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ul Cézanne. Still Life with Fruit. c. 1879/82. Oil on canvas. The Hermitage, St. Petersburg, Russia.
동경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힘들었던건 출입국관리창구를 통과하는 거였다
우리가 내렸을때 아마 미국발 비행기가 무더기로 도착을 했는지 가보니 수백미터의 줄에 서양인들이 줄줄이 있는거다
그렇게 사람이 많이 밀려있는데도 일본인 전용창구랑 갯수가 거의 같아 일본인들은 기다리지도 않고 통과를 하는데 우리는 한시간이 넘게 걸렸다
근데 좀 창피한 얘기지만 내가 다녀본 그 많은 공항중에서 서양인들이 그렇게 고생하고 서있는 곳을 처음 본거라서 조금은 샘통이라는 생각도 들었다..^^(아 물론 열을 무진장 받고 씩씩대고 있는 남편에게는 그 순간 그런 말을 못했지만..ㅎㅎ)
내 경험에 의하면 은행에서도 조용히 못기다리고 잘난척하며 F자를 외쳐대는 무식한 서양인들이 동양에 좀 산다..ㅜㅜ
그날 공항에서는 누구하나 입도 뻥긋 못하고 줄이 조금씩 줄어들때마다 무거워서 내려놓은 가방들만 열심히 밀고 있더라..ㅎㅎ
어쨋든 그렇게 어렵게 통과를 하고 나왔더니 우리가 묵는 호텔로 가는 버스는 다음 차가 만석이라 근 두시간을 기다려야한단다
버스비만 일인당 삼만원, 수십만원이라는 택시는 상상도 못하는 마당에 우리가 힘있나 기다려야지-_-;;;
간신히 도착한 호텔은 너무 커서 로비가 시장바닥을 연상시켰는데 이 호텔얘기를 좀 해야겠다
1890년에 문을 열었다는 제국호텔
이 호텔에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그냥 이름만 듣고 '자기야 이 호텔말이야 아무래도 일본이 제국주의로 날뛸때 한 몫 했겠다'고 했는데 정말 그렇더라
호텔방에 비치된 호텔의 역사를 읽어보니 귀빈들도 꽤 많이 다녀간데다가 특히 순종과 이방자여사의 사진이 눈에 띄었다
귀빈이라지만 식민지상황의 한 나라의 황제가(?) 그 호텔에 일본인 아내와 묵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우리가 묵었던 곳은 새로 지어진 건물이지만 예전 호텔을 그 유명한 건축가인 Frank Lloyd Wright(1867-1959)가 설계했는데 관동대지진때 그 건물은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그 당시 동경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던 공연을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는데 그 설명이 웃겼다
그나마 이 호텔때문에 그 난리상황에서도 동경의 공연문화를 지켜갈 수 있었다는 자랑스러움이 묻어나오는 글이었다
난 사회주의자였던 적도 없고 앞으로도 가능성이 없는 사람이지만 지진으로 난리도 아닌 상황에서 권력자들과 부자들은 여전히 우아하게 옷차려입고 호텔에 모여 공연을 즐기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 참 씁쓸했다
더 나아가 내가 관심있어하는 문화라는 분야가 결국은 고통스런 민중과는 동떨어지게 발전해온 산물이 아니던가 하는 생각에 착찹했던 기분...
물론 내가 그 당시 역사나 상황을 분석하며 앉아 열내려 동경에 간건 아니고 당장 집을 구해야한다는 절대사명이 있었던바 바로 그 다음 날 아침부터 정말 열심히 집을 보러 다녔다..^^
지난 번 칼럼에도 쓰고 독자란에도 수시로 올렸지만 대충 다시 정리를 해보자
상해나 홍콩은 엄청난 월세에 비해 너무나도 보통인(?) 집들을 보고는 정말 적잖은 충격을 받았었는데 이번 동경은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가서인지 담담한 기분으로 집을 둘러볼 수 있었다
내 집구하기 짠밥이 얼마냐? 이젠 정말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기만 해도 한 눈에 봐야할게 거의 다 들어온다..ㅎㅎㅎ
재밌었던건 빈 집도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하는 지라 신발벗고 집구경해본 것도 처음이지만 내 평생 하루에 그렇게 신발을 많이 벗었다 신었다 해본것도 처음이었다..^^
내가 첫 집에 신발을 신고 들어가려는데 다들 기절할려고 하더라..-_-;; 아무래도 우리도 동경에서 신발을 벗고 살아야하지 않을까 하는데 어찌될지는 모르겠다( 참고로 우리는 집에서 신발 신고 사는데 포기하기 싫을만큼 진짜 편하다..ㅎㅎ)
동양권만 비교를 해보자면 동경의 장점은 겉이 쓸데없이 화려한 집들이 거의 없었다는 것과 내가 본 아파트들은 전부 복도식이었다는 거다
어떤 집을 구하느냐는 사실 그 사람의 성격과 생활습관 심지어 가치관까지 포함이 된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떤 집을 왜 구했느냐를 쓸려면 사적인 얘기가 너무 많이 나오게 되므로 참겠다..하하
어쨋든 두 사람이지만 사적공간을 무진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리부부는 복도식 아파트를 참 좋아한다
여러가지 막막한 부분이 많지만 우리가 사는 곳은 유럽도 상해도 아닌 동경이라고 마음을 다잡아 먹고 긍정적인 면만 생각하기로 했다
장점만 나열하자면 장점도 무지 많다..흐흐흐
이번에 가서 내가 동경에 왔음을 실감한 일이 몇 가지 있는데 하나는 '반고흐와 꽃'이라는 이름의 전시회였다.
내가 또 올때까지 하는데다가 해바리기는 몇 번 원화를 보았기에 바쁘기도 하고 고민을 좀 했는데 막상 물어물어 찾아가보니 아주 괜찮은 전시회였다. 거기다 그 대여료 비싼 그림들을 세달 가까이나 전시를 하다니 그들의 재력이 부러웠다
반고흐의 해바라기그림 두 개를 중심에 두고 여러 화가들의 꽃그림을 전시한 주제전시회였는데 세잔느나 마티스등 내가 좋아하는 몇 개의 그림들까지 있어서 한참을 못나오고 허리아플때까지 서있었다
질감이며 색감이 너무 잘 살아있는 세잔느그림은 정말 너무 갖고 싶어서 살 수는 없으니 훔칠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까지 들었다..ㅜㅜ
그리고 또 하나는 지진이다
일본에 지진이 많다는 건 너무나 유명한 얘기고 이번 아파트를 구하면서도 큰 비중을 두었던 일이기도 하다.
근데 진짜로 금요일아침 남편출근후 목욕을 하고 잠시 침대에 누워있는데 갑자기 침대가 무진장 흔들리는 것이다.
어찌나 놀랬던지.. 정신을 차리곤 아 이게 그 지진이라는 거구나라고 생각하니 차라리 웃음이 나왔다
내가 지진이라는 걸 얼마나 무서워했었는데 이렇게 지진이 많은 나라에 와서 산다는 순진한(?) 생각을 하고 있는걸까 싶어서 말이다..ㅎㅎ
부동산여자가 가구보험을 들라고 해서 남편과 상의를 했는데 그런건 왜드냐길래 내가 든 예가 지진이었다
"자기야 생각해봐 가구가 지진이 나서 다 망가질지도 모르잖아"
"야 지진이 나서 가구가 망가질 정도면 우리도 벌써 죽었다 그 후 뭔 보험이 필요하냐??" (허걱 그래 잘났다..ㅜㅜ)
또 하나는 호텔로비에서도 그랬구 아침식할때도 그랬구 전시회에서도 그랬구 의외로 그 불편해 보이는 기모노를 입고 다니는 여자들이 참 많았다는 거였다
상해에서 중국 옷을 좀 구입해서 지금 즐겨입는 것처럼 일본에 가면 기모노를 하나 구입할까 생각했었는데 너무 비싸기도 하고 도저히 편하게 입고 다닐 옷은 아닌거 같아 고민을 좀 더 해봐야겠다
같이 집구하러 다니던 여자애는 자기도 기모노가 없다고 하더라..-_-;;;
난 어쨋든 전통옷 입는 것을 좋아해서 유럽에서 한복도 잘 입고 돌아다녔고 이번 일본가서도 중국옷입고 돌아다니고 그랬는데 (한국여자가 중국옷을 입고 동경을 돌아다니다 뭐 그림 좀 안되나? 하하하) 기모노입고 음악회를 가거나 그럴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가장 내가 일본에 왔다라는 걸 실감나게 한건 일장기다
지난 번 여행때는 그렇게 눈에 띄지 않았던거 같은데 이번엔 내가 살 곳이라는 생각때문이었을까 일장기를 볼때마다 자꾸 내 속에 각인된 일장기에 대한 생각으로 마음이 복잡했다
이 문제는 간단히 적고 지나갈 문제가 아니므로 나중에 동경에 살면서 더 객관적으로 한 번 쓸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2003.11.02 香港에서...사야
전시회에서 본 그림은 아니지만 제가 세잔느의 정물들을 참 좋아합니다. 색감이며 질감이며 정말 그가 오래노력한 흔적들이 절절히 느껴지는 그림들이 많죠. 참 이번 전시회를 보면서 그림을 다시 그리고 싶다 뭐 이런 강한 욕구가 오랫만에 들더군요. 아마 제가 한동안 즐겨그리던 꽃그림들을 보았기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전시회의 가장 중요한 그림이었던 고흐의 해바라기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은(?) 관계로 독립칼럼으로 올리겠습니다.
사진은 제가 마지막순간까지 고민하던 아파트의 전망입니다.전망은 넘 좋은데 거실에 식탁이랑 소파가 못들어갈거 같아 눈물을 머금고 포기했습니다.ㅎㅎ 제 디카가 인도네시아에서 요트타고 그 고생을 한 이후부터 맛이 가서 절대(!) 사진이 선명하게 안나옵니다..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