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묻은 삶

흰머리를 뽑으며...

史野 2003. 7. 14. 11:44

Amedeo Modigliani. Portrait of Jeanne Hébuterne. 1919. Oil on canvas. 55 x 38 cm. Private collection





내가 처음 흰머리를 발견한건 아일랜드에서였다



그때 독일서 놀러온 친구부부랑 정말 아름다운 아일랜드 서부쪽을 차로 여행하고 있었는데 얼굴을 한 번 보려고 거울을 내렸다가 갑자기 발견한 흰머리카락 하나..



쪽집게도 없고 뽑으려고 애를 쓰는데 남편이 거울만 보지말고 밖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란다


이 심각한 순간에 풍경이 보이냐니까 흰머리뽑을 기횐 앞으로 너무 많을테니 걱정말고 자주 못 볼 풍경이나 먼저 보라고 구박하더라..ㅎㅎ



근데 정말 그의 말대로 순식간에(?) 흰머리가 심심찮게 보이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흰머리는 내게 늙어간다는 표시이다



뭐 늙지 않는 인간이야 없겠지만 그래도 난 참 멋있게 늙어가고 싶은데 이렇게 벌써 늙어가는 징조가 마구 보이니 조금 걱정스럽다



아직 준비가 되지도 않았는데..



아이가 없다는 이유로 늘 20대처럼 살고 있는 난 이제 내가 곧 마흔이라는 사실에 난감하다



어려서는 다른 목표없이 그냥 자기 색깔이 분명한 여자가 되고 싶었다.



무엇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내겐 26살 그러니까 만 25살의 나이가 대단해보 였고 그 나이엔 통찰력을 가지고 삶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인간이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그런데 계획했던 나이보다 십년이나 더 지난 지금 20대의 방황과 지나친 자기천착의 결과일까



과도하게 덧칠해 탁해진 수채화처럼 갑갑함에 갇혀 허우적대고 있다..



물론 그래도 고통스럽던 이십대보다는 삼십대인 지금이 좋고 사십대 오십대는 더 좋아지기를 바라고 있지만 말이다..ㅎㅎ



내 나이도 되기전에 세상을 떠난 예술가들이 많다는 사실이 나랑 무슨 상관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책임감(?)이 느껴진다



난 사실 나이들어가는게 좋다. 나이가 드니까 누군가 찔려야 직성이 풀리던 날카로운 성격도 무던해지는 것 같구 이해안되던것도 이해가 가고 용서안되던 것도 용서가 된다..ㅎㅎ



근데 반대로 나이가 들어 이해되던 것이 이해가 안되는 것이 있으니..



바로 반고흐만큼이나 불행하게 살다갔고 이젠 그림값이 천문학적이 되어버린 모딜리아니의 사실혼아내였던 이 그림의 주인공이다



모딜리아니는 많은 그녀의 초상화를 그렸는데 거의 그녀의 나이보다 훨씬 성숙해보이고 뽀송뽀송했을(?) 그녀의 나이 스무살에 맞는 그림은 이 그림이 아닌가 한다



잔느(1898-1920)는 모딜리아니가 죽은 다음 날 14개월된 딸내미를 남겨놓고 만삭의 몸으로 창문에서 투신자살한다



예전에 그 얘기를 들었을때는 얼마나 사랑했으면 그런 선택을 했을까 감동해서 약간 과장하면 눈물까지 글썽였다


그런데 이 나이가 되어 다시 생각해보니 얼마나 철이 없으면!!! 그 어린 아이를 남겨놓고 또 이제 막 세상의 빛볼 날이 몇 일 남지도 않은 새 생명과 동반자살을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더란 말이다


이게 바로 전에 내가 욕하던(?) 기성세대의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근데 이 글을 쓰다가 남편이 구박한다고 어린 두 애들을 죽이고 자기도 자살했다는 삼십대엄마의 얘기를 인터넷에서 읽었다



잔느가 철이 없는게 아니냐고 열내고 있는 마당이었는데 자식의 목숨조차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건 뭐 굳이 나이랑은 상관이 없나보다



그녀들이 아닌 이상 그 고통까지 헤아릴 수는 없지만 그래도 너무나 씁쓸하다....






2003.07.13. 香港에서...사야








아마데오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1884-1920)와 잔느의 아이는 고모에게 입양되어 나중에 아버지에 대한 책을 쓰죠 (아직 읽어보지 못해서 할 말은 없습니다..ㅎㅎ). 19살의 잔느는 14살 연상의 모딜리아니와 만나 사랑에 빠지고 삼년이 못되어 모딜리아니가 결핵성뇌막염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제 스타일은 아닙니다만 화가중 최고의 미남이라고들 하는 그는 마약없이는 좋은 그림을 완성하지 못했을 만큼 중독이었답니다.




Chopin-Variations(On a theme by Rossini)for flute and pi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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