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제 축구우승의 감동으로 행복하게 일어난 날이기도 하자 내가 만으로 서른 다섯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결코 작은 나이가 아니다. 먼저 이렇게 행복한 기분으로 이 날을 맞을 수 있다는 거에 넘 감사하며 오늘은 그냥 내 얘기를 해볼까한다
밖에는 오랫만에 비까지 힘차게 내리고 그냥 기분이 약간은 센치해진다
십년전 만으로 25살이 될때까지만해도 난 내 35살이 이런 모습일꺼라고는 상상도 해본적이 없다
일단 외국인의 아내가 되어 외국에 살거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고 지금 까지 엄마가 아닐 꺼라고도 생각해 본적이 없다
물론 여러나라를 돌아다니며 여전히 언어를 배우러 학교에 가게 되리라는 상상은 더더욱 해보지 않았다
그 십년 동안 참 많은 일이 일어났다
정확히 십 년전 난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오육학년 미술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때가 막 교과전담제가 실시 될 때이기도 했구 서양화를 취미로 그리는 교장선생님덕(?)에 난 나만의 미술실에서 미술을 전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는 건 재미있었지만 학교라는 사회는 내게 맞지 않았다
권위의식을 견디지 못하는 난 늘 윗사람들과 싸움만하는 문제교사였기에 학교가 끝나면 동료선생님들과 술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물론 그 때 옆 교실에 있으며 사귄 친구는 지금도 내 인생에서 소중한 사람이긴 하지만 그걸빼면 내 인생에 마이너스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그 때의 생활이 힘들었다
난 그래서 대학원에 가서 서양미술사를 전공할 수 있기를 학교를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랬었다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때 남편을 만나 사랑에 빠졌고 난 사표를 내고 그와 결혼했다
진짜 결혼하기전 한 선생님이 내게 학교가 맞았다면 내 남편이랑 결혼을 하고 떠나지 않을 꺼라고 얘기했었는데 그땐 그 말이 우스웠지만 그것도 결혼을 결정하는 한 이유는 되지 않았을까 싶다..ㅎㅎ
어쨋든 독일로 가서 독일어를 배울때만 해도 독일에서 대학 다시 다니며 아이 낳고 그냥 그렇게 살게 될 줄 알았다
아일랜드를 거쳐 여기 중국까지 와서 나보다 20살 가까이 어린 애랑 같은 교실에 앉아 단어뜻이 뭐냐고 서로 묻고 그러면서 내 나이 만 서른 다섯이 될 줄이야
특히 중국은 십년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적성국의 성격을 띄고 있었기에 그 후 한국을 떠나 산 나는 지금 내가 중국( 그 예전의 중공..ㅎㅎ)에 와서 살고 있다는게 가끔은 신기하기도 하다
앉아서 생각을 하다보면 친구들처럼 애들 학교 입학시키고 알뜰 살뜰 저축해 집 사고 그런게 부러워 보일때도 많다
그래도 아이를 낳고 집도 사고 그러면 뭔가 해놓은게 있는 것 같은데 지금 나처럼 독일에서 하던 공부도 못맞춰 졸업장도 없고 어느 나라를 가거나 어학원만 다니다 마니 뭐하고 사는 건가 싶기도 하다
거기다 여러나라를 옮겨다니며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적응을 한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아일랜드에 갔을때 내 영어실력은 좋은 편이었는데도 막상 조미료하나 채소하나 외워갖고 나가야하는 단어가 무지 많아 머리에 김이 나곤 했었다
한번은 정육점에 갔다가 송아지 고기가 뭔지 몰라 베이비비프를 달라고 했으니..하하
난 그게 너무 짜증이 나서 3개 국어로 장을 보는 걸로 충분하다고 다음 번에 다른 언어를 배우게 되더라고 난 절대 그 언어로 물건을 사러 가지는 않을꺼라고 공공연히 말하곤 했는데 이제 중국어로 수박이 뭔지 사과가 뭔지를 또 외우고 있으니 웃음이 난다
처음 중국에 와서 어학원을 다니던 작년만해도 내가 늘 틀리게 말하고 사는 독일어를 못하고 지금 내가 뭐하고 있는 건가 싶어 눈물을 철철 흘리고 집에서 독일어공부를 하겠다고 일주일인가 학원에 안나간적도 있다
물론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어 이렇게 독일어칼럼도 시작했지만 그래도 배우는 중국어가 재미있어서 학교는 즐겨나간다..ㅎㅎ
지금까지는 내 나이를 별로 의식하고 살지 않았는데 막상 35살이 되니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괜히 조바심도 일어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 지 걱정도 되고 말이다
이러다 정말 아이를 아예 못낳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있고 이젠 멋지게 늙어가는 준비를 해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 자꾸 본인의 위치를 점검해 보게된다
일단 감사한게 있다면 내게 어떤 친구못지않게 이해잘해주고 말이 통하는 남편이 내 옆에 있다는 사실이다
정말 결혼하고 온 난리를 쳐서 주위 사람 걱정도 많이 시키고 그랬는데 이젠 시간이 많이 가서 그런가 서로에게 익숙해져서인가 그냥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고맙고 좋다
서로 맞추느라 얼마나 힘들었었는지 난 지금도 남편에게 이혼은 못하겠다고 농담을 하곤 한다
이렇게 맞추느라 힘이 들었는데 또 그 짓을 어떻게 하느냐구( 결국 그럼 이혼하면 재혼하겠다는 말인가? 하하)
요즘 남편은 술담배 좋아하는 내 건강 걱정을 많이 한다 일단 둘이니까 둘이라도 건강하게 잘 살아야하지 않겠냐면서...
막상 말을 들을땐 마음에 와 닿는데 사람좋아하고 분위기 좋아하는 내가 변한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이젠 나이가 있으니 건강을 신경써가며 살아야겠다는게 내 멋있게 늙어가기 제 일항이다
그리고 아이는 이제 낳으려고 하지만 너무 큰 비중은 두지 않기로 했다
물론 노력은 열심히 해야겠지만..하하
그리고 어느나라에 살고 있건 내 나이 마흔이 되었을땐 틀리지 않는 독일어를 쓰며 살고 싶다
늘 쓰고 살아야하는 언어가 더이상 스트레스가 되지 않는게 내 간절한 소망이다
마지막으로 마음을 비우려는 노력이다
괜히 갖지 못한 것 아닌것에 집착을 하다보면 삶이 힘들어지는 것 같기에..
어차피 떠돌아다니기 시작한 인생 이제 어디를 가나 잘 적응하고 받아들이고 살 자신이 있다
실제로 독일에서 보다 아일랜드에서 적응하는데 더 짧게 걸렸고 중국에서의 적응은 더 짧게 걸렸다
물론 나도 욕심이 있는데 늘 가정주부로 경제활동 능력도 없고 어떤 지위도 없다는게 가끔은 아주 가끔은 힘들다
그래도 그냥 책 많이 읽고 세상을 더 많이 이해할려고 노력하며 내 주변에서 나를 늘 격려해주고 내게 기쁨을 주는 지인들과 나누고 사는 삶에 더 중점을 두려고 한다
물론 언어를 언젠가는 그만 배우고 집에서 틈틈히 그림을 그릴 수 있으면 더 바랄게 없겠다
내 나이 만 서른 다섯 살
십년 후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결코 작은 나이가 아니다. 먼저 이렇게 행복한 기분으로 이 날을 맞을 수 있다는 거에 넘 감사하며 오늘은 그냥 내 얘기를 해볼까한다
밖에는 오랫만에 비까지 힘차게 내리고 그냥 기분이 약간은 센치해진다
십년전 만으로 25살이 될때까지만해도 난 내 35살이 이런 모습일꺼라고는 상상도 해본적이 없다
일단 외국인의 아내가 되어 외국에 살거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고 지금 까지 엄마가 아닐 꺼라고도 생각해 본적이 없다
물론 여러나라를 돌아다니며 여전히 언어를 배우러 학교에 가게 되리라는 상상은 더더욱 해보지 않았다
그 십년 동안 참 많은 일이 일어났다
정확히 십 년전 난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오육학년 미술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때가 막 교과전담제가 실시 될 때이기도 했구 서양화를 취미로 그리는 교장선생님덕(?)에 난 나만의 미술실에서 미술을 전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는 건 재미있었지만 학교라는 사회는 내게 맞지 않았다
권위의식을 견디지 못하는 난 늘 윗사람들과 싸움만하는 문제교사였기에 학교가 끝나면 동료선생님들과 술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물론 그 때 옆 교실에 있으며 사귄 친구는 지금도 내 인생에서 소중한 사람이긴 하지만 그걸빼면 내 인생에 마이너스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그 때의 생활이 힘들었다
난 그래서 대학원에 가서 서양미술사를 전공할 수 있기를 학교를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랬었다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때 남편을 만나 사랑에 빠졌고 난 사표를 내고 그와 결혼했다
진짜 결혼하기전 한 선생님이 내게 학교가 맞았다면 내 남편이랑 결혼을 하고 떠나지 않을 꺼라고 얘기했었는데 그땐 그 말이 우스웠지만 그것도 결혼을 결정하는 한 이유는 되지 않았을까 싶다..ㅎㅎ
어쨋든 독일로 가서 독일어를 배울때만 해도 독일에서 대학 다시 다니며 아이 낳고 그냥 그렇게 살게 될 줄 알았다
아일랜드를 거쳐 여기 중국까지 와서 나보다 20살 가까이 어린 애랑 같은 교실에 앉아 단어뜻이 뭐냐고 서로 묻고 그러면서 내 나이 만 서른 다섯이 될 줄이야
특히 중국은 십년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적성국의 성격을 띄고 있었기에 그 후 한국을 떠나 산 나는 지금 내가 중국( 그 예전의 중공..ㅎㅎ)에 와서 살고 있다는게 가끔은 신기하기도 하다
앉아서 생각을 하다보면 친구들처럼 애들 학교 입학시키고 알뜰 살뜰 저축해 집 사고 그런게 부러워 보일때도 많다
그래도 아이를 낳고 집도 사고 그러면 뭔가 해놓은게 있는 것 같은데 지금 나처럼 독일에서 하던 공부도 못맞춰 졸업장도 없고 어느 나라를 가거나 어학원만 다니다 마니 뭐하고 사는 건가 싶기도 하다
거기다 여러나라를 옮겨다니며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적응을 한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아일랜드에 갔을때 내 영어실력은 좋은 편이었는데도 막상 조미료하나 채소하나 외워갖고 나가야하는 단어가 무지 많아 머리에 김이 나곤 했었다
한번은 정육점에 갔다가 송아지 고기가 뭔지 몰라 베이비비프를 달라고 했으니..하하
난 그게 너무 짜증이 나서 3개 국어로 장을 보는 걸로 충분하다고 다음 번에 다른 언어를 배우게 되더라고 난 절대 그 언어로 물건을 사러 가지는 않을꺼라고 공공연히 말하곤 했는데 이제 중국어로 수박이 뭔지 사과가 뭔지를 또 외우고 있으니 웃음이 난다
처음 중국에 와서 어학원을 다니던 작년만해도 내가 늘 틀리게 말하고 사는 독일어를 못하고 지금 내가 뭐하고 있는 건가 싶어 눈물을 철철 흘리고 집에서 독일어공부를 하겠다고 일주일인가 학원에 안나간적도 있다
물론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어 이렇게 독일어칼럼도 시작했지만 그래도 배우는 중국어가 재미있어서 학교는 즐겨나간다..ㅎㅎ
지금까지는 내 나이를 별로 의식하고 살지 않았는데 막상 35살이 되니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괜히 조바심도 일어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 지 걱정도 되고 말이다
이러다 정말 아이를 아예 못낳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있고 이젠 멋지게 늙어가는 준비를 해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 자꾸 본인의 위치를 점검해 보게된다
일단 감사한게 있다면 내게 어떤 친구못지않게 이해잘해주고 말이 통하는 남편이 내 옆에 있다는 사실이다
정말 결혼하고 온 난리를 쳐서 주위 사람 걱정도 많이 시키고 그랬는데 이젠 시간이 많이 가서 그런가 서로에게 익숙해져서인가 그냥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고맙고 좋다
서로 맞추느라 얼마나 힘들었었는지 난 지금도 남편에게 이혼은 못하겠다고 농담을 하곤 한다
이렇게 맞추느라 힘이 들었는데 또 그 짓을 어떻게 하느냐구( 결국 그럼 이혼하면 재혼하겠다는 말인가? 하하)
요즘 남편은 술담배 좋아하는 내 건강 걱정을 많이 한다 일단 둘이니까 둘이라도 건강하게 잘 살아야하지 않겠냐면서...
막상 말을 들을땐 마음에 와 닿는데 사람좋아하고 분위기 좋아하는 내가 변한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이젠 나이가 있으니 건강을 신경써가며 살아야겠다는게 내 멋있게 늙어가기 제 일항이다
그리고 아이는 이제 낳으려고 하지만 너무 큰 비중은 두지 않기로 했다
물론 노력은 열심히 해야겠지만..하하
그리고 어느나라에 살고 있건 내 나이 마흔이 되었을땐 틀리지 않는 독일어를 쓰며 살고 싶다
늘 쓰고 살아야하는 언어가 더이상 스트레스가 되지 않는게 내 간절한 소망이다
마지막으로 마음을 비우려는 노력이다
괜히 갖지 못한 것 아닌것에 집착을 하다보면 삶이 힘들어지는 것 같기에..
어차피 떠돌아다니기 시작한 인생 이제 어디를 가나 잘 적응하고 받아들이고 살 자신이 있다
실제로 독일에서 보다 아일랜드에서 적응하는데 더 짧게 걸렸고 중국에서의 적응은 더 짧게 걸렸다
물론 나도 욕심이 있는데 늘 가정주부로 경제활동 능력도 없고 어떤 지위도 없다는게 가끔은 아주 가끔은 힘들다
그래도 그냥 책 많이 읽고 세상을 더 많이 이해할려고 노력하며 내 주변에서 나를 늘 격려해주고 내게 기쁨을 주는 지인들과 나누고 사는 삶에 더 중점을 두려고 한다
물론 언어를 언젠가는 그만 배우고 집에서 틈틈히 그림을 그릴 수 있으면 더 바랄게 없겠다
내 나이 만 서른 다섯 살
십년 후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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