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역에서의 단상

낯선 정치인을 추모하며

史野 2024. 2. 20. 11:02

알렉세이 나발리 러시아 반정부인사가 결국 사망했다
간간히 뉴스로 접할 때마다 강건하기를 빌었다
푸틴이 권력을 잡고 있는 한 살 수 있을까 회의적이긴 했지만 막상 사망소식을 들으니 너무 안타깝고 우울하다

그는 76년생 아직 오십도 되지 않은 젊은 정치인이다
그에게 관심이 생긴 건 몇 년 전 독극물테러 사건
그가 독극물에서 살아남아 굳이 러시아로 돌아갔을 때 사야는 적잖이 충격받았다
보면서도 믿겨지지 않았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그는 왜 망명을 선택하지 않았던 걸까
시간을 두고 기다릴 수는 없었던 걸까
정말 그곳에 조금의 정의라도 남아 있다고 믿었던 걸까

여기저기 며칠간 계속 뉴스를 내보내고 있는데 밝고 당당한 생전의 그의 모습에 가슴이 아프다
도대체 신념이라는 게 뭐길래 호랑이 아가리로 저리 당당히 걸어 들어가는 걸까
그에게 조국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그가 꿈꾸던 나라는 어떤 나라였을까
자꾸 질문만 생기는 게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소심한 인간인 사야는 그의 큰 뜻을 감히 가늠도 못하겠다

러시아가 무슨 아프리카 구석 대통령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나라도 아니고 세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인물이라 생각했는데 멀리 떠나버렸다
단 한 번도 민주주의가 아니었던 나라
민주주의가 인류에게 최고의 체제라고 믿지도 않는 데다 남의 나라 체제까지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지만 어떤 체제건 지도자의 중요성이야 말해 뭐 하겠는가
우크라이나 전쟁이 2년을 넘어가는 시점이라 더 아쉽다

사야에게 소련이라는 나라는 두려웠지만 러시아라는 나라는 다른 느낌이다
젊은 날 접했던 영화나 문학작품들 덕이겠지
소설 속에 등장하던 페치카 사모바르 자작나무숲
눈 가득한 풍경 속 따뜻함 가득한 단어들과 감성 풍부한 사람들, 그런 나라
그러나 이제는 그 눈보라 치는 살벌한 수용소를 걸어 나오는 나발리의 엄마를 본다
사망 전 날 철장 너머 웃고 농담하는 그의 모습은 사야도 보기 힘들던데 그 엄마의 심정은 어떨까
여전히 시신은 못 돌려받고 꽃으로 추모하는 것마저 제지를 받는 상황
어찌 시신도 안 돌려주나 부검을 걱정하는 건가 단순히 생각했는데  장례식등 후폭풍을 생각하면 쉽게 내주지는 않겠구나 싶다
그의 희생이 러시아에게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다
변화는 또 다른 큰 희생을 야기할 수 있기에 외부인으로서의 이런 소망이 조심스럽다만
그가 꿈꾸던 그 나라에서 그의 아이들은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그런 나라
그리고 그가 러시아로 돌아가기로 결정한 게 가족과 충분히 상의한 거였으면 좋겠다
부모님 아내 자녀들
그를 응원하던 사람들의 희망
그는 그의 꿈 말고도 너무 많은 것을 남겨두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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