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흔적

상해는 중국이 아니다.

史野 2004. 3. 24.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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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Signac. The Pine, St. Tropez (Le Pin, Saint Tropez). c. 1892-93. Oil on wood. Collection of  Otto Krebs, Holzdorf. The Hermitage, St. Petersburg, Russia.


 

남편이 혹 상해로 출장을 갈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들으니 가슴이 뛴다.
물론 내 남자는 하늘이 무너져도 출장에 마누라를 끌고 가는 남자가 아니지만 그래 이번엔 하늘 좀 무너져봐라 니 하늘이 무너지지 내 하늘이 무너지냐  이러면서 속으로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참 할 일도 없다 간다는 것도 아니고 갈 지도 모른다는 건데..ㅎㅎ)

 

어쨋거나 상해를 생각하면 참 행복하다.

우리는 상해에서 겨우 1년 10개월을 살았다. 계약기간이었던 3년을 못 채우고 떠나면서 남편이나 나나 참 속이 쓰렸다. 거기다 난 중국어가 되고 상해가 무엇보다 편해질때였으니 말이다

하긴 뭐 홍콩은 11개월도 못채웠으니 그만하면 오래산거지만 말이다..ㅎㅎ
(동경으로 오면서 남편은 여기선 6개월도 못 채우는거 아니냐하는 불길한 말을 했었다..ㅜㅜ)

 

사실 나는 중국에 살았다 혹은 중국인을 안다 라는 얘기를 하기는 좀 그렇다.

상해는 중국이 아니기때문이기도 하고  50종류가 넘는 민족이 모여 그 엄청난 땅에 흩어져살고 있는 중국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그들은 이렇다라고 얘기하는 거야말로 장님이 코끼리 만지기식이기때문이다.

 

거기다 내가 살았던 곳은 서울의 연희동과 청담동을 합해놓은 듯한 성격의 곳이었구 남편이 일하던 곳은 푸동 가장 잘나가던 곳이어서 그 두 곳을 크게 벗어난 적은 없었으니 내가 상해도 다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쨋든 그 모습도 또 다른 중국의 모습이니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중국인구중 5퍼센트만 부자라고 해도 남한 인구보다  많으니 인구많은 중국의 저력이란 정말 대단하다.

상해는 중국에서 가장 발전하고 있는 도시이자 상해사람들이 그들을 다른 중국인과 구별하려는 의지가 강한 그런 도시이다.

뭐 상해랑 북경이 라이벌이고 서로 미워한다는 얘기는 유명하고 중국처럼 국가관이 투철한 나라에서도 북경올림픽이 결정되었을때 상해사람들은 쓰린 속을 어찌못하고 있다가 엑스포결정이 나니 한숨을 돌렸다는 후담이다...^^

 

상해는 일단 멋진 건물들이 무지 많다. 어찌나 아파트나 회사들을 예술로 짓는지 정말 거리만 걸어다녀도 기분이 좋다.

그리고 상해시의 도시20퍼센트녹지화계획으로 무진장한 공원들이 눈깜짝할 사이에 생기곤 하는데 일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 모습인지 정말 궁금하다.

 

고급인력이 많고 외국회사들도 많이 진출해있다보니 월급수준도 무진장 높은 편인데 외국인회사에서 일하는 30대부부의 월급을 합하면 한국돈 수백만원이니 정말 대단한 금액이다.(참고로 엘리트 중국대졸자 초봉이 한국돈 대충 삼십만원이라고 들었다)

 

물론 그 곳도 엄청난 빈부격차가 존재하지만 인도네시아나 필리핀에서 내가 보았던 그런 비인간적인 모습은 아니다.

네가족이 벌어서 일년에 한국돈으로 겨우 20만원을 저축한다는 우리집 청소부는 나도 없는 모바일폰에 가끔은 이쁜 미니스커트나 하얀드레스(?)를 입고 나타나기도 했으니까..

그 애가 미니스커트를 입고 조심스럽게 대걸레질을 하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ㅎㅎ

 

상해얘기하면서 전에 언급한적이 있지만 술한잔에 만원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천원하는 곳도 있지만 다 갈만한 곳이다.

그러니 돈있는 사람은 있는 사람대로 없는 사람은 없는 사람대로 살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다

 

특히 상해는 여자들 파워가 세기로도 유명한 곳 한마디로 여권이 신장된 곳이다.
같이 일하고도 시장봐서 밥하는건 남편이고 일하는 애엄마들도 퇴근후 자기취미를 즐긴다.
물론 거기엔 집집마다 도움을 주는 청소부가 있는 이유가 큰데 회사운전기사도 집에 청소부가 있다고 해서  그 청소부는 또 청소부가 있을거라고 웃은 적이 있다.

 

지금은 물론 많이 바뀌었지만 특히 서양사람들에게 상해는 위험수당과 문화충격수당까지합해 파견수당이 많은 아주 매력적인 곳이다.

거기다 물가까지 싸다보니 상해집구하러갔을때 어느 독일사람파티에 초대를 받았었는데 힐튼호텔에서 파티서비스가 나와서 주장방이 즉석에서 내가 원하는대로 파스타를 만들어주더라..

내가 느낀 상해사람들의 백인숭상(?)도 엄청나다. 유럽에서 동양으로 오게되었을때 아 이제야 내가 눈에 안띄고 자기가 눈에 띄는 곳으로 간다고 너무 좋아했는데 막상 눈에 띄는 백인이 받던 친절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ㅜㅜ

 

상해가 커진건 유럽열강의 침략때였는데 그러다보니 2.30년대는 퇴폐와 자본의 온상이었구 그래서인지 공산시절과 혹독한 문화혁명을 겪어낸 곳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만큼 자유로운 분위기이다.

거리를 걷다보면 60년대 서울거리에서 봤을만한 사람들과 어느 세계적 도시에 내어놓아도 눈에 띨 멋쟁이가 공존한다.

공원에 가면 젊은 애들의 낯뜨거울정도의 애정표현, 노인들의 여유로운 춤과 노래 카드놀이 모습등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국가가 여행갈 나라의 수를 제한하기는 하지만 주5일근무정착에 휴가도 많은 그들은 해외여행도 자주한다.

물론 자본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그 곳이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하게될지는 모르겠다.

거기다 아직도 이주가 그렇게 자유롭지 못한 중국에서 외지인인 상해불법체류자의 문제도 심각하다.

우리나라의 외국인불법체류자들이 불이익을 받는 것처럼 그 곳은 외지인들이 필요할때 저임금으로 착취당하곤 추방당한다.

 

아무리 그래도 상해는 다른 중국인들에게 꿈의 도시다.
소수이긴 하지만 야당정치인들이 활동을 하는 곳이고 모두 희망을 가지고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가벼운 발걸음을 옮기는 곳이다.

물론 상해를 키우려는 중국정부의 피나는 노력의 결과이긴하지만 술에 취해 새벽 두시에 거리를 걸어도 겁나지 않는 곳...

 

그 곳  상해가 난 정말 좋다.


 

 

2004. 03.24 東京에서...사야

 

 

몇 일째 독서삼매경에 빠져 술마시는 것도 잊고 있다가(못 믿겠는 분들 있으시겠지만..ㅎㅎ) 일본어선생님 하나가 그만둔다고 해서 식사하며 오랫만에 술을 몇 잔 마셨더니 대낮부터 정신이 오락가락 합니다..^^


Paul Signac(1863-1935) 같은 점묘파를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몇 주전 인상파 전시회에 갔다가 그의 그림에 반해버렸습니다..^^

제가 반했던 그림은 찾을 수가 없네요
역시 일요일갔었던 아그네스발챠의 기차는 여덟시에 떠나네를 못 찾아서 조수미의 번역노래를 올립니다
사실 발챠의 노래는 그 노래밖에 들은 바가 없는데 역시 그 노래에 따른 그녀의 명성답게 두 번이나 그 노래를 불렀죠. 앵콜송으론 마이크없이 불러서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그녀가 부른 그리스민요들을 들으며(거의 사랑타령..ㅎㅎ) 인간의 기본적 감정은 역시 크게 다를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스는 가본적도 없고 아는 것도 사실 거의 없지만 그리스인 조르바소설과 안소니 퀸이 열연했던 영화는 뇌리 깊숙히 남아있습니다.
 언젠가 그리스 유적을 보고 그 더운 날씨를 이기기위해 그리스해변가에 누워있을 꿈을 꾸어봅니다..^^

조수미노래로는 처음 듣는데 여덟시발음이 무지 거슬려서 그녀까지 싫어질려고 하네요 제가 너무 한거겠죠? ㅎㅎ

 

 


 

 

아래를 클릭하시면 가을바람님의 칼럼이 열리고 그 곳에서 아그네스 발챠의 목소리로 기차는 여덟시에 떠나네를 들으실 수 있답니다..먼저 위의 음악을 끄시고 가셔야 동시에 듣는 걸 막을 수 있답니다..

가을바람님 감사드립니다...^^

 

아그네스 발챠의 목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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