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따뜻한 은신처

영화 엑스 마키나

史野 2024. 9. 21. 20:41

알렉스 가랜드 감독의 십 년 전 영화
청소년관람불가의 안드로이드에 관한 이야기


지난겨울 아닐 세스의 책을 읽을 때 언급되었던 영화다
비슷한 다른 영화는 잘만 봤는데 이상하리만치 이 영화는 보고 싶지가 않았다
티비에 찜만 해놓고 잊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볼 영화를 찾다 보니 쿠팡에도 있는 거다
계속 피하다가 마침 또 유튜브에 아닐 세스의 방송이 뜨길래 보고 나서 이 영화도 숙제하듯 봐버리기로 했다
마침 영어자막도 있어서 영어공부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말이다

결말이 맘에 안 들긴 해도 영화는 의외로 괜찮았다
등장인물이 다섯 명도 안되는데 시종일관 긴장하게 만드는 연출도 좋았다
좀 멍청해 보인다고 생각했던 어바웃타임의 남주인공인 도널 글리슨과 생긴 것도 얄미워 보이는 알리시아 비칸데르 그리고 오스카 아이작

전혀 간단한 영화가 아니지만 단순하게 말하면 인간과 인조인간의 교감에 관한 이야기다
연기들도 좋았지만 감독의 의도였는지 AI가 나오는 영화의 배경이 대도시가 아니라 원시적인 자연인 것도 좋았다
AI의 의식을 묻고 있는데 결국은 그것도 인간의 원초적인 질문과 같다는 암시 같았달까
그게 인간의 것이든 아니든 의식의 문제는 철학적일 수밖에 없다
영화에도 언급되는데 인간도 역시 잉태되는 순간부터 프로그래밍된다
부모의 신체적 기칠을 물려받고 처한 환경과 언어에 갇히고 끊임없이 업데이트되어 간다
사야 인생만 돌아보면 그 의식의 업데이트 과정이 본인의 의지라고 할 수 있는 건 사실 거의 없어 보인다

사야는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과 같은 의식을 공유할 거라고 믿지는 않는데 ( 그냥 단순하게 인간의 가장 큰 특징이랄 수 있는 망각의 영역은 없을 거 같아서) 가진다 한들 그게 뭐 그리 큰 문제 일까 싶다
그냥 인간들처럼 이런저런 다양한 인조인간들이 생겨나지 않을까
인간도 어차피 예측불허의 위험한 존재들이 많잖은가
우리는 인간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
주인공은 목표한 자유를 위해 창조자를 죽이지만 인간은 역설적으로 자유롭기 위해 신이 필요한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연기 화면 음악 다 좋고 생각할 거리가 많은 이런 근사한 영화가 왜 유명세를 타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영화관에서 봤다면 좋았을 거 같은 영화다

감독인터뷰를 볼까 싶어 검색하다가 누군가 이 영화에 대해 말한 걸 봤는데 종교와 철학까지 동원해 어마어마한 분석을 해놨더라
역시 모든 건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맞는 건가 보다
감독인터뷰 보고 어쩌고 하면 개미지옥에 빠질 거 같아 포기
한 번 더 보려고 했는데 저 사람이 말한 걸 의식하며 볼 거 같아 그것도 포기
사야는 이래서 공부하는 걸 좋아하면서도 학자타입은 못 되는 거 같다
어쨌든 AI기술이 어디까지 발전할지 궁금하다
의식까지는 아니더라도 시스템적으로는 이미 인간세계에 아주 깊이 관여하는 듯이 보이니 말이다
사야만 해도 알고리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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