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따뜻한 은신처

7시 3분의 추억

史野 2016. 4. 25. 02:41

예전에 얼핏 쓴 것 같은 데 사야가 중학교때 짝사랑을 하던 대상이 있었다

뭐 어차피 부자도 아니었기때문에 망했다는 표현은 좀 웃기다만 어쨌든 지방을 떠돌며 토목사업같은 걸 했던 아빠가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며 리어카를 끌더라도 여긴 안되겠다 하셔서 이태원에서 이모네가 살던 답십리로 이사했던 중학생 때


이사하고 육개월만에 아빠는 돌아가시고 사야는 지금은 용답역인 당시 기지역에서 열차를 타고 신설동에서 갈아타 서울역에 내리고 그 서울역에서 다시 남산가는 버스를 타는, 그러니까 왕복 두 시간의 통학을 이년간이나 하던 그 시절.


사춘기이기도 했고 아빠가 돌아가셨으니 허망하달까 외롭기도 했고

집에가는 방향이랑 반대 버스를 타고 당시는 논이였던 말죽거리 종점까지 버스를 타고 왔다갔다 했었더랬다.

그런 사야가 매일 타던 7시 3분 용답역발 열차에 늘 있던 어느 남학생이 있었다.

사야는 초등학생때 벌써 생리를 시작하고 그땐 정말 나올 곳 나오고 들어갈 곳 들어간 그러니까 사춘기라고 하는 풋내보다는 사실 이미 여인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던 일단 몸은 마구 무르익었을 때였다.


뭐 어차피 이태원에서 자라며 스트릿차일드 아니 한국식으로 완전 발랑까진 뭐 그런 아이였는 지도 모르는 데 그래봤자 뭐 이론적이었을 거고 그저 매일 보는 그 남자가 정말 좋았다

그 차를 못타면 어차피 지각이기도 했지만 그 남자때문이라도 결코 놓칠 수 없었을 뿐더러 아시다시피 엄마랑 문제가 많아 일찍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던 사야는 환승역인 신설동에서 고등학생이라 더 늦게 끝나는 그 오빠를 기다리고 있었던 기억.


이게 다 오늘 그 찬란했던 햇살때문이다

너무 아름다와서 얼마전 자살을 했다는 그 깜깜한 통로를 하루종일 돌아야만 했던 지하철 기관사가 생각났고 그 남자가 철도고등학교 학생이었거든

지금은 그런 의미가 없지만 사야가 중고딩이었을 때는 가난한 사람들이 가던 상업학교말고도 철도고등학교같은 그런 특별한 학교가 있었다

그리고 사야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두근하던 그 남자가 그 학교학생이었다

이름표가 아예 꿰매져 있던 교련복을 입고 있었기도 했기에 여전히 이름도 기억한다.


생을 마감했던 그 남자는 사야보다 두 살이 어렸고 사야가 흠모했던 그 남자는 사야보다 두 살이 많았었는 데 과연 그 남자도 그 깜깜한 곳을 운행하고 있을까

햇살에 대해 놀랬던 건 예전 계림여행을 갔을 때인 데 깊고도 깊은 동굴속에서 그 예쁜 얼굴로 관광객을 맞고 있는 아가씨들을 보면서 처음으로 마음이 아팠더랬다

아 퇴근하면 역시 밖은 어두울 텐데 이 아가씨들은 이 아름다울 나이에 여기서 뭘하고 있는 걸까, 하는 슬픔.


어쨌든 그 7시 3분의 남자는 뭘하고 있을까

철도고등학교를 다녔다고 해도 그 남자가 꼭 기관사가 되었을 거란 보장은 없다만 기관사 사고같은 기사를 읽으면 여전히 그 남자가 아니 그 애가 떠올라


사랑까진 아니었지만 어떤 계산도 없었던 진짜 설레임, 거기다 말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짝사랑이었다니까

제발 봐달라고 하루는 언니들까지 대동하고 탔던 그 7시 3분 차..ㅎㅎ

언니들은 그 남자가 사야를 인지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었는 데 과연 그랬을 까


사야는 하필 우연히 만나 짝사랑을 했던 대상도 겁나 돈없는 그 철도 고등학교 학생이었다만 그래서인가 확대해석해서 사야의 그 짝사랑들이 지상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비교 반만 일하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

헬조선에서 그 만큼 고통받지 않는 사람이 있냐고 하면 또 뭐 할 말은 없다만,,


근데 정말 사야가 짝사랑했던 그 남자가 과연 그 어두운 길을 달리고 있을까

타자마자 보이던 그 모습이 참 좋았고 환승하던 그 역에서 그를 기다리던 그 설레임도 참 좋았더랬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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