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지난 번에 받아온 저 엄청난 양의 음악회광고지를 보고있는데 눈에 띈 트룰스 뫼르크(발음자신없슴.)의 첼로연주회.
첼로 곡은 꽤 많이 들어봤지만 그리그의 첼로곡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노르웨이 작곡가의 곡을 노르웨이 출신의 첼리스트가 연주한다니 어찌 구미가 당기지 않겠는가.
물론 윤이상의 곡을 정명훈이 제일 잘 지휘하란 보장은 없는거지만..^^
문제는 같은 날 제임스골웨이의 플륫연주회가 있어서 안그래도 슬슬가서 당일표를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 엄청난 내적갈등
이렇게 얘기하면 내가 둘 중 어느 음악회를 갈까고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게 아니라 과연 표가 있을지 없을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 게으른 내가 화장하고 옷차려입고 음악회를 위해 집을 나설까 말까 그 내적갈등이다..ㅎㅎ
부랴부랴 해야할 집안 일들을 하고 나름대로 멋을 엄청 내고는 튀어나갔다. 어디로? 물론 첼로연주회로..^^
장소는 밖에서 지나쳐본 적만 있는 우에노공원 동경문화회관.
웃기는 얘기지만 엄청 차려입고 나갔다 표가 없으면 민망하기때문에 집에서 가까운 산토리홀보다 차라리 먼 곳이 낫다고 생각했다..^^;;
표는 물론 구했고 잽싸게 포도주 한 잔을 산후 남편에게 전화를 걸고(바쁘신 분께선 비서도 퇴근을 했는지 자동응답기..ㅜㅜ) 흐르는 땀을 식히러 잠시 밖으로..
작은 홀이라 아담하고 세련된 연주장은 거의 만석이었고 가까이 음악대학이 있어서인지 여기저기 첼로 통이 놓여있다.
첫 곡이 내가 좋아하는 브람스의 첼로소나타1번이고 그리그곡은 제일 마지막에 배정되어 있다.
속을 긁는 듯한 소리를 내는 첼리스트연주를 열심히 듣고 있는 순간 의자가 움직인다.
지진이다!!!!!!(속으로만 외쳤다..ㅎㅎ)
집에서야 여러 번 지진을 느끼고 심지어 남편이랑 나랑은 꼭 흔들침대에서 사는 거 같다는 농담도 하긴 하지만 밖에 있을때 지진을 느껴본 건 처음이었다.
순간.
아 이러다 큰 지진이 나서 아수라장이 되면 남편이랑은 어떻게 만나지? 나는 핸드폰도 없는데 앞으론 여권도 챙겨다니고 핸드폰도 구입해야하나 집은 어떻게 가야하는 거지 별 생각이 다 스쳐지나가더라.
어쨋든 별 일없이 콘서트는 진행이되었고...
쉬었다 다시 시작된 연주를 듣고 있는데 다시 이번엔 더 크게 의자가 움직이는 거다. 드디어 옆에 있는 아줌마도 앗 지진이다 신음하듯 내뱉고. 경보기가 울린다..ㅜㅜ
아니 아직 그리그의 첼로소나타도 못 들었는데 이대로 음악회가 끝나버리는 건가?
오 하나님 제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게 도와주시옵소서 (꼭 이럴때만 신을 찾는다.-_-;;)
그 사이 경보음은 꺼졌고 동요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연주자들은 여전히 열심히 연주를 하고 있다.
이거뭐야 내가 꿈을 꾼것도 아니고..강적인 사람들이다..^^
역시나 본인이 자신있는 곡이었는지 다른 곡보다 훨씬 정열적으로 연주한 그리그의 곡이 끝나고 앵콜도 끝나고 그러는 사이 나도 잊었다.
만족한 기분으로 와인도 한병사고 집에와 티비를 켰더니 또 이 근처에서 지진이 감지되었다는 자막이 나온다.
아 맞다 자기야 아까 지진 느꼈어? 어쩌고 저쩌고..하하 호호
도저히 그럴 수 없을 것 같던 지진조차도 생활이 된다.
그래서 인간은 익숙해지기까지가 어렵지 그럼 또 그런대로 사는
가보다
2005.06.03 東京에서...사야
Truls Mø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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