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야가 사는 꼴이 말이 아닌 지라 올해는 정말 시누이가 그냥 넘어가주길 바랬다
시어머니야 아무리 전화를 하셔도 다음엔 또 다 잊으시니 무슨 말을 해도 상관없지만 시누이는 다르니까
그래서 작년 시누이생일에도 그냥 넘어갔는데 걔는 늦긴 했지만 또 전화를 했다.
얼굴 본 지 팔년인데 참 대단하다.
역시나 이 왠수땡이는 하나도 안 잊고 딸기농사는 잘되는 지 어쩌고 저쩌고..
그래 시누이도 물론 가족이었다만 독일에서도 워낙 멀리 살았던데다 사야네가 떠돌았다보니 일년에 두 번 보기도 어려웠던 사이
그치만 우리가 함께 했던 그 시간은 또 얼마며 상해에는 친구랑 홍콩에는 지금의 남편이랑 와서 일주일씩 머문적도 있고 사야혼자 뮌휀의 그 아파트에가 며칠을 머문적도 있고 친부모같았던 시부모님만큼은 아니더라도 또 그리 간단한 관계는 아니다.
물론 한국적인 의미의 시누이는 당근 아니다.
그리고 그 팔년사이 사야랑 만난 적은 없지만 고기공놈은 엄마랑 유럽여행할 때 시누이 아파트에 며칠 묵었으며 프랑스에 교환학생으로 가있던 큰 언니 딸내미도 두 번이나 방문하기도 했고 말이다.
우짜든둥 뮌휀에 살던 시누이가 얼마전 함부르크 근처로 이사를 했다
독일은 프랑스랑 달리 중앙집권국가 아니었던 지라 심지어 수백개로 쪼개졌던 영주국가들이였던 지라 엄청 큰 대도시도 없지만 사는 곳에서의 이동도 별로 없는 나라다.
베를린에서 태어난 아버님과 뮌휀에서 태어난 어머님이 하노버에서 만나 연애를 한 특이한 전적처럼 아들놈은 세상을 떠돌고 딸내미는 독일내에서 유랑생활을 하다 결국 함부르크근처에 집을 샀다네
그 남편이 북독일 출신이라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긴 하다.
그래도 놀라운 건 함부르크가 아닌 작은 마을에 이백년이 넘은 고가를 구입하셨다네.
북독일에 살아본 적은 없지만 대충 어떤 집인 지는 상상이 가서 엄청 놀랍기도 하고 궁금하다.
그 정도면 말을 사도 되겠다니 안그래도 원래 마굿간도 있는 집이라네
하긴 이백년이 넘었으면 말이 통신수단일 때였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말이다.
이십분도 통화하지 않았는데 따발총 시누이랑은 한시간은 통화한 것처럼 수많은 이야기가 오간다.
뭐 사야나 시누이나 도찐개찐이다만...ㅎㅎ
요즘은 시누이랑 통화만 하고나면 시아버님 생각이 간절하다
저리 잘사는 걸 보고돌아가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버님께 시누이는 참 많이도 아픈 손가락이었는데 하늘에서 보시고 기뻐하고계실까
어쨌든 고기공놈부부나 울 큰언니네 식구들이나 유럽여행을 하고 싶으면 잠시나마 머물 수 있는 근사한 공간이 생겼네
뮌휀의 아파트도 나쁠 건 없지만 함부르크처럼 멋진 도시근처의 오래된 집은 훨 낫지.
그래 사야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얼마전 시어머니 또 전화하셔서는 빨리와서 같이 시누이 새집에 가보자고 하셨는데 막상 시누이랑 통화를 하고나니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싶다.
그래 사야도 뭐 언젠가는 독일에 가는 일도 생기겠지만 어머님이 살아계실 때 가능할까.
사년을 살았고 십육년을 들락날락한 나라, 거기다 당연히 뼈를 묻어야하는 곳이란 생각으로 살았는데 이상하게도 그 곳이 그립다는 생각이 없다.
아니 심지어 가본 적도 없는 것 같이, 꼭 티비에서본 곳인 것처럼 현실감이 없다.
떠돌다 독일에가면 주변에서 들리는 독일어가 반갑고 안정감을 느꼈던 것처럼 막상 가면 또 다를까.
몇 개국에 살았고 작정하고 지구를 두바퀴나 돌았는데도 눈만 돌리면 보이는 저 지구본속의 거리나 실체같은 게 잘 실감이 안난다
이 대단한 적응력. 그래 그게 어디건 이 적응력하나로 버텼다만 이리 완벽하게 기억까지 도와주는 시스템인 줄은 몰랐네..ㅎㅎ
어찌 넘길 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시간도 꽤 걸리겠지만 이 고비를 넘기게되면 진짜 유럽에 한번 다녀오고 싶다.
그리고 그때까지 시어머니가 살아계신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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