니 둘 다 이익이네..^^

 

할머니 안계시는 날엔 서비스도 슬쩍 넣어주시고 나만 나타나면 벌떡 일어나서 연신 권하기 바쁘신 할아버지..ㅎㅎ

계약기간3년동안 동경에서 살수 있기를 그리고 우리 떠날때까지 강매하셔도 좋으니 늘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날씨가 따뜻해져서 정말 다행이다.

 

 

 

 

2004.04.19 東京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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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웃으시면 무지 귀여우신데(?) 기습사진을 찍어서 그런지 좀 무섭게 나왔습니다..-_-;;

 

월요일이네요

 

모두 즐거운 한 주 시작하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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