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th and Girl (Self-portrait with Walli)
1915; Osterreichisches Galerie Wien, Vienna
그녀와 통화를 했다
그녀에 대한 얘기를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할까
내가 그녀를 처음 본게 언제였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녀가 나보다 한학기를 늦게 시작했으니 아마 95년초 학부생들의 필수세미나가 아니었나 싶다
젊고 발랄한 독일학생들이 가득한 세미나실에서 둘다 주변인이었던 나와 그녀가 가까와지게 된 건 자연스러운일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1930년생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곤 불어와 영어실력 그리고 속기기술로 오랫동안 비서로 일했다고 했다
세 명의 아이들이 다 자라서 (그녀의 막내딸이 나와 동갑이다)나가고 혼자가 된 그녀는 다시 공부가 하고 싶었다고
그래서 대학입학자격을 위해 야간학교를 다녀 시험을 치루고 정식으로 대학에 입학을 한것이다
사실 서양미술사강의실에는 은퇴한 우아한 할머니 할아버지들로 넘쳐나지만 대부분은 청강생이고 그녀처럼 정식으로 등록을 하고 세미나까지 참석을 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다른 할머니들과 달리 늘 70년대 스타일 옷차림에 보석하나 달리지 않았던 수수한 모습이지만 늘 넉넉한 미소를 달고 있던 그녀
봉지에 담아온 마른 빵을 씹으며 복사물들을 뒤적이던 열정적인 태도..
우리는 죽이 맞아 강의 끝나면 밥도 같이 먹고 가끔은 어수선하기 이를때 없는 그녀의 거실에서 세상사는 얘기도 하고...
아무리 읽어도 이해가 가지 않는 논문때문에 기운빠져있는 내게 자기도 세번읽고서야 대충 이해했다고 넘 속상해하지 말라고 격려해주던 그녀..
아일랜드가서까지는 가끔씩 연락을 하고 지냈는데 우리가 갑자기 상해로 옮겨오면서 연락을 못했다
늘 궁금하긴 했지만 넘 오래되다보니 흐지부지 시간은 가고..
사실은 그녀의 나이때문에, 어쩜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불안감이 날 더 주저하게 만들었었는지도 모른다
숨을 들이마시고 용기를 내어 전화했더니 너무나 밝은 목소리의 그녀..
아픈데는 없냐고 묻는 내가 오히려 민망했다
야 너 도대체 어디 숨어있는 거냐? 살아는 있는 거니? 속사포처럼 쏟아지던 그녀의 질문들..
삼년만에 통화를 했건만 꼭 어제 통화를 했던 것만 같았다
그동안 손주가 둘이나 더 생겼다는 얘기 교수가 8년전 강의를 다시 반복하고 있다는 얘기. 학비가 생겨 부담이 된다는 얘기
그녀는 전공이었던 서양미술사가 아니고 부전공이었던 언어학으로 석사논문을 쓰고 있다고 했다
논문 진도가 안나가 괴롭다고 고민스런 목소리로 말하는 그녀의 나이 올해 일흔 넷..
그녀의 나이가 되었을때 난 어떤 모습일까?
그녀가 오랫동안 건강했으면 좋겠다
내가 다시 독일로 돌아갈때까지 그 모습으로 기다려주었으면..
그래서 함께 전시회도 가고 여전히 정신없을 그녀의 거실에서 옛날 얘기도 하고....
20030521..香港에서 사야
에곤쉴레의 그림들을 특별하게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간혹 보게되는 그의 그림들은 바라보기가 불편하거나 아님 괜시리 서글퍼지거나 그렇습니다
평탄치 않은 그의 삶때문인지 아님 그가 주장하듯이 내게도 내재된 왜곡된 성적욕망을 들킨 기분때문인지..
그와 그의 아내를 죽음으로 몰고간 스페인독감은 그 당시 몇 천 만명도 넘는 사망자를 냈다죠
30세도 안되어 요절한 천재화가라는 선입견때문일까요? 왠지 독감이 아니라 더 드라마틱한 사망요인이었을거라고 생각했다가 실망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 참 잔인하죠?
그림속의 모델은 그와 그가 결혼전까지 동거했던 5살연하의 연인 발리입니다
클림트의 모델이기도 했었다니 두 사람의 그림성향을 볼때 어지간히 섹시한 소녀가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쉴레 사진을 클릭하시면 그림과 같은 제목의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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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나이 ..무명씨
사야님의 친구분 나이가 올해 70이 넘어셨는데 아직까지 논문을 쓰고 뭔가를 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습니다..지금 전 뭘하고 있는지 ... 나의 열정은 어디로 쏙 숨어있는지... 이젠 열정을 꺼내고 싶습니다.. 몇달간의 백수생활을 청산하고 뭔가를 해야할때가 온것 같아요..
쉴러의 작품을 보니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이 떠 오르네요.. 클림트가 선배였나 그랬든것 같은데... 잘은 기억이 나진 않지만...
서양화를 공부하신 사야님 그림 많이 배울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Re:그리고 내 나이..^^
비교해보면 물리적 나이는 그녀가 많은 것 같지만 정신적 나이는 제가 더..ㅠㅠ
홍콩와서 다시 공부할까 하다가 내 나이가 얼만데 하고 그만두었거든요..^^
무명씨님
클림트영향을 많이 받은 거 맞습니다
나중엔 친구로서 지낸다죠
그림에 대해선 요즘 저도 다시 공부하고 있네요..ㅎㅎㅎ
배우는 즐거움 ..바람돌이
진중권의 '춤추는 죽음'을 읽으면서 죽음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생전 접한 일조차 없던 '마카브르'니 '바니타스'니 하는 용어를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은 즐거움입니다.
또한 내가 애쓰지 않아도 이렇게 얻게 되는 지식은 불로소득이지요.
왜 그리 죽음을 필사적으로 끌어안고 있는지 알 수가 없군요.
어느 시기에는 죽음이 아름답게 묘사되기도 하고, 어느 시기에는 난폭하게, 또는 다정하게 묘사가 되던데, 그림을 잘 모르는 저는 그저 한번 훑어보는 것으로 끝나게 됩니다.
욕심이지만 당신의 자세한 설명도 곁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당신의 친교범위가 광범위함은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수십년의 세월을 넘나드는 당신의 넓고 깊음에 새삼 찬사를 보냅니다.
그러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었구요.
오늘은 그녀가 힘이 됩니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는, 지금 시작해도 충분하다는....
Re:에곤 쉴레
에곤 쉴레(1890-1918)
안그래도 제가 어제 글올리기전 쉴레에 대해 좀 읽으며 그림에 대해 좀 말할까 하다가 어쭙잖이 아는거 얘기하느니 말자 그랬는데 오늘 어떻게 아시고 단도직입적으로 이렇게 질문을..^^
사실 그의 그림 자체에 대해서는 어떤 배경으로 그려지고 그런 자세한 바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구요
그냥 에곤 쉴레와 그 시대에 대해서 얘기를 하면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주절 주절..ㅎㅎ
말씀하신데로 쉴레가 죽음의 문제를 붙들고 있는 것과 그의 작품성향 뭐 개인에 대해서요
대충 주어들은 것에 살을 붙인 아주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그의 아버지가 미쳐서 돌아가시자 그는 그의 아버지를 이상화하는 경향이 있었답니다
다 잊은 듯 생활하는 어머니을 이해못했고 아버지의 죽음과 늘 함께 한다고 공공연히 말했다고 하네요
그러나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때 그는 이미 16살이어서 뭉크처럼 어린시절 어머니 여동생의 죽음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은 그런 유형으로 보기는 힘든 것 같습니다
그 당시 오스트리아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프로이드, 말러(그도 죽음에 천착했던 자로 유명하죠) 등의 시대였구 쉴레 역시 프로이드의 인간의 내재된 욕망과 꿈, 현상너머의 현상보기 등등에 매료되어 있었답니다
영화 아이즈와일드샷의 원작가인 아서 슈니츨러의 영향도 받았다니 영화를 백년전 유럽으로 생각해보시면 그 당시 사람들의 분위기가 어떠했을까 대충은 상상이 가실 겁니다 (사실 책을 저도 사다만 놓고 아직 읽어보지 않아서 뭐라고 말씀드리기는 곤란하지만..ㅎㅎ 왜 그렇게 글씨가 작은지 정말 독일책들 짜증납니다..이렇게 꼭 실력없는 사람이 글씨 탓하지요..^^)
사실 인간의 내재된 욕망등 인간의 본질적문제에 다가서게되면 가장 먼저 부딪히게 되는게 죽음의 문제가 아닐까요?
물론 또 하나 중요한 요소는 일차대전을 들 수 있겠지요 그도 징병되었었구 종전되는 해에 그가 죽었으니까요
1907년에 존경하던 클림트를 알게 되고 그에게 인정을 받으니 쉴레의 인생은 무지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20살도 안되어 대가에게 인정을 받고 그의 지원을 받으니 말입니다
그런 그였기에 나르시스적인 요소와 시기와 질투를 받고 있다는 피해의식등 뭐 복잡한 감정의 소유자였다고 합니다
그가 그랬답니다 '난 삶과 죽음을 사랑하는 인간이다'라고...
그의 에로틱한 그림들에 대해서도 사회상황을 무시할 수가 없죠 대제국말기의 퇴폐했던 분위기는 그에게 일찍 성에 대한 눈을 뜨게 했을 것이고 실제로 여동생과의 특별한 관계, 이른 동거등 그는 성을 탐닉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에 대한 당대 사람들의 평가를 읽어보면 좀 엇갈리는 경향이 있는데 어찌되었건 그는 자신감있고 말을 아끼는 근접하기 어려운 듯한 귀족적 분위기를 풍긴 듯 하더군요
참 쉴레의 사진을 잘 보시면 '죽음과 소녀' 그림 원작이 놓여있는데 보셨습니까? ㅎㅎ
그녀에게 힘을 얻으신다니 듣던 중 반가운 얘기네요
그리고 그녀와의 관계에서 깊음과 넓음을 보유하고 있는 건 그녀지요 그건 당신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구요..^^
PS : '마카브르'니 '바니타스'니 하는 용어를 알게 되었습니다.
첫번째 단어는 제 화두라 알겠지만 두 번쩨 단어는 저도 영 생소한 말이네요..
제게도 가만히 앉아서 알게 되는 기쁨을 주십시오
그리고 그 책 저 한국가면 혹 선물로 사주시는 겁니까? 하하하 실은, 못 찾았어요. 하도 애절하게 끌어안고 있는 모습이 강렬해서 찾지 못했습니다. 아니 당신의 글을 읽고 눈을 부릅떠도 잘 보이지 않네요. 구체적으로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어릴때 숨은 그림찾기도 못하더니 역시나 눈이 밝지 못합니다.
당연히 사드리겠습니다. 미리 사놓고 기다리겠으니 꼭 오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혹 이번 여름에 오실 계획은 없으신지? Re:원칙을 깨고..^^ 오전엔 노트북으로 인터넷에 접속하지 않는 다는 원칙을 깨고 답답해하실 거 같아 글 남깁니다..하하하
자주 그렇기는 하지만 접속하기가 어찌 그리 어려운지.^^
전체 그림이 다 보이는 건 아니구요
쉴레 다리 뒷쪽에 놓인 그림을 잘 보시면 발리의 엉덩이 부분부터 다리가 보입니다
흑백인데다가 한 쪽만 보이니 알아보기가 힘이 들 수도 있지만요
그래도 화가의 그림을 화가의 아트리에에서 보게되는 기분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ㅎㅎ
한국은 어찌 될 지는 아직 모르겠네요
독일가는 여정이 바뀌게 될 전망이라..
어찌되었건 올해는 한국에 한 번 더 갈 생각입니다..ㅎㅎ
이왕 접속한 김에 밀린 이 멜 몇 개 보내야겠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
의지의 한국인 ..초연
나이 얘기가가 나와서..
우리 가족중의 한분이 우리사이에서는
의지의 한국인으로 부르는 누님이 계심니다.
40대 후반에 홀홀단신으로 호주에 어학연수를 가시더니
3년후에는 대학을 마치고 호주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계십니다.
그리고는 또 무슨 공부를 하신다고 하던데.
이제는 50이 넘었는데도 정렬은 20대와 같습니다.
감히 다른 가족들은 흉내도 못냅니다.
갑자기 누님이 보고 싶어집니다.
Re:그렇네요
정말 의지가 대단하시네요
특히 한국사회에서 그렇게 하기는 더 어려울텐데요
누구나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꿈을 가지고 살지만 이러 저러한 이유로 실현하기가 힘이 드는 상황에서 이런 얘기를 들으면 대리만족이랄까?
괜시리 기분이 좋아집니다..^^
누님이 보고 싶다는 초연님 지금은 혹 누님께 이 멜을 쓰시고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