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역에서의 단상

오늘의 단어 animosity

史野 2024. 12. 29. 10:52

한국뉴스를 전혀 안보는 대신 페북에 여러 사람들을 팔로워 해놓고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고는 한다
극좌부터 좌 중도 우 극우까지 대충 골고루 읽는 편이었는데 그게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더라
평소에는 똑똑하고 배울 것도 많고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도 뭔 이슈가 생기면 같은 사람이 맞나 싶게 변한다
그래서 너무 극단적인 사람들은 팔로우를 끊고 예전처럼 자주는 안 보는데 비상계엄령에 탄핵에 어지러우면 속이 뒤집힐걸 알아도 들여다보게 된다

나름 이성적인 사람들을 남겨놨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다
비상계엄령이 잘못이라는 걸 알면서도 감싸고 합리화하려고 폭주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온갖 멋진 말은 다하다가 이번기회에 다 쓸어버려야 한다는 말로 글을 맺는 이도 있다
다 쓸어버리려고 비상계엄령을 발동해서 이 사단이 난 건데 다 쓸어버리자니 민주주의의 기본을 모르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

비상계엄령은 비현실적이라 놀랄 겨를도 없었는데 처단이라는 단어는 사야를 많이 놀라게 했다
언어는 늘 그 쓰는 사람들의 사고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간혹 댓글 같은 걸 타고 들어갔다가 엘리트라는 사람들이 쓰는 단어들에 흠칫 놀란다
내재된 폭력이랄까 증오랄까

animosity 증오에 가까운 감정
대행도 탄핵되었다는 뉴스를 전하는 bbc 특파원이 한국의 양당관계를 이야기하며 저 단어를 쓰더라
조금 놀랐는데 어쩌면 가장 적확한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서로를 의견이 다른 협치의 대상으로 보는 게 아니라 처단하고 쓸어버려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니 말이다

요즘은 사실 쓰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거꾸로 쉽게 글을 못 쓰겠다
역사책에서나 보던 예송논쟁을 현실에서 목격하고 있는 기분이랄까
사백 년 전에도 우리나라는 민주적이었구나 좋아해야 할지 여전하구나 답답해해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지금은 세계가 다 미쳐 돌아가고 있어서 예전처럼 한국인이라 더 괴로운 느낌은 아니라 웃프다

이런저런 복잡한 감정으로 글들을 읽다가 사야라고 뭐 크게 다른가에 생각이 미친다
이 모든 미친 소동에도 불구하고 사야는 여전히 흐뭇한 미소를 짓고 계시는 저분이 대통보다 민주주의에 더 해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콘크리트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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